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첫인상, 12월을 좌우한다
  • 김종민 (jm@sisaperss.com)
  • 승인 2002.0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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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주자들, ‘이미지 전쟁’ 돌입…‘젊은 이회창’ ‘겸손한 이인제’ 등 선보여
1월17일 이회창 총재의 신년 기자회견장. 전 같으면 나이 많은 중진 의원들이 배석해 있어야 할 이총재의 뒤편에 깔끔하게 차려 입은 젊은이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나라당의 젊은 당직자들이었다. 올 대선의 핵심 쟁점이 될 세대 교체 공방에 대비해 나이 많고 보수적이라는 이총재의 이미지를 완화하려는 연출이다.




1월18일 YTN과 첫 텔레비전 토론을 가진 이인제 민주당 상임고문은 토론 내내 부드럽고 겸손한 말투로 전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 원래 이미지가 강한 데다가 대세론을 등에 업고 있는 만큼 교만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애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1월16일 당내 경선 출마 선언을 앞두고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 진영에서는 선언 장소를 제주도로 할 것이냐는 문제를 놓고 잠시 진통을 겪었다. 가뜩이나 이벤트에 신경 쓴다는 부정적 인식이 있는 상황에서 약삭빠른 이벤트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그러나 새롭고 참신한 시도로 비칠 수 있다는 의견이 강해 결국 제주도로 결론이 났다.


2002 대선 경쟁이 시작되면서 바야흐로 대선 주자들의 이미지 전쟁에 불이 붙고 있다. 말 한마디, 발걸음 한 번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며 본격적으로 이미지 관리에 들어간 것이다. 특히 이번에는 역대 어느 대선보다 후보들의 이
미지 전쟁이 치열하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여론조사 기관 폴앤폴의 조용휴 대표는 “3김씨와 달리 유권자에게 이미지가 거의 형성되어 있지 않은 새로운 주자들이 대거 등장했기 때문에 이미지 전략이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새 주자 대거 등장, 이미지 대결 어느 때보다 치열




이미지컨설팅 기관인 ‘씨디렉션’ 이완순 실장은 “이회창·이인제 씨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선 주자들의 인지도가 전체적으로 낮기 때문에 초기 이미지·첫인상이 중요하다”라고 진단한다.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을 경우 첫인상이 강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오른쪽 표 참조).


역대 대선에서도 이미지 전쟁은 항상 치열했다. 1987년 대선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던 노태우 후보는 ‘보통 사람의 시대’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군 출신·권위주의 정권의 계승자라는 이미지를 씻는 데 톡톡히 재미를 보았다. 당선된 뒤에도 그는 이미지 관리를 위해 해외 순방길에 가방을 직접 들고 다니거나 와이셔츠 차림을 연출하기도 했다. 1992년 대선에서 여당 후보로 나선 YS는 귀공자 타입·눌변·왜소한 체격이 주는 부정적 이미지를 없애고 강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머리를 까맣게 염색하고 동작과 목소리에서 단호한 인상을 주었다. 슬로건을 ‘신한국 건설’로 하고 로고를 곰으로 정한 것도 강하고 우직한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해서였다.


1997년 대통령 선거 때 DJ 진영 선거 전략가로 활동했던 한 인사의 얘기다. 야당 후보로 나선 DJ에게 가장 큰 장벽은 과격하고 권위적이고 독선적이라는 이미지였다. 이 때문에 특히 여성 유권자들에게 호감도가 높지 않았다. 그런데 그 해 9월 초 텔레비전 아침 프로그램에 출연한 DJ가 어려웠던 과거 얘기를 하던 중 여동생이 약 한 첩 못쓰고 죽었다는 얘기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딱히 의도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 장면이 시청자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 DJ의 과격한 이미지를 없애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방송을 계기로 여성 유권자들의 지지도가 눈에 띄게 올랐다고 한다.


