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안보카드인가” DJ 질겁
  • 崔 進 기자 ()
  • 승인 1995.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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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인회 구속 여파 확산 우려, ‘표적 수사’ 의혹 품은 채 정면 대응 자제
“또안보 카드인가!” 촉망받던 허인회 당무위원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전격 구속되자 국민회의 사람들 입에서 탄식처럼 튀어나온 첫마디다. 비자금 공방에 총력전을 펴던 국민회의로서는 허씨의 갑작스런 구속이 등 뒤의 복병이자 날벼락이었다. 허씨 사건은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김대중 총재의 색깔론과 곧바로 연결된다. 지난 세 차례 대선에서 DJ가 패배한 원인을 지역 감정과 용공 시비 때문이라고 단정하는 DJ 진영에 허씨 사건은 불길한 조짐이 아닐 수 없다. 91년 대선 직전에 터진 이선실 간첩 사건은 지금도 동교동 사람들의 피부에 닭살이 돋게 만드는 악몽이다.

국민회의 “비자금 정국 초점 흐리기”

아직 이렇다 할 물증이 없어 내놓고 말은 못하지만, 국민회의는 허씨 구속 사건을 비롯한 최근 일련의 정황에 여권의 안보 카드가 숨겨진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을 품고 있다. 주로 간첩의 진술에만 의존하는 안기부의 수사 방식도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수법과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국민회의는 지난 11월11일 성명에서 ‘간첩 김동식은 허씨 외에도 서울과 경기도의 민자당 원외 지구당위원장을 만났다는 내용이 전해지고 있다. 당국은 사실 여부를 국민 앞에 밝히라’며 여권에 의혹의 화살을 날렸다. 국민회의쪽 사람만 표적 수사를 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허씨 구속을 계기로 불거진 여권의 ‘안보 카드설’은 한 달 전쯤인 10월12일 북한군 상좌 최주활씨가 귀순해올 때부터 야권 일각에서 제기됐다. 지금까지 귀순한 북한 병사 중 가장 높은 계급인 최씨는 “김정일은 북의 군부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으며 전쟁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말해 느슨해진 안보관의 고삐를 당겼다.

최씨 발언으로부터 서서히 달궈지던 안보 정국은 지난 10월17일 무장 간첩이 임진강 유역으로 침투하려다 1명이 사살된 사건이 발생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박계동 의원이 노태우 비자금 건을 터뜨리기 바로 이틀 전이었다. 그로부터 1주일이 채 지나지 않은 10월24일 후방인 충남 부여에서 2인조 간첩이 출몰하는 사건이 또 다시 발생했다. 바로 이런 판에 허씨 사건이 터진 것이다.

곧바로 우익 단체가 기민하게 움직였다. 시내 곳곳에‘북한동조 좌경세력 무장간첩 다름없다’‘방심하면 또 당한다 경계하자 폭력집단’ 등등의 플래카드가 자유수호총연맹 명의로 내걸렸다. 국민들의 흐트러진 안보 의식을 나무라는 내용의 사설이 거의 연일 신문 지면을 장식했다.

DJ는 이 위기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이번에 허씨 문제를 명백히 밝히지 않고 넘어갈 경우 당장 내년 4월 총선에서 또다시 색깔론 시비에 휘말릴지 모른다는 것이 국민회의의 걱정이다. 국민회의는 나름대로 안보 카드의 베일을 벗길 정황 근거는 갖고 있지만, 이렇다 할 물증이 없어 정면 대응은 자제하고 있다. 다만 허인회씨가 변호인인 강철선 의원과의 면담에서 혐의 사실을 완강하게 부인한 것에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있다.
허씨는 국민회의가 충분한 검증을 거쳐 영입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다. DJ는 그가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운동권 출신이기는 하지만, 컴퓨터 사업을 하며 건실한 청년 사업가로 변신한 점을 높이 평가해 그를 당무위원으로까지 발탁했다. 허씨는 대학을 졸업한 이후 지금까지 정치적인 사건에 연루된 적도 없었다. 그는 김민석 영등포 을 지구당위원장과 함께 국민회의내 30대 선두 주자로 꼽힌 유망주이기도 하다.

그런 허씨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으니, 그동안 군 출신 인사와 비호남 출신 인사 영입 그리고 심지어 5·18에 대해 다소 유화적인 대응까지 해가면서 온건 보수 이미지 만들기에 힘을 쏟아온 DJ로서는 어느 정도 타격을 입은 것이 사실이다. 국민회의가 추가 조직책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운동권이나 재야 출신 인사들은 ‘보이지 않는 해’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내심 이번 허인회 구속 사건을 노태우 비자금 사건의 초점 흐리기 전술로 보고 있는 국민회의는, 허씨 사건과는 별개로 YS의 대선 자금 공개를 촉구하는 대여 공세를 더욱 강화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비자금 바람’과 ‘안보 바람’ 가운데 어느 쪽의 풍속이 더 거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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