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리더 시리즈 ⑨ /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4.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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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과 현실 고리 엮는 ‘교섭 숙련공’
3040 리더 중 최초로 농성장에서 인터뷰할 뻔했다.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1번 심상정 의원. 그녀는 지난 6월22일부터 동료 의원 9명과 함께 국회 본청 122호실에서 이라크 파병 철회를 촉구하는 무기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심의원이 텔레비전 토론 준비차 약식 리허설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인터뷰 장소가 의원회관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달라질 것은 없었다. 농성장에서건 의원회관에서건 그녀는 늘 당당하고 강하다. 특히 텔레비전 토론에서 그녀가 논리정연하게 상대를 공격할 때면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이 괜히 생겼겠나 싶다.

본인 주장에 따르면,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얼마 전, 33년 만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은 “세상에 너처럼 얌전하고 말수도 없던 애가 어떻게 이렇게 변했니?”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독특한 점이 있다면, 역사에 관심이 유별났다는 정도? 저녁 어스름이 깔릴 즈음이면 먼 데서 다이너마이트 터지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리던 경기도 파주에서, 6·25에 얽힌 야사 따위를 흥미진진하게 들으며 성장한 그녀는 1978년 서울대 역사교육과에 진학하는 것으로, 역사학도라는 자신의 꿈에 한 발짝 다가섰다.

그러나 유신 말기였던 그 시절,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는 않았다. 학창 시절 구로공단에 취업하면서 일찌감치 노동운동에 뛰어든 그녀는 1985년 6월 저 유명한 구로동맹파업으로 영광과 상처를 동시에 얻었다.

노선 논쟁 비켜선 ‘실천형 진보주의자’

‘6·25 이래 최초·최대의 정치적 파업’이라고 기록된 파업을 성공시켰다는 것은 분명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파업 이후 당시 핵심 사업장이던 대우어패럴과 효성물산이 잇달아 직장을 폐쇄하거나 상호를 바꾸면서 2천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쫓겼다. 막내딸이 ‘빨갱이 두목’처럼 전국에 지명 수배된 데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심장병과 안면마비 증세를 얻었다. 이 두 가지는 두고두고 그녀의 가슴에 무거운 짐으로 남았다.

그 뒤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에 합류한 그녀는 동유럽 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또 한번 쓰라린 경험을 했다. 서노련 주축이었던 김문수씨(현 한나라당 의원)를 비롯해 평생 동지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운동판을 떠날 때 그녀는 정말로 가슴이 아팠노라고 회고한다.

언젠가 다른 인터뷰에서 그녀는 “내가 여자였기에 그때 현장에 남았을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여자였기에, 비주류였기에, 그래서 비타협적으로 양심을 고수할 수 있었기에 그녀는 노동 현장에 남았다.

그렇게 노동 현장 지키기를 25년. 그녀는 단병호 의원과 더불어 한국 노동운동의 산 역사로 손꼽힌다. 민주노총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시절, 그녀가 미혼 여성의 몸으로 쟁의부장·쟁의국장을 지낸 것도 노동계에서는 전설처럼 회자된다.

그녀의 ‘택’(전술)은 대담하기로 유명했다. 한 예로 1989년 서울대에서 열리기로 되어 있던 전노협 결성준비대회가 경찰의 원천 봉쇄로 무산될 뻔한 일이 있다. 당시 동료들은 서울대를 포기하고 가두 시위를 하자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시흥·낙성대 등으로 나눠 관악산을 넘으면 서울대 집결이 가능하다”라며 대회를 고집했고, 결국 경찰의 허를 찌르는 데 성공했다.

지금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그녀는 ‘영원한 사무처장’이기도 하다. 1996년부터 민주노총 산하 금속연맹 사무차장을 거쳐 전국금속노조 사무처장을 맡아왔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쌓은 ‘교섭 짬밥’이 국회에서도 도움이 되더라며 그녀는 하하 웃는다(현재 그녀는 민주노동당 수석부대표로서 원 구성과 관련된 각종 협상에 임하고 있다).

국회 입성 이후 그녀는 국회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개판’이라는 데 놀라고, 그럼에도 ‘17대가 16대보다는 양호하다’는 의정 유경험자들의 평가에 두 번 놀랐다고 한다.

그렇다고 절망하지는 않는다. 비록 비교섭단체이기는 하지만 보수 양당이 민주노동당 눈치, 나아가 국민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든 것만으로도 진보 정당은 성공적인 출발을 했다고 심의원은 자평한다.

진보 정당의 앞날에 대해서도 그녀는 낙관적이다. 원칙과 현실은 백지장 한 장 차이라고 믿는 그녀는 진보 진영이 늘 원칙적이되 현실적일 것을 주문한다. 이를테면 민주노동당의 진로가 사회주의냐 사민주의(사회민주주의)냐를 따지는 것은 현재로서 무의미하다고 그녀는 잘라말한다. 약자나 이방인을 차별하지 않을 만큼 ‘펀더멘털한 가치’가 정립되어 있지 않은 사회에서 체제를 논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실천형 진보주의자’인 그녀는 과거 그 흔한 노선 논쟁에도 휘말려 본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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