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누가 뭐래도 참는다"
  • 崔 進 기자 ()
  • 승인 1995.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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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 불만 많으나 신당 창당 안할 듯…“15대 총선 물밑 지원” 예측도
전두환 전 대통령과 가까운 한 전직 고위 관리는 전씨를 ‘정치 감각이 뛰어난 현실주의자’라고 평했다. 흔히들 밀어붙이고 때려부수는 탱크식 강공만이 전씨의 주특기인 것으로 알지만, 그에게는 참을 때는 참고 격한 감정을 숨길 줄도 아는 현실 정치 감각이 의외로 발달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전씨의 불 같은 성질대로라면 문민 정부 들어 그는 벌써 여러 차례 ‘일’을 저지르고도 남았을 것이다. 최근 잇달아 터져나온 4천억 비자금 발언 파문과 12·12 테이프 문제만 해도 전씨로서는 울화통이 터질 일이다. 그런데도 그는 한마디도 없이 침묵하고 있다.

한번 5공은 영원한 5공

그러나 연희동에서 숨죽여 지내는 전씨의 심기가 얼마나 뒤틀려 있는지는 측근들의 반응에서 잘 드러난다. 특히 현 정권에 대한 전씨 진영의 불만은 거의 위험 수위에 다다른 느낌이다. “칼국수 먹는다고 개혁이 다 되는가.” “지난 6·27선거 때 민자당이 5백억을 썼다는 보도를 보니, 정치 자금을 한푼도 안받겠다고 큰소리 떵떵 치던 대통령의 약속은 새빨간 거짓말 아닌가.”

전씨 진영은 김윤환 대표 체제 출범과 여권 핵심부의 5,6공 끌어안기에 대해서도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전씨 측근들은 3공에서 5,6공을 거쳐 김영삼 정부에 이르기까지 권력 상층부를 달려온 김윤환 대표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현 정권의 5,6공 포용 전략에 대해서도 “5공 인사란 도대체 누구를 말하느냐”고 되물었다.‘한번 5공은 영원한 5공’이라는 불문율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들은, 5공 이후 정권에 몸담은 사람들을 순수 5공 인맥으로 쳐주지 않는다.

장세동 전 안기부장, 안현태 전 경호실장을 비롯해 김용갑 전 총무처장관, 민정기 전 민정비서관, 전씨의 법정 대리인인 이양우 변호사, 박희도·김진영 전 육참총장, 권복경 전 치안본부장, 염보현 전 서울시장 정도가 충실한 ‘전두환 사람’으로 통한다. 매주 한 차례 이상 배구·농구·골프로 종목을 바꿔가며 운동을 하거나 등산을 하며 우의를 다져나가고 있는 이들 5공 골수 인사들은, 최근 들어 집권 민주계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서석재 전 총무처장관의 4천억 비자금 발언과 12·12 관련 녹취 테이프 공개가 자기들의 목을 죄려는 다분히 의도된 ‘공작’일지 모른다는 의혹을 갖고 있다. 전씨의 한 핵심 측근은 “89년 국회 청문회를 통해 5공 비자금에 대한 검증은 모두 끝났다. 노태우씨나 3김씨가 돈을 얼마나 펑펑 쓰는지나 알아 보라”고 화살을 돌렸다. 12·12 테이프에 대해서도 이들은 “누군가 의도적으로 흘렸고 녹취 내용 또한 자의적으로 편집됐다”고 주장했다.

5공 주역들의 논리대로라면, 전씨는 앉아서 당하기만 하는 억울한 사람이다. 대통령의 재가도 없이 계엄사령관을 불법으로 체포 감금하고, 무장 병력으로 중앙청을 포위한 반란 행위, 그리고 광주 학살이 적어도 전씨 측근들에게만은 당연하거나 무관하거나 또는 불가피했던 일이다.

5공 신당설에 대해서도 이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민정기씨는 “한번 정권을 잡아보았는데 무엇이 아쉬워 당을 새로 만들겠느냐. 우리는 평범한 생활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사실 5공 신당 창당은, 명분과 간판 스타가 없고 구여권 인사들의 응집력도 예전 같지 않아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안기부장을 지낸 한 고위 인사는, 전씨에게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다는 적극적인 의지가 없고, 설사 있더라도 현 정권이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들어 5공 신당설을 일축했다.

그런데도 신당설의 유령은 여전히 살아서 정가를 떠돌고 있다. 전씨가 정치에서 완전히 손을 떼기에는 아직 젊은 나이인 데다 추종자들이 여전히 많으며, 자금력이 탄탄하고 민자당에 대한 대구·경북 정서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는 몇 가지 정황이 신당설의 근거로 제시되기도 한다. 정당을 만들지는 않더라도 측근들의 15대 총선 진출을 뒤에서 도와주고 다음 대선 때 정국의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관측도 있다. 민자당의 대구·경북 출신 인사들이 탈당하면 그 개연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청와대는 전씨에 대해 ‘여차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며 단호하다. 청와대 한 고위 인사는 “5공 인사들이 당을 만든다면 여론이 가만 있겠는가. 조용히 있는 것이 그들에게는 최선이다. 12·12와 5·18에 대해서도 전씨측은 대통령에게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이 아무리 어지럽다고 해도 5공 인사들이 재기를 거론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것이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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