대선에서 흔히 쓰는 이미지 전략은 긍정적 이미지를 지닌 인물과 자신을 연결하는 이른바 ‘캐릭터 프로젝트’. 1992년 미국 대선에서 클린턴은 케네디 이미지를 따오기 위해 연설할 때 탁자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는 동작을 반복했다. 현재 대선 주자 중에는 노무현 민주당 상임고문이 <노무현이 만난 링컨>이라는 책을 펴내 링컨과 연결하고 있고, 국가 쇄신을 주장하는 정동영 고문은 ‘한국에도 케네디가 필요하다’며 케네디와 자신을 오버랩시켰다.


노무현 ‘링컨’, 정동영 ‘케네디’ 흉내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이미지 전략은 자칫 가볍게 느껴지거나 무리한 연결로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1997년 대선에서 이인제 후보가 박정희 신드롬을 활용해 박정희 흉내를 낸 것은 지식층에 오히려 역효과를 내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선에서 국민들이 대통령 후보에게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경제 문제 해결 능력 △신뢰감과 도덕성 △유연하고 활력 있는 리더십이라고 진단한다. 우선 IMF 체제 이후 구조 조정이 아직 진행되고 있고 국제 경제 환경도 불투명해 경제 문제에 대한 우려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또 각종 게이트와 뿌리 깊은 정치 불신 때문에 믿을 수 있는 지도자를 원하고 있고, 3김 시대가 종식됨으로써 유연하고 활력 있는 리더십에 대한 갈증이 크다는 것이다.


각 대선 주자들 역시 이러한 유권자들의 요구에 부합하기 위해 나름의 이미지 전략을 짜내고 있다. 이회창 총재는 깨끗하고 원칙적이라는 이미지를 주무기로 삼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를 연결하기 위해 ‘반듯한 나라 건설’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차갑고 엘리트적이라는 인상과 상대적으로 많은 나이 때문에 생기는 부정적 이미지를 극복하는 것이 숙제다. 인터뷰할 때마다 웃는 사진을 실어 달라거나 뾰족한 턱이 두드러지지 않게 측면 아래 방향에서 카메라를 잡아주도록 주문하기도 한다. 최근 젊은 의원들을 대거 당직에 발탁한 것이나, 앞서 소개한 신년 기자회견의 자리 배치 같은 경우는 고령이라는 약점을 만회하려는 노력이다.




이인제 민주당 상임고문이 내세우려는 이미지는 결단력과 추진력이다. 젊고 단단한 지도자와 건강한 한국을 연결한다는 전략이다. 대중 연설과 텔레비전 토론에서는 분명한 어투로 요점만 단답형으로 말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그러나 교만해 보인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당분간은 부드럽고 겸손한 이미지를 심는 데도 힘쓸 계획이다.


노무현 민주당 상임고문의 핵심 이미지는 뚝배기 맛이다. 친구 같은 대통령, 서민 대통령이라는 구호를 앞세우고 겸손한 권력, 강한 나라를 덧붙였다. 앞으로는 자신의 지역 통합·계층 통합 이미지와 유권자들의 경제 문제에 대한 관심을 연결해 ‘국민 통합으로 제2의 경제 도약’이라는 슬로건을 주로 내세울 예정이다. 그러나 장관을 지내고 난 이후 특유의 대중적이고 소탈한 말투보다는 어렵고 개념적인 말투가 많아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동영 고문은 당 쇄신의 주역에서 국가 쇄신의 주역으로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인상을 만회하기 위해 텔레비전 토론에서 해박한 지식을 과시한다는 전략이다. 한화갑 고문은 자신에게 강한 화합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으나 유권자들이 강하고 추진력 있는 지도자를 원하고 있는 점이 고민이다. 그래서 ‘국민을 편안하게 나라를 부강하게’라는 슬로건을 만들어 놓고 있다.


‘씨디렉션’ 심재희 대표는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가도 중요하지만, 그 요구와 자신의 특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가 이미지 전략의 핵심이다”라고 조언한다. 아무리 유권자들이 원하는 이미지라도 그것이 자신의 특성과 어울리지 않는다면 무리하게 연출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김종민 기자 jm@e-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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