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경실련 정책 제안 3 빈곤한 삶의 질 높여 나가야
  • 許匡畯 기자 ()
  • 승인 1995.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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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 생활 보장하는 주거·복지 정책 부족…재원 확보해 ‘살 만한 서울’로
6·27 지방 선거를 앞두고 여야 각 당의 서울시장 후보가 결정되고 무소속 후보도 출마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선거에 거는 기대의 본질은 개혁에 대한 기대이다. 민선 지방 정부는 시민들이 던진 표를 바탕으로 해 수도 서울을 살 만한 곳으로 바꿔놓을 숙제를 짊어지게 된다. 달라지는 서울은 어떤 모습을 해야 할까. 최근 서울시 개혁을 위한 정책 대안을 제시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함께, <시사저널>은 서울이 풀어야 할 과제들을 살펴보고 그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호 환경·교통에 이어 마지막으로 주거·복지 분야에서 ‘자치 서울’이 선택해야 할 미래를 짚어 본다. <편집자>
서울은 살 만한 도시인가. 올해 초 시행된 한 조사에 따르면, 서울 시민들이 서울 생활에 대해 느끼는 만족도는 전국 74개 도시 중에서 26번째였다. 그나마 이 정도로 순위가 매겨진 것은, 자녀를 교육하고 직장을 얻을 기회가 크다는 이점 때문이었다. 안전한 생활(72위), 건강한 생활(70위) 같은 기준으로 보면 서울의 삶은 최하위였다.

10가구 중 6가구 아직 셋방살이

세계를 놀라게 한 한강의 기적 위에서 서울의 문제는 이미 먹고 입는 것이 아니다. 음식 쓰레기를 어떻게 줄이는가가 더 큰 골칫거리이다. 얼핏 보면 서울은 이미 기초적인 삶의 문제를 다 해결한 선진 도시처럼 보인다. 그러나 서울에 사는 열 가구 중 여섯 가구는 아직 제 집을 갖지 못한 채 셋방살이를 하고 있다. 집이 자기 소유인가 아닌가, 또는 그 집이 어느 동네에 있고 몇 평이나 되는가 하는 점이 서울 시민들을 여러 계층으로 나누는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

땅은 좁은데 사람은 많다 보니 서울은 언제나 집이 모자란다. 방 한 칸에 여러 식구가 모여 사는 단칸방 가구가 전체의 30%에 이른다. 최근 몇년간 2백만호 건설 조기 달성 같은 물량 위주 주택 보급 정책이 진행되기도 했다. 그에 따라 주택 보급률이 조금 나아졌지만, 인구 구조 변화나 지역별 사정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공급에만 매달린 결과 새로운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새 집은 자꾸 들어서고 있으나, 저소득층을 위한 소형 주택이나 공공 주택은 별로 늘어나지 않았다. 저소득층이 살던 불량 주택 지역을 뜯어고치는 주택재개발사업이 끝나고 보면 재개발지구 원주민이 다시 입주하는 비율은 10∼20%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일단 지어놓고 보자는 공급 위주 주택 정책에서 벗어나, 지역과 주택 수요층의 특성을 고려한 개발·공급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서울의 주택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우선 주택 공급 계획이 지역 사정에 맞게 세워져야 하고, 특히 서울의 경우 수도권을 포함해 광역 차원으로 정책 영역을 넓히지 않으면 안되는 것으로 지적됐다. 아울러 셋집을 빌려 사는 가구의 주거 안정책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어느 도시도 자가 주택 소유율 백%를 달성하고 있는 곳이 없음을 고려하면, 임차 가구에 대한 제도적 보장은 주택을 소유 개념에서 주거 개념으로 바꾸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공공 임대 주택은 저소득층의 주거 문제를 해결할 최선의 방책으로 손꼽힌다. 관련 학자들은 공공 임대 주택이 전체 주택 재고의 20% 정도를 차지할 수 있도록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2백∼3백평짜리 개인 주택과 ‘비닐하우스 주택’이 공존하는 곳이 서울이다. 주거 생활의 질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제처럼 최저 주거 기준과 적정 주거 기준을 정해 국가나 지방 정부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로 제기됐다.

복지 예산·전문 인력 태부족

복지는 주민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데 정책의 가장 큰 목표를 둔 현대 국가나 지방 정부가 제일 먼저 내세우는 슬로건이다. 지난 30년간 성장으로만 줄달음쳐온 서울도 이제 시민들의 복지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를 짊어지고 있다.

많은 학자들은 우리 사회의 복지 수요가 곧 폭발적인 증가를 맞게 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핵가족화와 결손 가정 증가로 인한 청소년·아동·여성 문제, 산업재해와 교통사고·직업병에서 비롯되는 장애인 문제, 인구 노령화 문제, 가족 해체와 공동체적 가치관 붕괴 등이 그 내용이다.

사회복지 문제는 흔히 재원의 문제로 치부된다. 그만큼 복지 영역은 재정적 뒷받침에 많이 기댄다. 서울의 재정 자립도는 98%로 다른 자치단체에 비해 훨씬 더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서울시 예산에서 복지사업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미미하다.
작년 서울시 총예산 8조원 중에서 사회복지 예산은 약 3천7백89억원으로 4.7%에 지나지 않는다. 이 속에는 사회복지와 직접 관련이 없는 공원녹지비나 청소사업비까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복지 수요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데, 이를 만족시킬 만한 서비스는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적은 예산도 효율적으로 쓰이지 않는 것으로 분석된다. 서울시의 사회복지비 대부분은 사회복지 시설 건립과 부대비용, 운영비로 쓰이고 있다. 또 노인 복지 세출액 약 2백99억원의 절반 이상인 1백56억원이 교통비 지원금으로 나간다. 이 지원금은 노인들의 사회적·경제적 사정과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지급되고 있어, 형평성과 효율성에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전문 인력이 부족한 것도 서울의 복지 당국이 풀어야 할 과제이다. 현재 생활보호 분야에는 사회복지 전문요원이 배치되어 있으나, 대부분 다른 업무를 겸임하기 때문에 전문성을 살리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다른 직종과 마찬가지로 사회복지 관련 공무원들도 잦은 순환 보직으로 전문가가 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사회복지 정책의 주대상은 산업화나 도시화 과정에서 소외 계층으로 남게 마련인 노인·장애자·부녀자·아동·청소년이다. 이들에 대한 복지 서비스는 전문 인력이 맡아서 제도적으로 풀어나가야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행정 기관이 담당하는 공적인 복지 서비스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 서울시와 중앙 정부, 서울시와 각 구 사이에 불합리하게 분산되어 있는 업무를 재정리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예를 들어 시 업무인 이웃돕기 관리와 고령자 취업 알선 센터 등은 기초자치단체로 넘기고, 결식 노인 지원이나 노인 요양원 보조금 지급같이 자금이 필요한 사업은 시가 맡아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행정 조직도 효율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시에는 사회복지국을 새로 만들어 복지 행정을 전문으로 맡게 해야 한다. 각 자치구에서는 기존 보건소를 보건복지사무소로 확대 강화해 명실공히 종합 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됐다. 물론 이런 기구가 제대로 가동할 수 있도록 전문 인력이 보충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자치 행정에서 주거와 복지가 중요한 것은, 그 둘이 시민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는 기초 조건이기 때문이다. 또 행정적으로 어려운 것은, 둘 다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공통점은 두 가지가 모두 ‘살 만한 도시’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점이다.

시민들은 서울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들 후보를 새 서울시장으로 뽑을 것이기 때문에, 이 두 분야는 후보자들이 꼭 넘어야 할 산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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