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김이 뭉쳐 '킹 메이커' 될까
  • 안철흥 기자 (epigon@e-sisa.co.kr)
  • 승인 2001.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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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회창·영향력 유지' 이해 관계 맞아…
국민 반발 등 난제 많아 미지수


요즘 정치권에는 낯선 만남이 잦다. '골수 개혁파' 김근태 민주당 최고위원이 '원조 보수'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 '반DJ의 기수' 김영삼 전 대통령과 연달아 만났다. 박근혜 한나라당 부총재는 선친의 정적이었던 YS와 22년 만에 '역사적인 화해'를 했다. 박부총재는 노태우 전 대통령과도 만났고, 전두환 전 대통령도 만날 예정이다. 현실 정치에 대한 발언을 삼가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강재섭 한나라당 부총재와 만나 '지도자의 7대 덕목'을 언급한 것도 화제가 되었다.




원조 : 킹 메이커라는 말을 유행시킨 김윤환 민국당 대표(왼쪽). 그는 1987년 노태우 후보, 1992년 김영삼 후보를 '킹'으로 만들면서 주가를 높였다. 그러나 킹 메이커로서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오른쪽)의 실력도 만만치 않다. 1997년 대선에서 DJ를 지원한 그는 이회창 후보를 지원한 김윤환 대표를 누르고 킹 메이커가 되었다.


연초 이승만·박정희 전직 대통령 묘소와 YS의 자택을 방문하면서 '아버지 순례'를 했던 이인제 민주당 최고위원의 최근 행보도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지금이 봉건시대냐'며 킹 메이커론을 강하게 비판하던 그도 결국 논산시장 보궐 선거의 공천권을 양보하는 것으로 JP와의 관계 회복을 시도했다. 그는 보궐 선거에서 자민련 후보가 승리한 뒤인 4월28일에야 마침내 JP와의 '면담'에 성공했다. 그는 최근 '이인제는 배신자라는 YS의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함구하기도 했다.


3김에 대한 공개적인 찬사가 나오는 것도 오랜만이다. "3김은 산업화·민주화의 고통스런 과정에서 역사를 일궈냈다"(이인제) "YS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김근태) "일부 정책 실패에도 불구하고 3김은 역사에 대단히 큰 족적을 남겼다"(노무현) 같은 말들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3김 청산' 같은 구호가 언제 제기되었던가 싶다. 이처럼 3김을 향한 러브 콜이 이어지는 이유는 이들이 이른바 '킹 메이커'이기 때문이다.


YS와 JP. 이들이 킹 메이커로 힘을 발휘하는 까닭은 현재 여권에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를 누를 절대 강자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지역 대결 구도가 여전한 상황도 지역 맹주인 이들 '옛 보스'의 부활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YS는 운기조식, JP는 뜸 들이는 단계




4월16일 DJP 회동 직후 JP는 이례적으로 직접 화법을 써가며 이렇게 말했다. "안되겠다는 사람은 안되겠다 하고, 이 사람이다 싶으면 성의껏 도울 것이다." 당연히 JP가 킹 메이커를 자임했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이에 YS측이 '진짜 킹 메이커는 우리'라며 발끈했다. 이렇게 이 두 사람이 앞다투어 킹 메이커론에 불을 지피면서 대선 전초전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YS는 〈시사저널〉이 최근 실시한 영남 유권자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에 영향을 미칠 영남권 인사 1위로 꼽혔다. '나라 망친 대통령' 소리를 듣던 1년 전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그러나 YS측은 아직 좀더 힘을 비축할 필요가 있다고 여긴다. "1년 반 후면 YS의 영향력이 완전히 회복될 것이다. YS는 차기 대선에서 분명한 역할을 한다." 대변인 격인 박종웅 의원의 말이다.


YS가 아직 운기조식 단계라면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는 이미 뜸을 들이는 수준. 그는 1992년에 YS, 1997년에 DJ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바 있다. 그러나 선거 막판까지 속내를 보이지 않는 것이 JP의 오랜 전략. 1997년 막바지에 가서야 DJ의 손을 들었다. 당시 그는 "10월에는 10월의 논리가 있고, 11월에는 11월의 논리가 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런 그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는 일찌감치 노선을 정한 듯하다. '석양을 붉게 물들이고 싶다'면서 킹 메이커 대열에 선착한 그는 이어 '유종지미를 거두겠다' '서드 샷까지 들어갈 것' 등의 선문답식 발언을 통해 이미 DJP 공조 자세를 분명히 취했다.


킹 메이커를 얘기하면서 빠뜨릴 수 없는 사람이 김윤환 민국당 대표다. 김대표는 흔히 킹 메이커의 원조라고 불린다. 그가 첫 번째로 만든 '킹'은 노태우 전 대통령. 1987년 대통령 선거 전 노태우씨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후계자가 되는 데 결정적으로 공헌하면서 그는 킹 메이커로 떠올랐다. 그는 1992년 선거 때도 당내 소수파인 YS를 대통령 후보로 만들었다. 1997년 대선 때도 비록 본선에서는 실패했지만, 이회창씨를 신한국당의 대통령 후보로 만드는 수완을 보였다.


김윤환, '킹 메이커의 메이커'로 역할 변경




당시 그는 민정계의 대표였고 TK의 맹주였다. 킹 메이커로서 그의 전적은 2승 1패. 그러나 지금은 처지가 다르다. 그는 대주주로 있던 한나라당에서 쫓겨났고, 민국당을 창당했으나 총선에서 실패했다. 지금은 의석수 2개인 미니 정당 대표에 불과하다.


