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비자금, 베일 벗는가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2.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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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양건설 80억원 제공설 도마에 올라…민주당 “가회동 빌라 구입 자금도 김병량 회장이 제공”
민주당 전갑길 의원이 10월10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이른바 ‘이회창 비자금’ 문제를 치고 나왔다. 요컨대, 부천 범박동 신앙촌 재개발 사업을 수주한 기양건설산업(전신 기양건설) 김병량 회장이 1997년 대선부터 지금까지 비자금 5백억원을 조성해 금융권·검찰 간부·구 여권 인사들에게 뿌렸으며, 그 가운데 80억원 가량이 이후보측에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로 인해 기양건설이 부도가 났고, 이를 금융권이 떠안아 결국 공적자금 손실로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민주당 공적자금 국정조사 특위 송영길 간사는 “한나라당이 양당 총무가 합의까지 끝낸 공적자금 국정조사를 거부하기 시작한 것은 민주당이 김병량 회장을 국감 증인으로 채택하자고 주장하면서부터다. 한나라당은 이회창 비자금이 탄로날 것을 두려워해 국정조사를 아예 보이콧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전갑길 의원은 이후보에게 유입된 자금이라며 어음번호 4개를 제시하고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기양건설 김병량 회장 부인 장순예씨가 이회창 후보 부인 한인옥씨에게 5천만원을 전달하는 현장을 목격했다는 이 회사 전 직원의 진술서도 공개했다. 만약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후보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전의원의 이런 폭로가 100% 조작된 거짓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대선 길목에서 터진 새로운 ‘진실 게임’의 쟁점을 짚어 본다.


“김병량 회장 비자금 46억원 조성했다”


민주당은 △1997년 기양건설 어음 발행으로 46억원 △2000년 BHIC라는 유령 회사를 통해 부도 어음을 싸게 회수하는 과정에서 2백27억원 등 여덟 차례에 모두 5백억원 가량의 비자금이 조성되었다고 주장한다. 46억원 건을 예로들면 이렇다. 기양건설은 1997년 7월께 토지매입대금 명목으로 시공사인 극동건설의 지급보증을 받아 1백47억원짜리 약속어음(주택은행 서여의도지점)을 발행했고, 이를 동서팩토링에서 1백38억원에 할인했다.

그런데 그 중 정작 토지매입대금으로는 72억원만 사용되었고 20여억원은 김병량 회장 개인 용도로 쓰였으며, 나머지 46억원 가량이 비자금으로 조성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병량 회장은 10월10일 해명서를 내고 “동서팩토링에서 할인한 어음 1백38억원은 대부분 토지매입비로 지출했으며 나머지도 용역비 지급 같은 정상적인 회사 경비로 사용했다. 회사 창립 이래 어떤 정당, 어떤 국회의원과도 접촉한 사실이 없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1백38억원 외에 다른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한인옥과 장순예의 관계


민주당은 김병량 회장과 이회창 후보가 연결되는 통로로 김회장의 부인이자 기양건설 이사로 등재된 장순예씨를 지목했다. 시온종단측이 자본금이 3억원에 불과한 기양건설을 건축비만 1조원에 이르는 신앙촌 재개발사업 시행사로 선정한 배경이 바로 한인옥-장순예 관계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의원은 “1997년 11월 한인옥씨가 참석한 신라호텔 모임에 김병량 회장 부부와 시온학원 이청환 이사장이 참석했고, 이 자리에서 한인옥과 장순예가 친밀한 사이임을 확인한 시온종단측이 며칠 후(12월6일) 기양건설을 시행사로 최종 선정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후 기양건설과 시온종단의 비자금이 장씨와 이후보 측근들을 통해 이후보측에 유입되었다면서 그 근거로 시온종단 박윤명 회장(박태선 교주의 3남) 명의의 국민은행 계좌를 제시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남경필 대변인은 한인옥 여사와 장순예씨가 인척관계는커녕 알지도 못하는 사이라고 부인했다. 김병량 회장도 자기 처와 한인옥 여사가 인척관계라는 설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조사 결과 한인옥 장순예 두 사람은 먼 사돈 관계이다(위 표 참조). 이에 대해 이후보측은 “족보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한여사와 장씨는 전혀 모르는 사이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두 사람이 먼 사돈관계 이상으로 가까웠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해 1997년 신라호텔 모임에 참석했다는 기양건설 전 경리부 직원 이 아무개씨는 민주당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장씨가 한씨를 ‘언니’라고 불렀으며, 그 날 5천만원을 한씨에게 제공한 사실이 있다”라고 확인했다.


한나라당 “제2 김대업 사건”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공적자금 국정조사를 무산시킨 이유가 기양건설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기양건설에 공적자금이 투입된 적이 없다면서 기양건설이 국정조사 대상 자체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한나라당 말대로 기양건설에 공적자금이 직접 투입된 적은 없다. 그런데도 기양건설이 공적자금을 4백40억원이나 축냈다고 민주당이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1997년 발행한 어음 1백38억원을 못 막아 부도가 난 기양건설은 2000년에 현대건설을 새 시공사로 선정하고 부도 어음 회수에 나섰다. 기양건설이 회수해야 할 어음은 모두 5백89억원(기양건설이 발행한 1백38억원+공동 시행사였다가 기양에 사업권을 넘긴 세경진흥이 발행한 4백50여억원)이었는데, 기양건설은 BHIC라는 유령 회사를 설립하고 로비스트를 동원해 신한종금·동서팩토링·동화파이낸스 등에 모두 1백49억원만 지급한 뒤 부도 어음을 다 회수했다. 결국 공적자금이 투입된 신한종금 등에 4백40억원이 넘는 손해를 입힌 셈이다.


이 때문에 검찰은 지난 6월 수사를 벌여 기양건설로부터 로비를 받은 금융기관 관련자들과 김병량 회장 등을 사법 처리했다. 게다가 공적자금을 관리하는 예금보험공사는 현재 신한종금 파산관재인 자격으로 김병량 회장 등을 고소한 상태다. 따라서 기양건설이 비자금을 조성했다면 이는 공적자금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민주당은 10월15일과 16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2차, 3차 폭탄을 터뜨린다는 전략이다. 이회창 후보의 가회동 빌라 202호 구입 자금이 김병량 회장 쪽에서 나왔음을 입증하는 수표를 공개하는 한편, 이후보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한 의혹이 있다고 보는 시온종단과 김병량 회장의 부도덕성을 집중 제기한다는 것이 내부 방침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제2의 김대업 사건’으로 규정하고 역공한다는 계획이다. 정치권에 죽기 아니면 살기식 전운이 감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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