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까지 내달린 ‘질풍노도’ 차 특검
  • 나권일 (nafree@sisapress.com)
  • 승인 2002.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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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검사 105일 결산/검찰 등 최고 권부와 불꽃 튀는 대결…“벌여만 놓고 밝힌 것 없다” 비판도
차정일 특별검사와 아태재단의 실력자 이수동씨가 ‘고소 사건’을 두고 힘겨루기를 하던 지난 3월14일, <조선일보> 1면에 눈길을 끄는 사진이 실렸다. 2000년 3월3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행사에 이용호씨(44)가 환한 표정으로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앉아 있는 컬러 사진이다(42쪽 상자 기사 참조).





청와대는 발칵 뒤집혔다. ‘이용호 게이트’에 측근들이 연루된 데 화가 나 며칠 전 국무회의에서도 말 한마디 없었던 대통령이었다.
사진이 실리자 한나라당은 기다렸다는 듯 ‘살인자와의 만남(윤태식)에 이은 사기꾼과의 만남’이라며 비난 공세를 퍼부었다. 박선숙 청와대 대변인은 “청와대 행사는 주무 부처의 건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특정인 초청을 청와대가 주관한 것처럼 연관짓지 말아달라”며 불을 끄기에 바빴다.


언론계에서 ‘이용호씨가 청와대에 갔었다’는 것은 구문이었다. 지난 1월28일 <중앙일보>가 ‘이용호씨가 2000년 3월3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기업연구소 5천개 돌파 기념 다과회에 참석했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앞서 보도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진이 공개된 시점이었다. ‘특검 연장’ 문제를 두고 여야가 의견을 달리하던 미묘한 시기에 청와대를 겨냥한 사진이 튀어나온 것이다. 이를 두고 한때 정가에서는 ‘특검이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용호씨가 청와대에 간 배경을 밝히려면 특검을 연장해야 한다는 여론몰이를 하려고 특검측이 사진 보유 사실을 언론에 흘렸다는 해석이었다.


이형택·이수동 등 ‘대어급’ 포함 9명 구속


특히 사진이 특정 언론에만 공개된 배경을 두고 이런 관측이 나왔다. 특검팀은 지난 2월22일 이용호씨의 방배동 집을 압수 수색해 이씨가 대통령과 악수하는 기념 사진을 입수하고도 그런 사진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한참 뒤인 3월14일 문제의 사진이 전격 공개된 것이다.


<조선일보> 사진부는 특검을 취재하는 법조팀 기자로부터 사진 공개 하루 전인 13일에야 이용호씨가 대통령과 함께 악수하는 사진을 특검팀이 가지고 있다는 귀띔을 받고 부랴부랴 2년 전 자료 목록을 뒤진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3월 자사 기자가 청와대 사진 취재를 맡았던 <조선일보>는 대통령과 악수하는 이씨 사진과 함께 헤드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있는 장면을 찾아내 1면에 올렸다는 것이다.


대통령과 이용호씨가 함께 앉아 있는 사진은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했던 대통령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혔다. 지난해 12월 ‘윤태식 게이트’ 때도 윤씨가 대통령과 함께 있는 사진이 공개되어 결국 박준영 공보수석이 옷을 벗었다.


특검이 여론몰이에 성공한다면 수사의 칼날이 바로 청와대로 향할 수 있는 국면이었다. 차정일 특검은 “사진은 <조선일보>가 자체적으로 입수한 것으로 안다”라고 특검과의 연관성을 부인하면서도 이용호씨 연구소가 왜 5000번째로 인증받았는지는 궁금하다고 밝혔다.


차특검 체제 1백5일은 이처럼 청와대와 민주당·검찰·국정원 등 최고 권력층과의 불꽃 튀는 신경전이었다. 특검은 출범 뒤 무려 9명을 구속했는데, 사법 처리된 인사 가운데 이형택·이수동 씨가 특히 대통령 부부와 관련 있는 대어급이었다.


