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 “환장할 노릇이네”
  • 이숙이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2.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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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안팎의 ‘흠집 내기’ 노골화…‘개혁 후보 단일화론’ 부활해 죽을 맛



1등은 괴로워! 민주당 경선이 본격화하면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이인제 고문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당 안팎에서 ‘이인제 흔들기’가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인제 흔들기는 두 가지 양상을 띠고 있다. 하나는 ‘이인제 흠집 내기’이고, 다른 하나는 ‘반 이인제 연대 모색’이다.
이인제에 대한 공격의 포문은 지지율 1, 2위를 다투고 있는 노무현 고문이 열었다. 노고문은 2월14일 제주 지역 개편 대회에서 바로 옆자리에 앉은 이고문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민주당 후보는 적어도 경선 불복을 이유로 국민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지 않아야 한다.” 그는 또 “1990년 3당 통합 때 나는 여당으로 가지 않고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켰다”라면서 3당 통합에 합류한 이인제 고문을 겨냥했다.


이고문 진영은 이런 노고문의 공격이 경선을 이인제 대 노무현의 양강 구도로 몰아가려는 전략이라고 보고 일단 무대응 원칙을 세웠다. 대신 당 선관위에 조사를 의뢰했고, 결국 박주선 공명선거위원장이 “노고문의 제주 발언이 비방에 해당하는지 검토해 엄중 조처하겠다”라고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경선 주자들 ‘이인제 필패론’ 업고 맹공


하지만 선관위 경고에 노고문측은 눈 한번 꿈뻑 안하는 분위기다. 노고문측의 유종필 대변인은 “사실이냐 아니냐, 근거가 있느냐 없느냐, 사적인 문제냐 공적 영역이냐에 따라 비판과 비방이 구분되어야 한다”라면서, 이 세 기준에 따르면 노고문이 제기한 경선 불복 문제는 비방이 아닌 비판에 해당한다고 반박했다. 건전한 비판은 후보 검증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하며 그것을 뚫고 나가야 본선에서도 경쟁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노고문측은 또 이고문의 경선 불복 문제를 지적한 것이 비방이라면, 민주당이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아들의 병역 비리 문제를 공격하는 것도 비방에 해당한다고 반격했다.


노고문은 당분간 이고문을 비판하는 고삐를 늦추지 않을 태세다. ‘이고문은 경선 불복 전력 때문에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를 이길 수 없다’ ‘3당 합당에 합류했고 신한국당 경선에 출마했던 사람이어서 개혁 정통성이 없다’ 이 두 가지가 노고문의 공격 포인트다.


이런 이인제 필패론에 다른 주자들도 공감을 나타내고 있다. 정동영 고문은 2월15일 보도자료를 내고 ‘(노고문이) 지적할 것을 지적했다’고 동조했다. 나아가 그는 ‘한국 정치의 장애물은 근거 없는 대세론이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희망이 없는 대세론’을 뒤엎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화갑·김근태 고문측도 이고문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문제 의식을 공유하고 있어 경쟁 주자들의 이고문 공격은 갈수록 거세질 조짐이다.


설 연휴 기간에 ‘이인제 필패론’이 담긴 유인물이 민주당 대의원들에게 살포된 것도 이인제 흠집 내기의 또 다른 사례다. 이고문측은 2월14일 이고문을 비방하는 내용이 담긴 유인물이 전국 대의원들에게 배달되었다며 당 선관위에 조사를 요구했다. 이고문측 전용학 대변인이 공개한 유인물에는 ‘만일 이인제씨가 민주당 후보가 될 경우 1997년 신한국당 경선에서 맞붙었던 이회창·이인제 두 사람이 5년 뒤 대선에서 다시 맞붙는 꼴이다. 민주당은 결국 대통령 후보를 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인제 필패 유인물’은 한나라당 작품?



발신자가 ‘민주사랑모임’으로 되어 있는 이 우편물에는 지난해 장기표씨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이고문을 비판한 글과 이화여대 조기숙 교수가 한 일간지에 이고문을 비판한 글이 포함되어 있다. 전대변인은 이 유인물의 발신지가 당내인지 한나라당인지 두 갈래로 추적 중이라고 말했다. 일단 당내 경쟁 주자 진영을 의심하고 있지만, 이고문이 예선에서 만신창이가 되기를 바라는 한나라당의 계략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고문측은 또 최근 <이인제는 이회창을 이길 수 없다>는 책이 발간된 것이나 인터넷에 ‘이인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반사모)이 만들어진 것, 그리고 2월14일자 <경인일보>가 ‘이회창 대통령’을 기정사실화하는 여론조사 제목을 뽑은 것도 모두 이인제 흠집 내기의 일환이라고 보고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특히 <이인제는…>에 대해서는 명예훼손과 특정인에게 정치적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들어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검토중이다. 인터넷에서 정치 관련 글을 써온 장신기씨가 펴낸 이 책은 ‘이인제 대세론은 보수 세력이 이회창 당선을 위해 확산시키는 논리’ ‘노무현만이 보수 세력의 공세를 막고 지역 통합을 통해 이회창을 이길 수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부제는 ‘노무현 필승론’.


경선 후보 등록일(2월22∼23일)이 다가오면서 그동안 잠복해 있던 개혁 주자 연대론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인제 고문에게 후보를 내주지 않으려면 개혁 세력이 연대해 단일 후보를 내세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연대론자들은 후보 등록일 이전 단일화를 1차 목표로 삼고 있다. 일단 등록을 하고 나면 단일화가 더 어려워지는 데다, 권역별 경선이 시작되고 난 후 사퇴하면 그때까지 사퇴 후보가 얻었던 표는 모두 무효가 되기 때문이다. 2억5천만원이라는 거액의 등록비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현실론도 제기된다.


현재 단일화에 적극적인 사람은 이재정·임종석·장영달·천정배 의원이다. 이들은 내심 김근태·노무현·정동영·한화갑 고문이 노고문을 중심으로 연대하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다. 당장 연대론을 내놓고 제기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한 소장파 의원은 “단일화를 추진하려면 ‘개혁 후보 단일화를 위한 모임’ 같은 공식 기구라도 띄워야 할 텐데, 그렇게 되면 곧바로 불공정 경선 시비가 나올 게 뻔하다”라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한화갑·정동영 고문이 가장 먼저 열리는 제주도 경선에 상당한 자신감을 피력하는 것도 걸림돌이다. 제주도지부 후원회장을 5년이나 한 한고문이나, 이 지역 젊은이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정고문 모두 일단 첫 선거를 치러보자는 기대 심리가 강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근태 고문 역시 연대에 대해 문을 열어 놓고 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따라서 일단 모든 후보가 등록은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연대론자들은 1차 단일화에 실패하더라도 제주도 경선 전 단일화를 다시 한번 추진할 계획이다. 김근태 캠프에서 일하는 한 의원은 “지금은 모든 후보가 자신 있다고 하고, 물러설 명분도 없는 것 같다. 2월26일 제주도 선거인단이 확정되면 내부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해 보고 그 결과를 근거로 설득에 나서겠다”라고 말했다. 결국 2월26일부터 제주도 경선이 열리는 3월9일까지가 개혁 후보 단일화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이인제 흠집 내기’나 ‘개혁 후보 단일화’는 모두 이인제 고문에게 곤혹스런 일이다. 이래저래 이고문의 ‘잠 못 드는 밤’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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