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선 단독 인터뷰]"DJ 위에 무소속 출마"
  • 丁喜相 기자 ()
  • 승인 2000.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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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 보성에서 한영애 의원과 격전 예고
지난해 옷 로비 사건으로 낙마한 박주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49)이 장고 끝에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이 한영애 의원을 공천한 전남 화순·보성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도전장을 내기로 한 것. 그는 2월26일 오전 <시사저널> 기자와 단독으로 만난 자리에서 처음으로 출마 결심을 공식 확인했다. 서울 강남의 한 일식집에서 마주한 박씨는 “오늘부로 출마하기로 마음을 굳혔다”라고 서두를 꺼냈다.

그 순간 마침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제가 당원도 아닌데 제게 무슨 경고를 한단 말입니까?” 어딘가를 향해 어이없다는 투로 답변을 마친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출마 여부를 저울질한다는 보도들이 나오니까 민주당에서 누군가 나에게 경고를 했다고 보도진에게 말한 모양이다. 그런 일도 없었지만, 당원도 아닌 내게 경고한다는 것은 공당이 할 일이 아니다.” 그는 이어 자기가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당장은 민주당이 난처해 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착잡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던 그는 이내 총선 출마와 관련한 자신의 심경을 풀어 갔다.
명예 회복을 위해 출마하는 건가?

“총선에 나서서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명예야 재판을 통해 자연스럽게 회복되어야 한다. 이번 출마는 김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역사에 성공하는 대통령으로 남는 데 내가 도울 일이 더 남아 있다는 믿음에서 결심했다. 대통령 주변에 평생 몸 바쳐서 충성해온 분들이 많지만 이제 몸과 마음에 더 보태 머리까지 바쳐 충성할 일꾼도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부족하나마 내 나름의 능력을 발휘해 진정으로 보필하려고 한다.”

이미 민주당이 한영애 의원을 공천한 뒤여서 집권 세력 핵심부에서 일했던 그의 출마 결심은 김대통령에 대한 도전으로 비칠 법도 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그는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옷 사건 때 내가 여론 재판 식으로 구속된 데 대해 대통령께서도 억울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문제는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의혹이 부풀려져서 5개 국가기관이 조사를 한 후 진상이 드러났는데도 이제 또 사건 진상과 상관없이 여론을 의식해 내가 자숙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고민해온 것도 내 명예를 떠나 혹시 나의 거취가 대통령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누군가 정치적으로 ‘김대통령이 잘못 가르쳐서 저렇게 나온다’고 할까 봐 항상 고민해 왔다. 그러나 너무 앞질러서 고민할 문제는 아니라고 마음을 정리했다.”

혹시 김대통령이 만류한다면 어떻게 하겠나?

“그런 일은 없으리라 본다. 대통령께서도 내가 억울하게 되었다는 점을 잘 알고 계시니까. 출소 후 김대통령이 위로 전화를 주셨다. 국가 원수와 나눈 이야기를 다 말할 수는 없지만 그 분이 내게 ‘억울한 일을 당해 가슴아프다. 나도 살아오면서 억울한 옥살이를 많이 하고도 이렇게 일어서지 않았느냐. 그간의 고생을 위안으로 삼고 힘을 내라’고 격려하셨다.”

그는 출마를 결심하게 된 가장 큰 배경이 고향인 화순·보성 주민들의 성화라고 밝혔다(지난해 말 그가 옷사건으로 구속되어 있을 때 그의 고향 주민들은 억울한 옥살이를 풀어 달라며 1만5천여명이 탄원서에 서명해 재판부에 제출했다).

“출소 후 아직까지 오해를 살까 봐 고향 선영에도 못 들렀다. 그런데 화순·보성 주민들이 나를 가만히 놓아두지를 않았다. 끊임없이 내게 찾아와, 국민의 정부를 위해 일하다 야당의 정치 공세로 억울하게 꺾인 일꾼을 그대로 놓아둘 수 없다며 총선출마추대위원회까지 만들었다. 처음에는 김대통령에게 누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만류했다. 그러다가 ‘그럴 줄 몰랐는데 무책임한 공직자이다’라거나 ‘그대로 주저앉은 채 고향 땅을 밟거든 가만 두지 않겠다’라는 협박성 성화까지 듣게 되었다. 화순 지역에서 더 극성스럽게 추대위원들의 성화가 이어지고, 민주당 공천자가 확정된 후에도 여론조사에서 내가 높게 나온다고 떠미는 통에 결국 결심했다. 전국적으로 가장 낙후한 이 지역에서 주민들이 내게 거는 지역 발전 일꾼이 되어 달라는 기대를 저버리지도 않고, 김대통령이 역사의 위인으로 남는 데 진정으로 충성할 수 있는 길은 출마 쪽이라는 결론을 내린 거다.”
민주당이 출마하지 말아 달라고 설득하면 어떻게 하겠나?