이형택씨는 대통령이 그렇게도 피하고 싶었던 친인척 구속 1호를 기록했다. 이형택씨가 이기호 전 경제수석의 도움으로 국정원을 움직여 진도 해저 매장물 탐사를 시도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는 보물 사업을 미리 알고 있지 않았었느냐는 의혹을 샀다. 당시 서슬 퍼런 특검팀은 이희호 여사가 아끼는 이기호 경제수석까지 소환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이 때문에 미루었던 개각을 앞당겨야 했을 정도로 위기에 몰렸다.


특검의 청와대 공격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대통령을 40년 동안 모셔온 ‘동교동 집사’ 이수동씨가 구속되면서 아태재단은 신축 건물의 4층 임원실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타격을 입었다. 대통령이 퇴임할 때까지 말썽 많은 아태재단을 폐쇄해야 한다는 여론마저 일었다.


신안군 하의도 골목에서 같이 자랐으며 함께 목포에서 기거하기도 한 이수동씨는 대통령에게는 혈육이나 다름없는 고향 후배이다. 더구나 대통령 부부가 퇴임한 후에도 간여할 아태재단의 상임이사와 ‘사단법인 사랑의 친구들’ 운영위원을 맡아온 터라 수족이나 다름없었다.


아태재단·김홍업씨, 특검 수사로 ‘치명상’




지난 3월9일에는 특검팀이 이수동씨의 ‘인사청탁’ 문제와 언론대책·정권 재창출 문건까지 언론에 공개해 청와대와 대립이 격화했다. 공교롭게도 당시 인사 청탁 대상으로 거론되었던 이수용 해군참모총장 등 일부 인사가 승진에 ‘성공’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크게 곤혹스러운 상황을 맞았다.


또 특검이 당시 작성자도 불분명한 이수동씨의 언론 문건 보유 사실을 공개한 것을 두고 특검과 청와대 간에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돈다는 설이 파다했다. 이수동씨가 특검팀을 지난 3월7일 수사 기밀 누설 혐의로 고소한 것 역시 난처한 청와대를 도우려는 것이라는 해석도 뒤따랐다.


특검팀은 ‘권력 실세’로 불리던 대통령의 아들에게도 큰 상처를 입혔다. 큰아들 김홍일씨는 병 치료를 이유로 지역구를 비워둔 채 미국에 거주하며 귀국을 미룰 정도로 몰려 있다. 둘째 아들인 김홍업씨도 특검 수사로 회복하지 못할 타격을 입었다. ROTC 동기이자 고교 친구 김성환씨(52)와 술자리를 자주하고 빈번하게 돈 거래를 해온 것이 화근이었다.


김성환씨는 이형택씨로부터 ‘신승환씨가 이용호로부터 5천만원을 받았다는 말을 신승남 총장에게 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된 인물이다. 김씨는 또 김홍업씨에게 빌려준 수표 1억원이 이용호씨로부터 흘러들어온 돈이라는 의혹에도 시달렸다.


김홍업씨는 1억원의 사용처에 대해 ‘이수동씨 퇴직금 4천8백만원 등 아태재단 구조조정 자금으로 사용한 돈’이라며 게이트 연루 사실을 부인했지만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특히 김성환씨 계좌에 있던 수억원대의 벤처 기업 자금이 김홍업씨에게 유입된 사실이 드러나 아태재단 부이사장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정도로 타격을 입었다. 김홍업씨는 역삼동 개인 사무실을 폐쇄하고, 특검이 끝난 뒤에도 언제 검찰 조사를 받을지 모를 처지로 전락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김성환씨와 이용호씨의 집이 같은 방배동이라는 점, 김성환씨와 김홍업씨 개인 사무실이 모두 역삼동이라는 점이다. 특검은 이들 3명이 함께 어울렸다는 의혹을 여전히 거두지 않고 있다.


