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풍 전야’ 잠 못 이루는 민주계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2.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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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PK 의원들, 지역 여론에 ‘촉각’…상도동은 정계개편론에 주목


"요즘 재미 보는 사람은 두 김씨이다.”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정가에 나도는 말이다. ‘두 김씨’는 민주당 김민석 의원과 김영삼 전 대통령. 서울시장에 출마한 김의원은 젊은층을 중심으로 민주당 지지표가 결집되며 지지도가 상승하는 효과를 보고 있고, YS는 여야의 구애 공세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특히 노후보가 민주계를 겨냥해 ‘민주대연합을 통한 정계 개편’을 거듭 주장하면서 상도동은 찾는 사람들로 문턱이 닳고 있다.


3월28일 오전 한나라당 서청원 의원이 상도동을 찾았다. 오후에 찾아뵙고 싶다는 이회창 총재의 뜻을 전하고 답을 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서의원은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서의원이 상도동 골목길을 막 빠져나갈 무렵, 이번에는 노후보의 부산지역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이 상도동을 방문했다. YS와 점심을 함께한 그는 “YS는 바른 길을 가는 사람을 격려한다. 그는 노무현 후보에게 기대감을 갖고 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노무현 바람’에 뜨는 YS, 이회창에게 ‘싸늘’


최근 들어 이회창 총재와 YS 간에는 원심력이 커지고 있다. 이런 기류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3월23일에 있었다. 그날 아침 총재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민주계 김무성 의원은 상도동을 방문했으나 금방 되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YS가 이총재와 김의원 등을 직설적으로 비난했기 때문이다. 그같은 반응을 접한 이총재는 화들짝 놀라 예정에 없던 김혁규 경남도지사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YS 달래기’에 나섰다. 그러나 YS는 “정치권에는 신의를 저버린 사람이 많다”라며 싸늘하게 이총재를 외면했다.


‘상도동의 입’으로 통하는 한나라당 박종웅 의원은 그동안 상도동을 소홀히 하다가 노후보가 뜨자 부랴부랴 찾아오는 것을 반가워할 리가 있느냐며 당분간 YS가 이총재를 만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YS는 지방 선거 공천을 앞두고 이총재측이 자기 측근인 김혁규 경남도지사에게 ‘충성 서약’을 요구한 데 대해 분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YS의 아들 김현철씨도 최근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한나라당 후보로 8월 보궐 선거에 출마할 것이라는 말이 나돌았던 김씨는, 최근 한 지인을 만난 자리에서 출마를 서두르지 않겠다며 꼭 한나라당 간판으로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이런 변화는 부산·경남 지역에 불어닥치고 있는 노무현 바람의 강도가 만만치 않다고 판단해 노후보가 주장한 정계개편론이 갖고 있는 파괴력과 역사적인 의미에 상도동이 주목한 데서 연유한다. 상도동 사정에 밝은 한 민주계 인사는 노후보의 구상은 이번 대선이 민주화 세력이 역사적으로 평가를 받는 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YS와 DJ 모두 강한 매력을 느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산·경남에서 노후보 지지도가 견고하게 자리 잡는다면 민주대연합 구도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것.


일부 상도동 인사들은 현정권 초기부터 ‘민주대연합’을 주장해 왔다. 노후보의 상도동 창구인 신상우씨는 국회 부의장 시절 당시 국민회의 원내총무이던 한화갑 의원과 국민의 정부에서 양김이 화합하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나 당사자들을 위해서나 좋다는 의견을 나누어 왔다. 정권이 바뀐 뒤 국민회의에 입당한 서석재 전 의원도 당시 ‘양김 화해를 통한 민주대연합’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현재 단일 세력으로서의 민주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의 처지와 이해 관계에 따라 갈 길을 달리했다. 한나라당 내 대표적인 친이회창계로 분류되는 민주계 인사는 박관용·서청원·김무성 의원이다. 강삼재·김동욱 의원과 이성헌·김영춘 의원 등 민주계 소장파는 중도파로 볼 수 있고 김덕룡·박종웅 의원은 반창파로 분류된다. 그러나 크게 보아 이들은 YS가 갖고 있는 상징성과 정치적인 영향력의 범주에 들어 있다.


이런 가운데 PK(부산·경남) 민주계 인사들은 지역 여론의 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부산일보>와 부산MBC가 부산·울산·경남 지역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3월29일)에 따르면 노후보 지지도는 3개월 전에 비해 13.4%나 상승한 반면 이총재 지지도는 10.9%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울산에 이어 민주당 대선후보 경남지역 경선에서도 노후보는 72.2%라는 압도적 지지를 받아 ‘노풍’이 태풍이 되었음을 확인시켰다. 이런 추세라면 PK 민주계들은 멀지 않아 선택의 갈림길에 설 것으로 보인다. 2004년 총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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