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그러진 국회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2.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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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정쟁 탓에 ‘개점 휴업’ 장기화 조짐


현재 국회는 ‘개회’ 중이다. 민주당 정균환 총무와 한나라당 이규택 총무가 6월5일부터 제231회 임시국회를 열기로 합의했고, 국회 사무총장 명의의 소집 공고문이 나붙었다. 그러나 이번 국회는 회의 한번 열지 못한 ‘식물’ 상태다. 국회의장도, 상임위원장도 없다. 개회 사흘째인 6월7일, 국회 본관에 있는 양당의 원내총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 지방 선거 지원에 신경을 쓰느라 차후 총무 협상 일정조차 잡혀 있지 않다. 따라서 정가에서는 방탄 국회를 위해 서둘러 소집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마저 나온다. 여야의 여러 의원이 타이거풀스의 정치권 로비 등 각종 부패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 앞둔 여야 “지면 끝장” 정면 대치


16대 국회의 후반기 원 구성이 지연되고 있는 것은 국회의장 선출에 대한 양당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상반기처럼 의장은 민주당이, 부의장은 한나라당과 자민련이 나누어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통령이 탈당했더라도 민주당은 여전히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정책 여당’이라는 것이 이 주장의 근거다. 반면 한나라당은 여야 구별이 없어졌기 때문에 의장은 제1당 몫이라고 주장한다. 운영위·예결위·국방위 등 주요 상임위 위원장을 어느 당이 맡느냐 하는 것도 같은 논란에 휩싸여 있다.


양당은 한때 자율 투표로 의장을 뽑자고 의견을 좁히기도 했다. 그러나 자민련을 탈당한 함석재 의원이 한나라당에 입당하고 박관용 의원이 한나라당의 공식 의장 후보로 선출되면서 합의 분위기는 물 건너가 버렸다. 이제 원 구성은 빨라야 지방 선거 후, 늦으면 8월 보궐 선거 전후까지 늦추어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양당이 대립하는 까닭은, 대통령 선거가 코앞에 닥쳐온 데다가, 한나라당이 원내 과반수에 육박하면서 국회가 격심한 ‘정치 바람’에 휩쓸릴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이규택 총무는 취임하면서 “권력 비리 특검제와 청문회 및 텔레비전 생중계 실시를 국회에서 관철하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민주당도 이런 ‘의장의 직권 상정’ 가능성을 들며 양보 불가를 외치는 상태이다. 지난 3월 국회법이 개정되어 국회의장의 당적 이탈을 명문화함에 따라 이번 의장은 선출 직후 당적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국회의장을 정쟁의 전리품이자 도구로 취급하는 현실은 아직 바뀌지 않고 있는 셈이다.


원 구성을 둘러싼 국회 파행은 뿌리가 깊다. 그래서 14대 후반기에 여야는 파행을 막고자 의장 선출 날짜를 아예 못박기로 합의했다. 전반기 의장 선출은 개원 후 1주일째 되는 날(6월5일)에, 후반기 의장 선출은 전반기 의장의 임기가 끝나는 날로부터 닷새 전(5월25일)에 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개정 국회법은 시행 첫해부터 지켜지지 못했다. 15대 국회는 예정일로부터 한 달 늦은 1996년 7월4일에야 원 구성을 마쳤다. 15대 후반기도 비슷했다. 16대 전반기에는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날짜는 지켜졌다. 그러나 여야는 불과 2년 만에 또다시 국회법을 팽개쳤다.


국회 파행으로 말미암아 민생 현안 처리가 늦어지면서 피해는 국민과 정부의 몫이 되고 있다.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된 법안은 ‘대부업의 등록 및 금융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 ‘주택건설촉진법 중 개정법률안’ 등 21건. 대부분이 긴급한 민생 법안들이다. 또한 ‘예보채 차환발행 동의안’도 빨리 처리되지 않으면 공적자금 운영에 적신호가 켜질 수 있다. 또한 김민석·손학규·강현욱·박광태 등 지방 선거에 출마한 현역 의원 4명의 사퇴서가 본회의에서 의결되지 않고 있는 점도 문제다. 법적으로만 따진다면, 이들이 당선되었을 경우 낙선자측이 겸직 금지 조항을 들어 당선 무효 소송을 낼 수도 있다.


현재 양당은 지방 선거가 끝나는 대로 원 구성 협상을 재개할 계획이다. 여야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의장이 없는 상태에서 첫 본회의 진행은 누가 할까. 국회법은 이 경우 출석 의원 중 최다선 의원의 사회로 의장을 뽑은 다음, 새 의장이 후속 안건을 처리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최다선 의원은 김종필 자민련 총재(9선)이며, 그 다음이 이만섭 전 의장(8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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