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설 '뭉게'…YS·JP, 마지막 불꽃 태우는가
  • 김종민 기자 (jm@e-sisa.co.kr)
  • 승인 2001.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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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설 등 대선 공조 시나리오 '뭉게'…이회창 "좌시 못해"
한때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이슬람이 이회창 총재를 도왔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았다. 지난 9월12일 YS와 JP가 만나기로 한 바로 전날 미국에서 테러 사건이 터져 두 사람의 회동이 무기 연기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DJ와 영수회담을 추진하고 있던 이총재측은 YS가 JP와의 회동을 전격 추진하자 YS에게 선수를 뺏겼다고 당혹스러워했다. 두 사람이 만나면 남북 문제에서 보수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이한동 총리 해임안 추진, 자민련 교섭단체 문제를 거론할 텐데, 그것이 이총재에게 작지 않은 압박 요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YS·JP 회동이 연기된 후 이총재는 9월18일 JP와의 회동을 전격 성사시켰다. 이번에는 이총재가 ‘새치기'를 한 것이다. 한나라당의 한 인사는 "JP와의 회동 순서가 뒤바뀐 것이 이총재에게는 무척 다행이었다"라고 숨을 돌렸다. DJP 공조 파기 이후 정국의 유동성이 한층 높아진 상태였다. 이총재가 JP와 먼저 만나 2야 정책협의회를 구성하기로 하는 등 공조 체제를 굳힌 것은 일단 유동 정국의 주도권을 확보할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10월엔 10월 논리 있고
11월엔 11월 논리 있다"


2야 공조가 얼마나 가겠느냐는 의구심도 적지 않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한 인사는 "꼭대기까지 오르지 못할 나무라도 올라간 만큼 이익이다"라고 여유를 보였다. 설사 가다가 잘못되더라도 한나라당으로서는 간 만큼 득이라는 것이다. 우선 한나라당은 원내 1당으로서 국회 운영의 주도권을 확고하게 틀어쥐었다. 특히 2야가 특별검사제법·방송법·남북교류협력법 등을 개정하기로 한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내년 대선 국면에서 이총재에게 큰 암초가 될 검찰·방송·남북 문제를 제어할 힘을 확보했다고 판단해서다. 자민련에게도 손해 나는 장사는 아니었다. 특히 교섭단체 붕괴 이후 급속히 기울어 가던 당세를 회복하고 자민련이 아직 힘이 있음을 보여준 것이 최대 수확이다.


그러나 양측 모두 한·자 동맹이 끝까지 갈 것이라고 단정하지는 못하고 있다. 단적인 예가 교섭단체 문제. 이총재측은 여전히 원칙론을 들어 자민련 교섭단체 구성에 협조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자민련의 몸집을 불려주면 후환이 되리라는 우려가 짙게 깔려 있다.


자민련 일각에서도 오히려 한나라당이 교섭단체를 구성하도록 해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이들은 2야 공조를 통해 힘을 비축한 후 독자 노선으로 지방 선거에서 승부를 거는 것이 자민련이 살길이라고 본다. 올해 정기국회만 지나면 굳이 교섭단체를 구성해야 할 필요가 없는데 공연히 한나라당에 부채를 질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다.


JP는 1997년 DJP 후보 단일화에 합의하면서 ‘10월에는 10월의 논리가 있고 11월에는 11월의 논리가 있다'는 말을 했다. JP의 이 어법을 최근 상황에 대입한다면 ‘국회 정국에는 그에 맞는 논리가 있고 대선 정국에는 또 그 때의 논리가 있다'는 말이 된다. 정가에서는 JP가 국회 정국에서는 한나라당과 2야 공조에 주력할 것이지만 내년 초 대선 정국이 본격화하면 지방 선거를 겨냥해 독자 노선을 강화하리라고 본다. 만일 내년 지방 선거에서 독자적 입지를 확보하지 못하면 자민련의 운명이나 JP 대망론이나 물 건너가기 때문이다.


JP-YS-창 3차 방정식, 연말 이후 답 나올 듯




JP가 지방 선거를 겨냥해 승부수를 띄운다면 YS가 유력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두 사람의 9월24일 회동에 대해 양측에서는 이구동성으로 ‘차원 높은 얘기'가 오고갔을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내년 대선과 관련해서 두 사람의 협력 가능성이 논의되었으리라는 관측이다. 정가에서는 YS·JP가 힘을 합쳐 신당을 구성하리라는 전망도 나돌고 있다. 이른바 ‘신민자당 추진설'이다. 김윤환 민국당 대표는 일단 민주당과의 2여 공조를 깰 수 없다고 했지만, 내년 대선 정국이 본격화하면 합세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관건은 내년 지방 선거. 지방 선거를 앞두고 YS·JP가 정통 보수·원조 보수 깃발을 내걸고 신당을 만들면 부산·경남 지역과 충청권에서 전과를 기대할 수 있다. 김혁규 경남도지사와 심대평 충남도지사는 기반이 튼튼하다. JP가 독자 노선을 강화하면 충청권의 민심이 호응했던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대전도 수성이 가능하다는 것이 자민련측 전망이다. YS측 인사인 김광일 전 의원이 내년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어 부산·경남과 대전·충청의 지방 선거 진용을 얼추 그려 볼 수 있다.


JP는 9월21일 "지금은 어렵지만 내년에는 허리를 펴고 주먹을 쥘 수 있을 것이다"라고 지지자들을 독려했다. 지방 선거에서 근거지 확보에 성공한다면 허리를 펼 수 있을 것이고, 그 후 JP 대망론이나 박근혜 한나라당 부총재 영입 등 대선 카드를 빼들고 주먹을 쥐어 보겠다는 얘기로 들린다. YS 역시 차기 대선에서 분명한 행동을 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박종웅 의원은 아직 YS가 무엇을 선택할 시점은 아니라면서도 "YS와 이총재와의 관계가 잘 되겠느냐"라고 회의적으로 내다보았다.


한나라당은 YS·JP의 대선 공조 시나리오에 대해 소설일 뿐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YS·JP라는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릴 수는 없고 대선 주자와 관련해서도 JP 대망론·박근혜 영입론·이수성 추대론 등 동상이몽인 상태여서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총재의 한 측근은 "과욕을 부리면 지난 총선 때 민국당의 실패를 되풀이할 것이고, 최악의 경우 3김 동반 퇴장 사태까지도 올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여차하면 한나라당 입당 의사가 강한 자민련 의원들을 대대적으로 영입하는 작업에 나설 수 있다며 반격 카드도 내밀었다.


YS·JP에 대해 정치 선배에 합당한 예우를 갖추겠지만 주도권을 침해당하지는 않겠다는 이회창 총재. 정오의 태양은 못되었지만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여 보겠다는 JP. 차기 대선에서 킹메이커로 나서 실패한 대통령의 불명예를 씻겠다는 YS. 이들이 만들어내는 3차 방정식은 정기국회가 끝나는 올 연말 이후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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