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계 사조직 재정비 경쟁
  • 吳民秀 기자 ()
  • 승인 1996.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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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계, 민주산악회·나사본 등 사조직 정비 한창…‘그 날’ 대비해 전력 가다듬기 분주
갑자기 민주계가 부산해졌다. 92년 대선 때 김영삼 후보 밑으로 구름처럼 모였던 사조직 멤버들이, 대결전을 앞두고 다시금 몸 만들기에 돌입했다. 당시 YS 진영의 양대 산맥이던 민주산악회(민산·회장 최형우)와 나라사랑운동실천본부(나사본·본부장 서석재), 그리고 청년층 전위 조직인 중앙청년회(중청·회장 김덕룡)가 그것이다.

지난 10월22일 저녁 7시. 사위가 어두워질 무렵 서울 남산 중턱에 자리잡은 중국음식점 동보성. 입구 알림판에는 ‘나사본 모임, 7시 대실’이라고 적혀 있었다. 총선 직후부터 정치권에서 조직 재건 얘기만 떠돌았을 뿐, 언론에 한 번도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나사본이 처음으로 대규모 모임을 가진 것이다.

이 날 모임 참석자는 부장급 이상 간부들로 대략 30명. 과거 나사본에서 일했던 핵심 인사들은 다 모인 셈이다. 직능 조직답게 전직 언론인, 정부 산하기관 이사장, 정치권 인사 등 직종도 다양하고, 나이도 30대에서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고르게 퍼져 있었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7시15분쯤 서석재 의원이 현관 문에 들어섰다. 로비에서 기다리던 기자가 “불청객이 왔습니다” 하고 인사하자, 그는 다소 뜻밖이라는 표정을 짓더니 악수를 청하고는 2층 대실로 올라갔다. 그동안 나사본은 동우회 형식으로 삼삼오오 모임을 가진 적은 있지만, 서의원이 직접 참가하는 정식 행사를 치른 적은 없었다.

이 날 주최측은 동지들끼리 오랜만에 밥이나 먹자고 모인 것이니 못본 체하고 넘어가 달라며 기자의 출입을 통제했다. 제발로 찾아오는 데야 막을 재간이 없지만, 내부에서 논의되는 내용까지 공개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지 말아 달라는 주문도 있었다.

그러나 이 날 모임은 어느 모로 보나 ‘밥이나 먹자고’ 모인 것이 아니다. 우선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시기에 서의원이 직접 참가했다는 사실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정치권에서 조직의 귀재로 통하는 그는 나사본과 불교계 인맥을 기반 삼아 투자처를 물색하고 있다. 최근 들어 서의원은 당내 차기 후보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YS 의중을 전달할 거중조정자 역할도 활발하게 모색하고 있다. 서의원의 행동 하나 하나에 차기 주자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구나 나사본은 사조직이다. YS가 차기 주자들 ‘발언 수위’까지 통제하는 마당에, 그보다 훨씬 민감한 사안인 조직과 관련된 문제는 건드리는 순간 터질 폭탄이나 다름없다. 이런 상황에서 서의원이 나사본 조직 정비에 나섰다는 사실은 결코 간단히 보아 넘길 사안이 아니다. 이 날 한 국장급 참석자는 모임의 성격을 ‘기름칠’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한 해석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오랫동안 창고에 처박았던 기계를 돌리려면 우선 녹슨 곳을 닦아내고 요소요소에 기름칠부터 해야 하는 법이다.

92년 대선 당시 전국 2백만 회원을 자랑했던 나사본은 아직까지도 조직의 전모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겨우 국장급 이상의 핵심 책임자 몇 사람만 정치권에 이름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워낙 소리를 내지 않고 움직이는 서석재 의원의 조직 관리 스타일에다가, 직능별 조직이라는 특성 때문에 점조직 식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92년 당시에도 지방의 한 청년 조직이 사전 선거운동 혐의로 언론에 포착된 것을 빼놓고는 별다른 사건이 없었다.

나사본이 오랜 잠복 끝에 이제야 처음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면, 민산의 움직임은 이미 여러 차례 언론의 안테나에 걸려들었다.

최근 황명수 전 의원을 회장으로, 박태권 전 의원을 본부장으로 추대한 민산은 지난 7월4일 전국 지부장 및 협의회장 회의를 가져 정치권의 이목을 끌었다. <시사저널>이 단독 보도한 이 모임 이후에도 조직을 재정비하려는 민산의 움직임은 좀체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민산은 10월15일 대전에서 회장단 이하 간부들 3백여 명이 대규모 등반대회 겸 단합대회를 가지려다가 갑자기 취소했다. 최형우 고문의 일거수 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눈들을 의식한 것이다. 그러나 지역별 소규모 모임은 비밀리에 계속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10월28일 박태권 본부장은 서울의 한 호텔에서 새로 뽑은 17개 지구 책임자와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현재 민산은 과거 2백30만 회원을 거느렸던 위용에는 못미치지만 그 절반 수준인 백만명을 회원으로 확보하고 있다고, 이 조직의 한 관계자는 말한다. 전국 3백여 시·군·구 지구 조직을 복원했고, 몇몇 지구 조직 책임자들을 새 얼굴로 교체하고 있다. 박태권 본부장이 이 작업을 진두 지휘하고 있는데, 10월28일 모임도 그 연장선인 셈이다.
최형우 조직 확대, YS가 허락?

물론 민산 활동의 목표점에는 반드시 최형우 고문이 있다. 회원들도 사석에서는 서슴없이 ‘최형우 대망론’을 입에 올린다. 과거 민주화 투쟁 때 고생하던 사람들의 고통을 알아주는 사람은 오직 최형우 한 사람뿐이라는 것이다.

한편 최근 여권 일각에서는 요즘 민산이 반공개적으로 조직 확대 작업을 벌일 수 있는 까닭을 전혀 다른 차원에서 해석하는 인사들도 있다. 최고문과 YS 사이에 사전 교감이 없었다면, 가장 예민한 조직 문제를 그처럼 치고나갈 수 있었겠느냐는 분석이다. 최고문이 권력 핵심부에 향후 자신이 ‘킹 메이커’로 변신할 수도 있다고 약속한 대가로, 민산 조직 확대에 대한 양해를 얻어낸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다.

가장 조용한 쪽은 중청이다. 92년 대선 때 김덕룡 정무장관이 지휘한 30만 청년 조직인 중청은, 대외 활동을 자제하는 김장관의 스타일 때문인지 아직까지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그러나 최근 나사본과 민산 조직 재건에 자극된 일부 회원들이 ‘중앙’에 강한 불만을 털어놓았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한 핵심 간부가 전국을 돌면서 아직 때가 아니라는 논리로 설득 작업을 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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