“공당의 처지에서는 이미 공천자를 결정했기 때문에 그쪽을 우선할 거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집권 중반기를 제대로 뒷받침하는 데 누가 더 적임자이냐 하는 기준에서는 당에서 절대 이익을 생각하는 분도 있으리라 본다. 나는 공천 신청도 안했지만 민주당에서 내부 사정을 들어 나를 설득하고 불출마를 권유하려 한다면 만나기는 하겠다. 그러나 반대 의사를 한번 비쳤다는 정도로만 해석하고 출마는 하겠다.”

사실 민주당 당직자들 사이에서는 박주선 전 비서관이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데 대해 `‘그럴 만하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그가 억울하게 당했다고 보는 동정 여론도 있고, 공천을 받은 한영애 의원에 대해 서울은 물론 광주·전남 시민단체에서도 잘못된 공천의 표적으로 거론하고 나서서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공천을 끝낸 터여서 당의 공식 입장은 그의 출마를 난처해 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박씨는 당선 후 누가 더 현정권에 기여할 수 있느냐는 ‘인물론’을 무기로 들고 나오는 셈이다.

박씨로 하여금 민주당에 공천 신청을 못하고 이렇듯 우회적인 방법으로 총선에 나서게 한 것은 옷로비 사건이다.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재직하면서 명쾌한 일 처리로 대통령의 신임을 한몸에 받아 정권의 핵심 실세로 통했던 그는 지난해 옷 로비 사건에 휘말려 구속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올해 초 보석으로 풀려나기는 했지만 그는 이 사건 이후 대통령과 정부에 누를 끼쳤다면서 두문 불출해 왔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죄 아닌 죄로 억울하게 당했다는 한을 아직도 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가령 사직동팀 최초 보고서는 내가 본 일도, 누구에게 준 일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는데도 아는 친구들조차 언론에 보도된 뜬소문을 기정 사실화해서 ‘누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라며 위로하려 든다. 이런 기막힐 일이 어디 있나. 옷사건은 국민 불신 풍조가 빚은 최대의 희극이다.”

그는 옷사건의 핵심 본질을 ‘형사 사건으로서의 옷사건은 단연코 없었고, 국민에게 도의적으로 손가락질을 받을 만한 장관 부인들의 떼거리 행태만 있었다’라고 말했다. 공직자 부인들이 IMF 상황에서 국민에게 위화감을 주는 장소를 떼를 지어 출입한 문제는 도의적으로 비난하고 시정할 일이지 형사 처벌 대상은 아니었다는 것. 바로 그 기준으로 결론 내린 일을 마치 자기가 형사 사건을 축소 은폐했다는 식으로 여론몰이를 한 것이 법적으로나 상식적으로 너무 억울하다는 항변이다.

사실 그가 지나치게 여론과 정치의 집중 표적이 되었다는 점은 공격수였던 한나라당 관계자들도 사석에서 시인하는 일이다. 특히 법조인 출신 야당 의원의 경우 기자들 앞에서 박씨가 법적으로 억울하게 당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검사 출신인 한나라당 이사철 대변인이 대표적인 예이다. 박씨와 사시 16회 동기인 그는 한때 당직자 회의에서도 특수부 검사 시절 박씨가 보여준 청렴성을 설명하며 그럴 사람이 아닌데 지나치게 억울하게 당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나 박씨는 현재 공문서 유출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무죄를 확신한다고 하지만 재판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그런 박씨가 이번 총선에 무소속으로 나서겠다고 전격 선언하면서 민주당에는 적지 않은 파문이 일 전망이다.

박씨와 금배지를 다툴 민주당 한영애 의원은 현재 지역구에 내려가 표밭갈이에 한창이다. 박씨가 무소속으로 도전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한의원측은 “그가 출마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당초 공천 신청도 않고 무소속으로 나서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출마하면 DJ 진영과 30년 지기인 한의원과 옷사건으로 DJ정부에 부담을 준 박주선씨 중 누가 더 정부·여당에 힘을 불어넣어 줄 일꾼인가를 분명히 가르는 전략으로 지역민의 심판을 받겠다”라고 밝혔다. 박씨가 무소속 출마를 공식 선언함으로써 DJ와 ‘특별한’ 인연을 가진 두 인물이 각축전을 벌일 화순·보성 지역구는 총선 기간 내내 관심을 끌어모으는 선거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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