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정수도에 ‘풍수’는 없다
  • 시사저널윤무영 (foto@sisapress.com)
  • 승인 2004.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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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 후보지 모두 ‘기본’인 배산임수도 갖추지 못해 좌청룡 우백호 형세인 천안 일대가 ‘그나마 나은 편’
어느 곳이 행정수도 최종 후보지가 될 것인가. 국민투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후보지 네 곳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높아가고 있다. 신행정수도 건설추진위원회(추진위)는 7월 초 최종 후보지를 발표할 계획이다.

주목되는 것은 최종 후보지를 선정하는 데 풍수적인 요소가 고려된다는 점이다. 평가위원 81명은 인구 분산 효과, 도로 접근성, 생태계 보전 등 20개 항목에 걸쳐 후보지들을 집중적으로 검증하는데, 이 가운데 들어 있는 ‘배산임수(背山臨水)’라는 항목이 바로 풍수 요소이다. 20개 항목 가운데 가중치가 1.12로 가장 낮지만, 풍수적인 평가가 국민들에게 미치는 심리적인 체감 지수는 가중치보다 훨씬 높다.

<시사저널>은 신행정수도건설기획단 자문위원을 지낸 고제희 대동풍수지리학회 이사장과 함께 후보지들을 둘러보았다. 지난해 8월5일부터 올 4월15일까지 자문위원을 지낸 고이사장은 당시 자문위원 50명 가운데 유일한 풍수지리 전문가였다. 그는 KBS 라디오와 EBS에서 풍수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중앙문화센터 강사와 수원대 풍수지리학과 겸임교수를 역임하는 등 이론은 물론 현장에 정통한 풍수가로 평가되고 있다.

고이사장은 과거 도읍터들을 분석하고 역대 자료들을 섭렵해서 추출한 다섯 가지 분석틀로 후보지들을 평가했다. △전통적인 명당 개념인 배산임수(背山臨水) 형국인가 △외적을 막는 데 적합한 험준한 산이나 깊은 강이 있는 산하금대(山河襟帶) 조건을 갖추었나 △국운이 번창하는, 생기가 왕성한 곳인가 △주된 기관이 들어설곳에, 양기(陽氣)를 보호할 진산(鎭山)은 있는가 △진산을 기준으로 본 후보지의 길흉은 어떤가 등이다.

고이사장은 ‘수도’와 관련지어 본다면 후보지 네 곳 모두 풍수적으로 좋은 편이 아니지만, 굳이 나은 곳을 택한다면 충남 천안 일대라고 말했다. 배산임수 조건이 취약하기는 하지만 좌청룡 우백호 형세를 갖추는 등 상대적으로 약점이 덜하다는 것이다.
후보지 가운데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다. 충북 청주에서 북쪽으로 20km 지점이고 청주국제공항과는 15km 거리이다.

고이사장은 “동서는 막히고 남북이 트인 터로 배산임수와는 거리가 멀다”라고 말했다. 남북이 트였기 때문에 당연히 ‘방어’ 기능이 취약하다. 이곳은 또 동쪽보다는 서쪽의 산들이 높은데 풍수에서는 이를 큰 부자가 되지 못하는 형국이라고 본다. 한천천이 미호천과 만나 후보지 가운데를 곧게 흘러 빠져나가는 것도 풍수적으로 좋지 않다. 수도와 관련지어 본다면 패절지지(敗絶之地·대가 끊어질 자리)에 해당하기 때문에 적합하지 않다.

그렇다면 지맥을 타고 흘러 물을 만나 응집하는 생기(生氣)는 왕성할까. 풍수에서는 물이 흘러가는 형세가 좋아야 생기 또한 왕성하게 모이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곳은 기를 오므려줄 산도 없고 생기를 강화시켜 줄 ‘큰 물’(外水)도 없다. 이곳처럼 물길이 Y자형으로 흘러 빠지는 것을 풍수에서는 화성수(火星水)라고 부른다. 재산이 모이지 않는 터라는 것이다. 고이사장은 “북서풍이 세차게 불어와 오히려 생기가 달아나는 형국이다”라고 말했다.