특검 수사로 검찰 호남 인맥 ‘와르르’



특검 수사는 정치 권력도 그냥 두지 않았다. 민주당은 국민회의와 민주당의 공식 후원회장을 맡았던 김봉호 전 의원이 이용호씨로부터 5천만원을 받은 것이 밝혀져 할 말이 없게 되었다. 대통령의 지시만 받는다는 국정원은 허무맹랑한 보물 탐사를 진행한 사실이 드러나 비난을 받았다.


무어니 무어니 해도 뼈아픈 곳은 검찰이다. 검찰은 현재 특검 때문에 아예 얼굴도 들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국민이 차정일 특검의 이름은 알아도 이명재 검찰 총수의 이름은 모른다는 말마저 회자되는 상황이다.


이용호 게이트는 특히 검찰 내부 호남 인맥을 몰락시켰다. 임휘윤 전 부산고검장과 임양운 전 광주고검 차장이 옷을 벗었고, 신광옥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진승현 게이트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특검 수사로 신승남 총장마저 옷을 벗어 호남 검찰 인맥은 와르르 무너졌다.


특검은 막바지 수사 과정에서 검찰과 힘겨루기를 벌였다. 특검팀이 업무 협조도 검찰 보고 단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부장검사실이나 지검장실에 요청하자 검찰 내부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특검과 검찰의 갈등은 지난 3월15일 신승남 전 검찰총장과 김대웅 광주고검장 소환 문제를 두고 절정에 달했다.


특검은 이수동씨 연루 사실을 전화 통화로 알려주었다는 이른바 ‘수사 기밀 누설’ 혐의로 신 전 총장과 김고검장을 모두 소환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검찰은 ‘신총장만은 안된다’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특검과 대검의 줄다리기는 16일 신승남 전 총장과 김고검장의 통화 내역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되면서 특검이 한 사람도 소환하지 못한 채 검찰의 승리로 끝나는 듯 했다.


그러나 특검팀은 영장이 기각된 지 하루 만인 17일 신승남 전 총장과 김대웅 광주고검장·이수동씨의 자택 전화와 휴대 전화 통화 내역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다시 발부받는 저력을 과시했다. 특검의 뒷심이 검찰을 다시 무릎 꿇린 것이다.


특검팀은 이수동씨의 저격수 도승희씨로부터 “2000년 11월9일 오후 이수동씨로부터 ‘대검에서 오전 11시께 전화가 왔는데 5천만원을 받은 것에 대해 수사하니 잘 대처하라’는 내용이었다”라는 진술을 이미 확보해 놓았다. 이제 검찰은 전직 총수와 고검장이 특검에 소환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게 되었다.


차정일 특검은 “특검이 마무리된 뒤에도 이명재 검찰총장이 나머지 수사를 잘 해결해 줄 것으로 믿는다”라며 검찰에 대한 기대를 밝혔지만 이미 갈등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황이다.


차정일 특검 1백5일은 이처럼 청와대와 검찰 등 권력 기관과의 대결이었지만 비판도 만만치 않다. 고구마밭을 파헤친 것처럼 벌여놓은 것만 많을 뿐 어느 것 하나 속시원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는 말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특검팀이 이용호 게이트와 직접 관계가 없는 문제까지 수사하면서 언론을 등에 업고 지난 3개월 동안 안하무인으로 ‘특별 권력’화했다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최재천 변호사(법무법인 한강 대표 변호사)는 “차정일 특검은 ‘주식회사 지앤지 대표이사 이용호의 주가 조작·횡령 사건 및 이와 관련된 정·관계 로비 의혹 사건 등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 검사’로 제한되어 있는데도 법에 규정된 범위를 뛰어넘는 수사를 진행하고 수사 상황을 공개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라고 지적했다.


차특검팀은 지난 3월16일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특검 연장에는 반대한다는 내부 의견을 국회 법사위원회에 전달했다. 차정일 특검은 그러나 “수사를 연장해야 한다면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라고 말해 특검 2기의 필요성에는 반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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