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 정치' 대 '개평 정치' 누가 이길까
  • 안철흥 기자 (epigon@e-sisa.co.kr)
  • 승인 2001.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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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영·김종필, 격력한 공방 점입가경…
반정부 투사·유신 본당 '태생적 앙숙'


개평 정치'와 '기생(寄生) 정치'. 일상적으로 험구가 난무하는 최근 정치권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이 두 단어는 단연 튄다. 앞의 것은 한나라당 이부영 부총재가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를 향해 내뱉은 말이고, 뒤의 것은 그에 대한 자민련의 '공식 답변'이다. 이부총재의 말과 자민련의 논평을 좀더 풀어보면 이렇다. '지역 민심을 내세워 개평 정치를 해 온 김종필씨는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한다.' '근대화 과정에서 삽질 한 번 안하고 어영부영 기생해 온 이부영씨는 비열한 짓을 그만두라.' 이쯤 되면 서로에 대한 예의나 격식 따위는 낄 틈이 없다.




더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 사이의 이런 공방이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8월에도 이부총재는 'YS와 JP를 껴안을 필요가 없다'며 JP와의 화해를 모색하던 이회창 총재를 비판한 바 있다. 1998년 봄에는 '쿠데타를 일으켰고, 정경유착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사람이 총리가 되어서는 안된다'며 총리 인준 반대를 선도했다.


두 사람 사이가 최악이었던 때는 1995년, JP가 자민련을 창당하고 정치 재기를 모색하던 무렵이다. 당시 두 사람은 '쿠데타로 장 면 내각과 지방자치를 뒤엎은 장본인이 내각제와 지방자치를 얘기할 수 있느냐' '김일성 사망 때 조문하자고 날뛰던 사람이 누구의 전력을 비판하느냐'면서 공방을 벌였다.


"두 사람은 화해할 수 없는 사이"


한쪽은 9선으로 현역 최다선 의원이며 국무총리만 두 번을 지낸 '영원한 2인자'. 다른 한쪽은 3선의 야당 중진. 두 사람 다 현 정치권에서 평균 이상의 무게를 지니고 있다. 여야로 갈려 있는 것 빼고는 두 사람이 이렇게까지 척질 이유 또한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그래서 JP와 이부영 의원의 질긴 악연은, 언뜻 보면 미스터리하기까지 하다.




물론 DJ나 YS도 이부총재의 비판 과녁에서 벗어나 있지는 않다. 그러나 두 사람에 대한 비판은 '지역 할거주의에 의존하고 있다'거나 '권력욕의 화신'이라는 선에서 머무른다. 정치 행태에 대해 비판할 뿐 JP에 대한 비판처럼 과거 이력까지 들추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이부총재가 선수(選數)에 걸맞지 않게 'JP 저격수'를 자임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해답은 아무래도 두 사람의 이력에서 찾아야 할 듯하다. 6·3 세대의 대표 주자인 이부총재는 한·일 국교 정상화 반대 투쟁을 주도하면서 사회운동을 시작했다. 한·일 국교 정상화는 다름아닌 JP의 '작품'. 이렇듯 서로 출발선부터 엇물린 두 사람은 1970년대를 거치면서 '유신 본당'과 '반정부 투사'로 더욱 멀어졌다. 두 사람은 항상 극과 극이었다. 둘은 지금껏 한 번도 같은 자리에 선 적이 없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부총재가 DJ와 정치를 함께 할 때 JP는 반대편에 있었고, JP가 DJ와 손을 잡았을 때는 이부총재가 DJ 곁을 떠난 뒤였다.


같은 개혁파이자 재야 출신인 민주당 김근태 최고위원이 '학생운동 선배'라고 부르면서까지 JP 끌어안기에 나서고 있는 것에 견주면, 이부총재의 JP 비토는 참으로 유별나다. 이에 대해 이부총재 주변에서는 이부총재가 유신 시절 의문사한 장준하 선생의 문하였다는 점을 일깨운다. 화해할 수 없는 사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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