함박산(390m)을 진산으로 도시를 건설하면 서향이 되지만 안산(案山·주산과 가까이 있어 책상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산)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생기 공급이 약한 것도 단점이다. 남북으로 펼쳐진 들판으로 인해 좌청룡 우백호도 형성되지 않았다.

충남 천안시 일대

경부고속도로가 한가운데를 동서로 꿰뚫고 있다. 천안과 6km, 청주와 13km 거리이다. 경부고속철도·호남고속도로도 가깝다.

북서쪽에 있는 흑성산(519m)에서 남동쪽으로 흐른 지맥(地脈)이 백운산(240m)을 거쳐 세성산(218m)으로 솟았기 때문에 진산(鎭山)은 세성산이다. 세성산 정상에 올라 보니 북으로 독립기념관에서, 남으로 상록리조트까지 후보지 일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낮은 구릉들이 이어져 있어 개발하기는 어렵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고이사장은 “산방천과 병천천 등이 모여 한 곳으로 흐르긴 하지만 물이 매우 적어 국가의 도읍지가 들어설 정도로 생기가 왕성한 곳은 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북쪽이 허하고 남쪽은 높은 봉우리들이 가로막아 선 북저남고(北低南高) 지형으로 배산임수도 취약하다.


충남 연기군·공주시 일대

대전과 청주에서 10km 지역에 위치했고, 후보지 가운데 국토의 중심에 가장 가깝다. 북쪽만 뚫려 있고 삼면이 산에 가려 있다.

고이사장은 “북서풍이 세차게 불어올 터로 배산임수 조건을 갖추지 못했고, 앞이 높고 뒤가 낮은 이런 땅을 풍수적으로는 후손이 많지 않은 땅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북쪽은 방어가 취약하고 남쪽은 험한 산과 깊은 강(금강)이 있어 마치 배수의 진을 친 형국이다. 풍수에서 물은 재물을 상징하는데 이곳처럼 들어오는 물이 짧고 흘러가는 물이 멀리 보이는 곳은 재물이 빠져 나가는 경우가 많다.

도시 축을 남향으로 한다면 전월산(200m)이 진산이 되는데, 현장에 가보니 전월산 바로 앞에 금강이 흐르고 있었다. 핵심 기관이 들어설 만한 공간이 전혀 없었다. 풍수적으로 진산이 없는 형국이다. 좌청룡 우백호도 갖추지 못했다. 전월산 북쪽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했던 ‘백지계획’에서 진산으로 삼았던 국사봉(213m)이 있는데, 국사봉은 후보지에 들어 있지 않다. 고이사장은 “영역을 조정해 국사봉을 진산으로 삼는다면 풍수적으로 좋다”라고 말했다.

충남 공주시·논산시 일대

계룡산(829m)과 노성산(315m)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으로 남쪽이 넓게 트였다. 대전에서 서쪽으로 13km 떨어진 지역이다.

고이사장은 “산과 물이 어긋나고 있다. 큰 산에는 큰 물이 있어야 하는데 큰 물인 금강은 부여 쪽으로 흘러가고 있어 생기가 흩어진다”라고 말했다. 동쪽 계룡산에서 발원한 노성천이 노성산 앞을 지나며 남쪽으로 흘러가는데 좌우에서 기를 오므려주는 산이 없다. 노성산 능선은 둥근 형국인데 풍수에서는 이를 재물운은 있으나 관운은 없는 것으로 본다. 작은 산들이 이어져 있어 진산으로 삼기에는 약해 보였다. 노성산에서 앞을 바라보니 중간에 너른 들은 있으나 계룡산이 막고 있어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고이사장은 “만약 암반이 드러난 계룡산을 진산으로 삼는다면 국운이 험난해지는 등 마땅히 진산으로 삼을 산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곳은 생기가 응집하지 못해 가난해지는 터라고 그는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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