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보좌진, 정책통 뜨고 정치 참모 진다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4.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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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보좌관, 전문성 지닌 인물로 판갈이 여성 많이 늘고 박사급 100명 넘을 듯
17대 국회는 싸우는 국회에서 벗어나 ‘정책 국회’가 될 것인가. 국회의원의 의정 활동을 최일선에서 돕는 보좌관의 역할이 새롭게 주목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만큼 보좌관들의 생존 경쟁이 치열한 적도 없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초선 의원이 1백87명으로 전체 의원 수의 63%나 되고, 불출마하거나 낙선한 의원이 1백59명에 달했기 때문이다. 과거 같으면 대부분 새 자리를 찾아 옮겼을 테지만, 의회 권력이 한나라당에서 열린우리당으로 교체되면서 ‘의원 판갈이’가 ‘보좌관 판갈이’로 이어진 것이다.

한나라당 보좌관들은 삼중고를 겪었다. 무엇보다 낙선자가 많다 보니 갈 수 있는 자리 자체가 줄었다. 게다가 당직자들이 밀고 들어왔다. 지도부가 당의 몸집을 줄이면서 당직자들을 4급 보좌관과 5급 비서관으로 채용해 달라고 초선 의원들에게 강권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좌관 한두 명을 지역구 관리용으로 돌린 것도 경쟁이 치열해진 한 이유였다(상자 기사 참조).

17대 국회 보좌관들의 최대 코드는 ‘전문성’이다. 열린우리당 채수찬 의원은 “보좌관을 뽑을 때 최우선으로 고려한 것이 정책 능력이었다”라고 말했다. 정보를 수집하고 정치적인 ‘그림’을 그리는 데 매우 능한 ‘정무 보좌관’들의 모습은 여의도 의원회관에서 거의 사라졌다.

여야 넘나들며 생존한 정책통들

대신 전문성이 있는 보좌관들은 여야를 넘나들며 생존했다. 열린우리당 김덕배 전 의원 보좌관을 지낸 김길성씨가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 보좌관이 된 것이 그런 경우다. 김씨는 건설교통위원회에 속한 의원들만 7년을 보좌했다. 김씨는 “상임위 임기가 2년인데 전문성이 없는 보좌진을 꾸리면 상황 파악만 하다가 임기가 끝난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권기술 전 의원 보좌관으로 있다가 열린우리당 조정식 의원 보좌관이 된 한인환씨, 국민통합21 정몽준 의원 보좌관에서 한나라당 김애실 의원 보좌관이 된 하현철씨, 한나라당 박원홍 전 의원을 보좌하다가 한나라당 정문헌 의원 보좌관이 된 이종헌씨도 같은 경우다.

정책 전문성이 부각되고 청년 실업이 심해지면서 17대 보좌관들의 학력은 역대 최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15대 국회 초반 19명에 불과하던 박사 및 박사 과정 수료자는 16대 국회 초반에 59명으로 늘었는데, 이번에는 100명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학력과 전문성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학력자들의 진출이 전체적인 정책 능력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17대에는 여성 보좌관도 많이 늘었다. 여성 의원 39명 대부분이 한두 명 이상 여성 보좌관을 채용했다. 보좌진 상당수를 여성으로 채운 의원들도 있다. 한나라당 진수희 의원은 4명, 열린우리당 홍미영·한나라당 이계경 의원은 3명을 여성으로 채웠다. 법사위 전문위원을 지낸 이명옥씨를 보좌관으로 기용한 한나라당 박세일 의원은 “투쟁의 정치를 끝내고 부드러운 정치, 정책 중심의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역할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17대 들어 보좌관을 주목하게 한 일등공신은 민주노동당이다. 진작부터 정책 중심 정당이 되겠다고 공언한 민노당은, 당에서 보좌관 100명을 공개 채용해 풀(pool)제로 운영하는 새로운 방식을 선보여 정치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당이 보좌관 임명권과 해고권을 가진 민노당은 울산 북구청 비정규직 직원이었던 곽병도씨, 변호사 강문대씨, 사천농민회 사무국장을 지낸 오갑수씨 등 ‘튀는’ 인물들을 보좌관으로 뽑았다.

정책 능력이 워낙 강조되다 보니 머지 않아 보좌관들의 공부 모임도 생겨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일부 보좌관들은 토론 모임인 ‘보좌관 수요 모임’을 준비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전병헌 의원은 “공부하지 않으면 살아 남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는 인식을 의원들이 공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런 흐름이 보좌관들에게 이어진 것이다.

지역구 출신으로 6명 중 5명 채우기도

그러나 17대 국회의 정책 능력이 과연 16대보다 훨씬 나아질지는 의문이다. 상임위가 확정되기도 전에 보좌진을 구성해야 하는 불합리한 체계가 여전히 작동했고, ‘바람’에 힘입어 당선된 신진 의원들의 경우 챙겨야 할 ‘공신’이 많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한 영남 의원은 보좌진 6명 가운데 5명을 지역구 출신으로 채웠다. 의원회관 주변에서는 17대 국회의 전문성이 16대보다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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