허주는 이번 선거에서는 '킹 메이커의 메이커'로 자신의 역할을 설정하고 있다. 69세로 총선 실패라는 굴욕까지 당한 그가 은퇴 대신 출사표를 던진 까닭은 '대통령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될 사람'인 이회창 총재의 대통령 당선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 그는 3김을 묶어 단일 후보를 만들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이미 JP와 호흡을 맞추었고, 여세를 몰아 DJ와 정책 연합을 이끌어냈다. YS와도 나쁘지 않은 관계를 맺고 있다. 그가 예전의 묘기를 다시 보여줄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한 사람 더. 무어니 무어니 해도 여권 최후 최대의 킹 메이커는 DJ다. 결국은 그가 지명하거나 지지한 사람이 여권 후보가 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러나 계속되는 정책 실패로 레임 덕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청나라에는 황태자가 없었다. 5대 황제였던 옹정제는 권력 누수를 막기 위해 자기가 죽은 뒤에야 후계자가 공표되도록 제도를 바꾸었다. 그렇게 해서 왕자들을 분할 통치함으로써 권력 누수를 막았다. DJ도 이런 식의 후계 구도를 꾀할 터. 그러나 이미 레임 덕 징후가 보이기 때문에, 차기 구도가 DJ의 손을 떠나서 전개될 가능성도 크다.


민주당 권노갑 고문과 한화갑 최고위원 간에 지난해 벌어졌던 '양갑 전쟁'도 사실상 킹 메이커 역할을 누가 하느냐를 놓고 다툰 것이다. 한위원이 킹과 킹 메이커 양쪽에 한 발씩 걸치고 있는 반면, 권고문은 대선 관리자로 자기 위치를 굳혔다. 철저히 DJ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그는 민주당의 차기 후보를 만들어내는 막후 역할을 할 것으로 점쳐진다. 그는 4월23일 서울 시내 음식점으로 동교동계 의원들을 초청해서 결의를 다졌다. 김대중 대통령의 뜻이 실려 있는 대통령 후보라면 그가 누가 되었든, 개인적 이해 관계가 어떠하든 함께 움직인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는 것이 참석자의 전언이다.


이들이 현재 여권의 킹 메이커를 자임하는 인물들이다. 킹 메이커는 '킹'을 만드는 사람을 뜻한다. '후보'를 아무리 만들어 보아야 '킹'을 만들 수 없으면 헛일이다. 문제는 현재의 정치 지형상 혼자서는 아무도 킹 메이커가 될 수 없다는 점. 이들이 연대를 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과연 이들이 반이회창 연대를 이루고, '킹 메이킹'을 할 수 있을까.


이들 사이의 개별 만남은 활발한 편이다. JP와 김윤환 대표의 만남은 이미 3당 정책연합으로 결실을 맺었다. YS와 JP도 한 차례 회동했고, 머지 않아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JP와 권노갑 고문은 4월23일 골프 회동을 했다. 그 날 권고문은 기자들의 물음에 '모든 샷이 잘 된다'고 했다. JP의 '서드 샷'에 이은 은유로 들린다.


그러나 여전히, 최후의 단계인 3김 연대는 미지수다. DJ와 YS의 화해가 전제되지 않는 한 3김 연대는 불가능하다는 점이 현실의 '킹 메이킹 게임' 전망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DJ를 비롯한 여권 핵심은 이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 YS도 '3김 연대는 모두 언론이 만들어낸 말'이라며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JP조차 아직 말을 아끼고 있다. 과연 DJ와 YS의 화해는 가능할까.


이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그러나 두 사람이 단일 후보를 내야만 양김의 정치적 입지가 보장된다는 측면에서 결국은 손잡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우세하다. 두 사람의 화해를 주선하는 김윤환 대표는 "두 사람이 끝까지 화해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단일 후보를 내는 데는 동의할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종웅 의원도 찾아오는 사람은 누구든 만날 것이라면서 연대할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물론 김윤환 대표가 기획하고 있는 3김의 '마지막 킹 메이킹'이 열매를 맺을 수 있을지는 아직 의문이다. 우선 차기 구도를 짜는 데서부터 이견이 생길 소지가 있다. '이기기 위해서 연대한다'고 말하는 김대표는 3김 연대의 조건으로 영남 후보가 나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도 영남후보론에 긍정적인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이인제 최고위원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다. 이위원이 '진짜 킹 메이커는 여론'이라며 반발하는 배경에는 '선택'받지 못할 때를 대비한 배수진의 의미도 숨어 있다는 해석이다.


또한 현재와 같은 'DJP+김윤환'의 밀월이 임기 말까지 지속된다는 보장도 물론 없다. 현재의 구도는 레임 덕을 늦추며 개혁을 마무리하겠다는 DJ의 계산과, 교섭단체를 만들고 차기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JP의 계산이 맞아떨어진 결과이다.


그러나 민심은 급속하게 이반하고 있고, 이는 4·26 보궐 선거 패배로 나타났다. 민주당 안에는 위기 의식이 팽배해 있다. 정체성을 찾기 위한 개혁파의 움직임도 본격화할 조짐이다. 이들의 킹 메이킹 시나리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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