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축구 정치’ 골을 못 넣네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2.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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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활용해 각계 각층 전문가와 교류…대권 장정 동참할 인물 적어 ‘고민’
여론조사에서는 선두를 달리며 거칠 것이 없는 정몽준 의원. 그러나 신당 창당에서는 한계에 봉착해 호언하던 원내 교섭단체 구성이 가물가물한 상황이다. 정치 기반이 미약한 정의원은 신선한 외부 세력들로 신당을 꾸리겠다는 복안이다. 정의원의 최측근인 강신옥 전 의원은 “출발할 때 꼭 현역 의원이 뒤를 받쳐야 할 필요가 있는가. 새 정치에 참여하는 새로운 사람들이 얼마나 모이느냐가 더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의원은 그동안 각계 각층 전문가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끊임없이 투자해 왔다. 정치·경제는 물론 사회와 문화를 넘나들며 각종 학술 포럼과 토론회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또 자신에게 드리운 재벌과 보수라는 이미지를 퇴색시키고 정치적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특히 노동·시민 단체의 개혁적인 인사들을 각별히 챙겼다. 여기에는 축구를 최대한 활용했다.


정몽준 의원의 축구 정치는 월드컵을 통해 꽃을 피웠다. 정의원은 월드컵 기간에 정·관계 인사는 물론 문화 예술계의 지인들을 대거 경기장으로 초청했다. 버스와 비행기를 전세내기도 했다. 지난 6월30일 일본에서 열린 결승전에도 정의원으로부터 초청 받은 사람이 많았다. 여기에는 운동권을 대표하는 작곡가 김민기씨가 포함되어 있었다.


운동권 대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도 정의원이 극진히 예우하는 인사다. 정의원은 이번 남북통일축구 경기를 비롯해 월드컵 주요 경기마다 백소장을 초청했다. 한·중 정기전을 비롯한 몇 경기에서 정의원은 자신의 차를 보내 경기장에 모시기도 했다.


“통일축구대회에 만 명 가량 초청했다”


지난 9월7일 남북통일축구대회에서도 정의원은 많은 지인들을 배려했다. 만명 가량을 축구협회와 정의원이 초청했다는 것이 축구협회 인사의 말이다. 이 날 로열박스에는 정세현 통일부장관·김근태 의원·이홍구 전 총리·한화갑 민주당 대표·박근혜 한국미래연합 대표·정몽준 의원·리광근 북한팀 단장·박권상 KBS 사장·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김성재 문화관광부장관·장영달 의원 등이 자리했다. 귀빈석에는 현역 국회의원 10여 명을 비롯해 박 홍·김용옥·강부자·김민석·김한길·최명길·김창남 등 유명인이 초청되었다.


이 날 눈길을 끈 것은 스카이박스에 배정된 단체들이다. 주최측은 스카이박스를 판매하지 않고 경제 5단체와 한국야구위원회 등 각종 프로 스포츠 단체에 배정했다. 또 상당 부분을 노동계와 시민단체에 내주었다. 민주노총·한국노총·경실련·환경운동연합·YMCA·YWCA·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 등이 스카이박스에서 경기를 지켜보았다. 축구협회의 한 임원은 거의 모든 시민·사회 단체에 이번 경기 초청장을 보냈다고 밝혔다.


히딩크 방한도 정의원 축구 정치의 연장선상으로 이해된다. 9월6일 정의원은 히딩크를 앞세우고 청와대를 방문했고, 남북통일축구 경기에서는 히딩크를 벤치에 앉히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다. 경기 시작 전 히딩크의 모습이 전광판에 비치자 ‘와’하는 함성과 함께 관중이 열광했다. 그러자 히딩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목례와 함께 손을 흔들며 답례했다. 두 달 전 월드컵의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이었다. 잠시 후 정몽준 의원이 받은 박수와 환호성은 박근혜 의원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축구가 정치를 이기고 있다’는 말로 한 외신 기자는 한국의 미묘한 정치 상황을 요약했다. 정의원의 축구 정치는 대성공해 인기는 갈수록 치솟고 주변에는 각 분야의 지인들로 넘치고 있다. 하지만 이 인사들이 정의원의 정치적 행보에 힘을 보탤 것인지는 명확치 않다. 친분은 친분일 뿐이라며 정치와는 선을 긋고 있어 알맹이가 없다는 지적이다. 백기완 소장은 “평생 진보의 길을 걸어온 내가 보수 세력을 도울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서강대 박 홍 명예총장도 “정의원과 각별한 친분을 맺고 있지만 내가 정치적으로 돕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정의원에게 ‘1등 못할 거면서 뭐하러 나오냐’고 말했다”라고 했다. 음성 꽃동네 오웅진 신부도 정치적으로 돕는 일은 없다고 말한다. 심지어 히딩크마저 “닥터 정이 정치에 유리한 발언을 해달라고 제의한다면 사양하겠다”라고 털어놓았다.


9월6일 정몽준 의원이 주최한 남북통일축구 만찬장 분위기는 정의원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정의원의 측근은 “정의원이 함께 가고자 하는 인사들은 거의 참석할 것이다”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하지만 행사장은 단촐했다. 헤드 테이블에 자리가 마련된 민주당 장영달 의원·고려대 한승주 총장 서리·연극인 손 숙씨·환경운동연합 최 열 사무총장 등은 행사 시작 때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정치인은 물론 신당의 주축 세력인 전문가 그룹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행사 시작을 30분이나 미루었지만, 행사장 입구에 배치된 이름표 가운데 3분의 1은 주인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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