3040리더 시리즈 ⑤/민주노동당 조승수 당선자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4.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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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곁에 다가가 현실에서 대안 찾는다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당선자 10명 중 조승수 당선자는 나이가 가장 어리다. 1963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올해 마흔둘. 그러나 현실 정치 경험은 가장 풍부하다. ‘노동자 해방구’라고 불리는 울산 북구에서 그는 시의원·구청장을 연거푸 역임했다.

조당선자는 울산 토박이다.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고교 시절. 울산 학성고에 입학한 후 그가 선택한 서클은 교내 아카데미였다. 이곳에서 그는 사회 의식에 눈을 떴다. 당시 대학생들이 읽던 웬만한 책은 이곳에서 모두 뗐다.

예비고사를 코앞에 두고도 <간디 자서전>을 읽던 소년이 대학에 들어가 선택할 길이란 뻔했다. 동국대 2학년 때 그는 학내 시위를 주동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당시 서울지검 508호에서 만난 담당 검사가 정형근씨(현 한나라당 의원)였다. 법정에서 정씨는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 퇴진 등을 선동한 행위에 대해 반성합니까?” 이에 대한 그의 답변은 간결했다. “아니오.” 내친 김에 그는 공소장 문구에 대해서도 한마디를 덧붙였다. “공공공(○○○)이 아니고 전두환인데요.”

그의 답변이 젊은 검사와 재판부를 어떻게 자극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거나 그는 아직 미성년자이고 초범이었는데도 실형을 언도받았고, 1년 징역을 살았다. 그 뒤 노동 현장에 투신해 수배→도피→구속의 악순환을 되풀이하던 그에게 또 한번 전기가 찾아온 것은 1987년이다.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의 물결이 전국을 휩쓸던 그 시절, 그는 인천교도소에서 깊은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이제 나가면 어떻게 살 것인가.’ 고통스럽게 고민하는 동안 그의 가슴 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른 화두가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노동자 항쟁의 본산지는 울산인데, 내가 먼 데서만 뭔가를 찾고 있었구나.’ 그는 울산으로 돌아갔고, 그뒤 17년간 울산을 지켰다.

울산에서 그는 현장 노동자는 아니었다. 이미 얼굴이 알려질 대로 알려져 현장 취업은 불가능했다. 대신 그는 사회과학 서점을 냈다. 동시에 그는 민중당 활동에도 뛰어들었다. ‘노동단체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에게도 정당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그는 뜻을 같이했다. 그러나 1992년 총선에서 비참하게 패한 이후 민중당은 해산되었고, 그 또한 갈림길에 섰다.

당시 김문수·이재오 등 쟁쟁한 선배 활동가들은 제도 정치권에 ‘투항’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는 남았고, 노회찬·황광우·주대환 등과 더불어 진보정당추진위원회(진정추)를 결성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번에 민주노동당이 원내 진출에 성공함으로써 그는 당시의 선택이 옳았음을 입증하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고 했다.

물론 ‘진보 진영 독자 세력화’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1992년 대선에 재차 도전한 백기완씨가 1%도 안되는 득표율로 패했을 때는 그 또한 밤새 소주를 퍼마시며 엉엉 울었다. “우리가 뭘 잘못했지? 세상이 왜 이렇게 우리를 알아주지 않는 거야.”

그러나 뼈아픈 실패 이후 그의 운동 방식은 확연히 바뀌었다. ‘관념을 배격하고 현실에서 출발하자’는 깨달음에 따라 주민 속으로 뛰어든 그는 소각장 반대 운동 등 환경 문제에 눈을 돌리며 관심 영역을 넓혀 갔다. 현장 활동가 일부는 이를 두고 개량주의라며 손가락질을 해댔다.

“2012년 집권 결코 불가능한 꿈 아니다”

구청장 임기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46.9%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지금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보수 정치권에 비친 그는 이상주의자겠지만, 당내 급진 좌파 세력에 비친 그는 현실추종형 개량주의자다.

그러나 그는 이런 공격에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그는 ‘국가사회주의의 오류와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한다’는 당 강령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노골적으로 비판한다. “나는 살아 있는 동안 우리 나라가 독일 수준의 사회민주주의에만 도달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자니, 솔직히 너무 앞서간 얘기 아닌가?”

그는 민주노동당이 노동뿐 아니라 환경·여성 같은 대안적 가치를 끊임없이 끌어안고 ‘대중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역설한다. 유일한 스승은 현실이라는 교훈만 잊지 않는다면, 2012년 민주노동당 집권은 그에게 결코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이와 별도로 인간 조승수에게 관심이 있다면, 앞으로 그의 개인적 소망이 이루어질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지난해 마라톤 하프 코스를 1시간50분에 주파한 그는 조만간 풀 코스를 완주하되, 담배를 끊지 않고 완주에 성공함으로써 이 땅의 애연가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엉뚱한’ 소망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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