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마당] 서청원 · 김홍신 · 한화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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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6.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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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파 서청원 “미치겠네”여야 강경 대치에 속앓이

대립 상황이 첨예해질수록 온건파나 협상파는 설 자리가 없다. 대립하는 양쪽으로부터 동시에 공격 받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서청원 신한국당 총무가 꼭 그런 경우다. 그는 여야 강경 대립의 와중에서 온건 협상론을 주장하며 사태 해결에 나섰다. 야권은 겉으로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성격이 원만하고 야당에 대한 이해가 깊은 그가 일을 잘 해결해 주기를 기대했다. 여당은 강경론이 지배하는 가운데서도 대야 관계가 원만한 그에게 물밑 협상을 맡겼다.

그러나 여야가 추가 영입 강행과 보라매 집회 강행으로 치달으면서, 가뜩이나 협소했던 서총무의 입지는 더 좁아졌다. ‘개원 전 추가 영입은 절대 안한다’며 야권 달래기에 나섰던 서총무는 양쪽으로부터 모두 원망을 들었다. 여권 핵심에서는 ‘서총무가 성과에 연연해 당 방침과 관계없이 너무 앞질러갔다’라고 은근히 비난했고, 야권에서는 ‘힘 없는 서총무 말만 믿다가 뒤통수를 맞았다’라고 볼멘 소리를 했다.

‘괴로운 협상파’ 서총무에게는 새 변수가 등장했다.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가 그것이다. 이 사안을 잘만 활용하면 여야 대타협 분위기를 조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감을 얻은 여권 핵심부가 정국 정면 돌파를 고집하고 야권이 요지부동이면, 협상은 더더욱 힘들어진다.
초지일관 김홍신 세비 수령 ‘나홀로 거부’

받네 안 받네 말이 많던 5월분 국회의원 세비가 지난 5월31일 의원들 통장으로 일제히 입금되었다. 그동안 5월 세비를 안 받겠다고 공언한 민주당 의원은 8명. 그러나 김홍신 의원만 빼고는 모두 세비를 받았다. ‘첫 월급 수령 거부 운동’을 시작했던 김홍신 의원은 끝까지 통장번호 제출을 거부해, 15대 의원 2백99명 가운데 유일하게 첫 세비를 안 받은 의원이 되었다.

난감해진 국회 사무처는 김의원에게 공문을 보냈다. 세비는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공법상 권리이므로, 수령해서 깨끗한 정치를 위해 쓰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내용의 부탁성 공문이었다. 그러나 김의원의 입장은 단호하다. “임기는 48개월인데 봉급은 49개월치를 받는 게 말이 되느냐”라는 것이다.
김의원이 끝까지 세비 수령을 거부하면, 이 세비는 ‘정부보관금’ 계좌로 들어갔다가 5년 후 ‘잡수입’으로 국고에 귀속된다. 귀한 첫 봉급이 잡수입 처리가 되더라도 5월분 세비는 포기해야 원칙이라는 것이 김의원의 소신이다.

국회 법제예산실 정부 혼낼 준비 완료

국회사무처 법제예산실 직원들은 국회 개원이 불투명한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번에야말로 행정부 공무원들에게 국회가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똑바로 보여주려고 별렀기 때문이다. 94년 8월 국회의 입법 기능과 행정부 감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제예산실은 14대 국회 하반기 1년여 동안 역량을 축적한 뒤 15대 국회에서는 개원 초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벌일 계획이었다.

본격적인 활동이란, 행정부의 실책과 그릇된 법제 운용을 지적하는 자료를 만들어 해당 상임위 의원들에게 배포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그동안 이승훈 법제예산실장은 정부로부터 욕을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우리는 의원들을 잘 보좌하는 것이라며 직원들을 독려해 왔다. 그 결과 행정부의 원성을 들을 만한 자료를 많이 준비해 놓았다고 자부해온 터였다. 6월 한 달 동안에만 독도·뇌사 인정 문제 등 따끈따끈한 국정 현안 자료 30여 건을 의원들에게 나눠줄 예정이었다. 국회 사무처가 행정부의 시어머니 노릇을 하겠다고 나설 정도로 세상은 변했지만, 개원을 협상 대상으로 삼는 정치 풍토만은 변하지 않았다.
억세게 운없는 한화갑 전남도지부장 꿈 이룰까

국민회의 한화갑 의원은 30년 정치 인생을 볼 때 억세게 운이 안 따르는 편이다. 한의원은 지난해 민주당 전남도지사 후보 경선에서 막판에 출마를 포기했다. DJ가 중앙 무대에 남으라고 지시했기 때문이었지만, 실제로는 그의 전남도청 입성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당내 일각의 움직임에 때문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사실 전남 도백을 향한 한의원의 집착은 대단하다. 93년 민주당 전남도지부장 경선에 출마했던 것도 이 자리를 도청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에도 그는 자신의 핵심 참모가 주민등록증을 지참하지 않은 바람에, 한 표 차이로 유인학 의원에게 졌다.

그렇다고 그가 꿈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그는 지금 국민회의 전남도지부장을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다. 물론 98년 지방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이다. 총재로부터 내락도 받았고 당내 여론도 괜찮은 편이다. 그럼에도 한의원측은 경선이 아닌 지명을 원한다. 워낙 굴곡을 자주 겪어서인지 이번에는 ‘무혈 입성’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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