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마당]장기욱·민자당 기류·원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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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5.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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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더미에 앉은 장기욱 의원
정치권 ‘몰인심’에 씁쓸


민주당 장기욱 의원은 돈에 관한 한 까다롭기 그지없는 정치권에서 단서를 달지 않고 돈을 쾌척하기로 유명하다. 13대 꼬마 민주당 시절부터 동료 의원이나 당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그는 태연하게 주머니를 털곤 했다. 또한 그는 당의 궂은 일을 챙기는 데에도 동료 의원들 사이에서 모범생으로 꼽힌다.

장의원이 이처럼 야당에 쌈지 돈을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은, 마르지 않는 샘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의원은 돈 잘 버는 변호사다. 그런데 좀체 메마르지 않을 것 같았던 장의원의 호주머니가 텅텅 비었다. 그것도 그냥 마른 정도가 아니라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변호사 업무 때문이다.

그는 벌써 10여 년을 천수만 매립지 주민들이 현대건설을 상대로 제기한 피해보상 청구 소송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현재 재벌 기업과 국영 기업, 그리고 국가를 상대로 벌이는 집단 민원성 소송만 무려 11건을 맡고 있다. 돈 없는 서민들의 소송을 떠맡다 보니 자기 돈을 쓸 수밖에 없다. 그는 최근 검사 생활 12년 만에 마련했던 집까지 팔아 치우고 셋방살이를 한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태연하다. “어차피 돈은 한국은행 것이고, 돌고 돌게 마련이다. 한 건만 풀리면 곧 회복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물론 장의원도 섭섭해 하는 대목이 있기는 하다. 민주당 충남도지사 후보 자리를 노리다가 돈이 없어서 주저앉았기 때문이다. 그는 “누가 한 3억원만 저리로 빌려주면 출마하려고 했는데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며 못내 서운해 했다. 당지도부나 동료 의원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기가 차마 어려웠다는 얘기다.

이처럼 내색하지 않으니 아무도 장의원을 거들어주지 않는다. 부산시장에 출마한 노무현 부총재만 장의원의 빚보증을 섰다가 집이 저당 잡혀 선거운동 자금을 마련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그래서 그와 가까운 사람들은 ‘정치권처럼 인심이 야박한 동네도 없을 것’이라고 한마디씩 거든다. 자기가 급할 때는 손을 내밀던 사람들조차 정작 장의원이 어려운 처지에 놓이니까 모른 척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자당에 이상 기류
“차라리 박찬종 밀어주자”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해 민자당 내에는 ‘이상 기류’가 흐른다. 민주당 조 순 후보만 탈락시키면 되지 않느냐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박찬종 후보가 당선돼도 여당으로서는 그리 나쁠 것 없지 않느냐’ 하는 논리이다. 사석에서는 농반 진반으로 “될 사람을 밀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도 나오는 실정이다. 이런 정서는 최근 관훈토론회 등 일련의 후보 텔레비전 토론회가 끝난 뒤에도 민자당 정원식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높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조심스럽게 확산돼 가는 추세다.

민주당 인사들은 아예 대놓고 “민자당이 머지 않아 정원식 카드를 사실상 포기할 것이다”는 얘기를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처음 박찬종씨를 민자당 후보로 영입하려고 했던 여권내 사조직 일부가 박후보의 선거운동을 암암리에 지원하고 있다”는 소리도 흘린다.

이에 대해 민자당 김운환 조직위원장은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펄쩍 뛴다. 그는 “집권 여당이 후보를 내고 그런 얕은 수를 쓴다는 게 상식으로 납득할 수 있는 일이냐. 현재 분위기가 좀 침체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결코 선거 결과를 비관하지 않고 있으며 총력을 기울여 정후보를 지원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원식 후보 진영의 표정은 밝지 못하다. 박찬종·조 순 후보에 비해 뒤늦게 결성된 당 선거대책위원회가 초반부터 삐걱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대책위원으로 임명된 일부 인사들은 감투의 무게를 서로 비교하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리는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당의 내분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조 순 후보와 마찬가지로 정원식 후보도 정계의 쓴맛을 단단히 보고 있는 형국이다.

교생실습 원혜영 의원
‘민주주의 강의’ 때 목청 높여


현역 국회의원이 ‘교사 신분’으로 중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민주당 원혜영 의원(44)은 자신의 지역구인 부천시 오정구 덕산중학교에서 교생 실습을 하고 있다. 네 차례나 제적과 복학을 거듭한 끝에 내년 2월 서울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할 예정인 원의원은, 다섯 주 동안 아들뻘 학생들을 상대로 국사와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원의원은 “고등학교로 가고 싶었는데 실력이 없어서 중학교로 밀려났다”고 너스레를 떨고 있는데, 실제로 중학생인 원의원의 두 아들은 이웃 학교에 다니고 있다.

국회의원답게 원의원은 교과서에 실린 민주주의 역사와 정치 제도를 가르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저절로 목청이 높아진다고 한다. 원의원은 “호기심 많은 때라서 그런지 아이들도 국회의원 선생님의 수업 시간에는 귀를 쫑긋 세운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한편 원의원의 부친인 원경선씨(82)는 상장을 받으러 지난 6월2일 남아공화국 수도인 푸리토리아로 날아갔다. 유엔이 환경 보호에 기여한 인물들에게 수여하는 ‘글로벌 500’상을 타기 위해서이다. 원경선씨는 아들이 세운 풀무원 식품의 본거지인 풀무원 농장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농민들과 함께 유기농법을 실천한 인물로 유명하다. 원의원이 국회에서 환경 분야를 전공 과목으로 삼는 것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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