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 플라이냐 개인 플레이냐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2.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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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탈당 역풍 거세…‘나홀로 베팅’ 벌써 세번째



"욕먹을 각오는 하고 있지만, 너무 세게 때리지는 마.”
민주당을 전격 탈당하고 정몽준 신당에 합류한 날 저녁, 김민석 전 의원이 전화를 걸어와서 한 말이다. 이 날 정당 출입기자 중에는 이런 전화를 받은 사람이 여럿이다. 다음날 국회 민주당 의원들 방에는 김씨가 보낸 편지가 배달되었다. 겉봉에 ‘친전(親傳)’이라고 적힌 이 편지에는 자신이 이적한 사유가 구구절절 담겨 있었다. 같은 날 저녁 서울시장 선거 때 김씨를 열심히 도왔던 한 당직자에게는 이런 내용의 전화 메일이 도착했다. “○○야, 먼저 얘기하지 못해 정말 미안해, 하지만 사랑해. 이해해 줄꺼지? 석.”


탈당 역풍을 줄이기 위해 무던히도 애쓴 셈이다. 하지만 주위의 반응은 냉랭했다. 오히려 ‘속 보인다’ ‘영악하다’는 독설이 쏟아졌다. 김영술·오영식·우상호·이인영·임종석·허인회 등 민주당 내 386 의원과 원외 지구당위원장들은 “그의 입에서 다시는 1980년대 그 뜨거웠던 시대와 함께했던 동지들의 이름이 거론되지를 않기 바란다”라고 절연을 선언했다.


“돈에 팔려 간 것 아니냐” 비난도


네티즌들의 분노는 더욱 심했다. 김 전의원이 정몽준 신당으로 갔다는 소식이 알려진 직후 그의 홈페이지와 인터넷 신문에는 김씨를 비난하는 글이 폭주했다. 김씨의 숭실고 후배라고 자신을 소개한 정천영씨는 ‘민주화의 풀뿌리가 되겠다던 선배님을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지금은 차라리 제 선배가 아니라 모르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실망감을 나타냈고, ‘울산 시민’이라는 네티즌은 ‘서울시장 선거 때 김민석을 찍은 내 손을 증오한다. 재벌에 빌붙어 부귀영화 누리고 4선, 5선에 장관까지 떵떵거리며 잘 살아라’고 힐난했다.

‘선거 때 진 빚이 많다던데 돈에 팔려 간 게 아니냐’는 감정 섞인 비난에서부터 ‘민주 정통 세력을 자임한 사람이 국민의 참여로 선출한 대통령 후보 지지율이 좀 낮다고 재벌가의 아들을 지지하기 위해 탈당한 게 말이 되느냐’는 이성적인 비판에 이르기까지 그의 홈페이지에는 10월17일과 18일 이틀에만 3천여 건의 글이 올라왔다. 물론 이 가운데는 김씨를 지지하는 의견도 있다. WITH라는 네티즌은 ‘고뇌와 번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라며 그를 옹호했고, ‘힘내세요’라는 네티즌은 ‘모든 책임은 노후보의 낮은 지지율에 있다’고 노무현 후보에게 화살을 돌렸다. 그러나 옹호론은 소수에 그쳤다.


이렇듯 김 전의원에 대한 비난이 봇물을 이루는 것은 그만큼 그의 변신이 예상 밖이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그동안 자신이 노풍을 만든 주역이라고 자부해 왔다. 그의 홈페이지에는 ‘특대위 간사로서 민주당 국민경선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내용이 자랑거리로 올라 있다. 그는 또 6·13 서울시장 선거 때 노무현 후보의 손을 잡고 “노무현-김민석과 함께 가는 것이야말로 미래로 가는 것”이라며 목청을 높였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노후보에게 등을 돌리자 배신감이 더 커진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능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며 놀랄 일이 아니라는 평이 나온다. 김씨의 ‘나홀로 베팅’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민석 전 의원은 1995년 DJ가 마포 민주당을 탈당해 국민회의를 창당할 때도 선봉에 섰다. 당시 동교동을 제외한 대다수 재야와 운동권 출신들이 DJ의 대선 출마를 반대하고 있을 때 김씨는 “정권 교체를 위해서는 이 길밖에 없다”라면서 가장 먼저 국민회의 합류를 선언했다. 정가에서는 이를 계기로 김씨가 동교동계에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었다고 여긴다. 1997년 대선 때 DJ 당선에 혁혁한 공을 세운 그는 2000년 4·13 총선 때 정균환 최고위원과 함께 공천 작업에 깊숙하게 관여하는 등 승승장구했고, 내친 김에 최고위원 선거에까지 도전했다가 쓴잔을 마셨다.


김씨가 두 번째로 ‘튄’ 것은 2001년 5월 정풍 파동이 한창일 때다. 최고위원 경선에서 떨어진 후 정풍 파동 내내 조용하던 그는 의원 워크숍에서 느닷없이 ‘질서 있는 쇄신’을 외치며 권노갑씨를 비롯한 동교동계를 감싸고 나섰다. 당시 김방림·최재승 의원은 “김민석 의원이 ‘게티스버그 연설’보다 더 훌륭한 연설을 했다”라며 칭찬했고, 반대로 그에게 허를 찔린 김근태·정동영 등 쇄신파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일로 개혁 세력 내부에도 이견이 있는 것으로 비치면서 정풍 운동은 한풀 꺾였다.


‘후보 단일화’ 논의, 새 국면 진입


김 전의원은 이번에 세 번째 도박에 나서면서 1995년과 비슷한 논리를 폈다. ‘50년 만의 정권 교체’라는 대의 명분을 위해 DJ의 정계 복귀를 용인할 수밖에 없었듯이, ‘수구 냉전 세력의 집권 저지’라는 대의 명분을 위해 정몽준 후보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그는 탈당 선언문에서 “60% 이상의 국민이 낡은 냉전 회귀 세력의 집권을 반대하고 있다. 현시점에서 국민의 여망을 실현할 현실적 대안은 정몽준 후보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그의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중론이다. 7년 전에는 DJ가 정통성을 가진 유일 후보라는 데 이견이 없었지만 정몽준 후보는 민주 개혁 세력과 뿌리 자체가 다르고, 이회창 집권 저지가 민주주의 원칙을 저버릴 만큼 절박한 명분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김씨와 뜻을 달리하는 386 세대들은 “내일, 더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는 큰 일을 이루기 위해 오늘, 기꺼이 욕을 먹겠다”라는 김씨의 주장이 변절을 정당화하려는 수사라고 평가 절하한다.


아무튼 김씨가 정몽준 지지를 천명하면서 정치권 안팎에서는 ‘후보 단일화’를 둘러싼 논의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그동안 후보 단일화가 필요한가 아닌가를 놓고 벌어지던 논쟁이 이제는 정몽준 후보를 대안으로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공방을 벌이는 쪽으로 흐름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만약 여러 논의 끝에 정후보를 이른바 ‘민주평화개혁’ 세력의 대안으로 인정하는 여론이 우세해질 경우 노무현·정몽준 두 후보가 형식적인 단일화에 합의하지 않더라도 실제 투표장에서는 내용적인 단일화, 즉 표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김씨는 바로 이 점을 노리고 있다. 그는 최근 전화 통화에서 “이제는 민심으로 단일화하는 방법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선택이 민심으로 단일화하기 위한 희생 플라이며 이미 뜻대로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1995년 그의 도박은 DJ가 집권함으로써 성공했다. 2002년 도박도 한 순간의 비난을 넘어서서 성공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지, 50일 후면 판가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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