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전원 사법 처리”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2.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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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군소 후보들 ‘파격·엽기 공약’ 상상 초월…“적수는 이회창, 당선 확률 100%” 장담



군소 후보들이 파격적인 공약을 내세워 기존 정치권에 등을 돌린 민심을 파고들고 있다. 이들이 국민이 가려워하는 데를 시원하게 긁어주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군소 후보들의 출마를 한 편의 코미디로 보는 사람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마이너 리거’들이 벌이는 무모해 보이는 레이스. 그들의 리그를 들여다보았다.


군소 후보 중 단연 눈길을 끄는 사람은 장세동씨(66)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분신이자 전 국가안전기획부장이었던 장후보는 새로운 정치를 염원하는 국민의 마음과 뜻을 믿고 출마를 결심했다고 역설했다. ‘국민의 뜻이 장후보냐’는 물음에는 즉답을 피하고, 자신은 대통령을 위해 길러진 재목이며 국익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다는 비장함을 보였다.


장세동, 어른 잘 모시려고 출마


장후보 측근들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부정 부패의 주범으로 몰리는 것에 대해 장후보가 불만이 많았고, 대통령이 되어 어른을 더 잘 모시겠다는 의리가 출마로 이어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작 전두환씨는 “그 사람이 올해 66세인데 나이가 드니 내 말도 듣지 않아요.” “하나님이 하라신다는데 부처님인들 어떻게 하겠어요?”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대해 장후보는 “80대 부모가 60대 자식에게 ‘차 조심하라’는 염려로 본다”라고 말했다.


‘결혼과 대통령만 못해 봤다’는 전 국회의원 김옥선씨(여·69)도 14대에 이어 대권 후보 대열에 합류했다. 21세기는 섬세하고 도덕적인 여성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출마의 변이다. 7·9·12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후보는 박정희 정권의 독재에 맞서다가 의원 직을 상실한 투사이기도 했다. 박정희씨를 비판한 김대중씨와 김영삼씨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이제는 자기 차례라고 김후보는 주장한다. 김후보는 “이회창씨가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고 대통령을 할 사람이라면 아들을 모두 군대에 안 보냈겠냐. 나는 50년 전에 대통령이 될 것을 결심해 사회·교육 사업에 매진해 왔다”라며 준비된 대통령임을 강조했다.


남장여자(男裝女子)로 유명한 김후보는 1953년 열아홉 살에 여학교 교장을 하면서 남성 작업복을 입기 시작한 이래 남장을 트레이드 마크로 삼고 있다. 요사이 유독 자신의 성 정체성을 묻는 젊은 친구들이 많다며, 김후보는“교회 장로로서 평생 한 번도 성경에 위배되는 일을 한 적이 없다”라고 넘겼다.





명승희는 신이 점지한 후보?


또 다른 여성 후보로 민주광명당의 명승희씨(여·62)가 있다. 명씨는 어머니의 손길로 나라 구석구석을 정리하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그녀는 다른 후보에 비해 믿는 구석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신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무속인 심진송씨는 해(日)와 달(月)을 성씨로 갖는 여성이 대통령에 오르게 된다는 예언을 해오고 있다. 심씨는 “명후보는 더러운 곳을 깨끗이 닦고 훔치는 ‘행주치마’ 같은 정치를 펼 것이다”라고 했다. 명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져 본인의 명성에 흠집만 내는 것이 아니냐는 물음에 심씨는 “신께서 그렇다는데 내가 어떻게 하겠느냐. 대선을 1개월 앞둔 시점부터 변화가 일어 명후보가 당선될 것이라고 신께서 말씀하셨다”라고 했다.


명후보는 심씨와는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고 한다. 명후보는 “내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접한 올해 초 심씨와 첫 대면이 이루어졌다. 심씨는 기도에서 본 얼굴이라며 반가워했다”라고 말했다. 이후 두 사람 사이에 내왕은 전혀 없다고 한다. 신이 점지했다는 명후보는 자신의 당선 가능성을 60% 정도라고 했다.


삼미그룹 부회장에서 웨이터로 변신해 화제를 모았던 서상록씨(65)는 노년권익보호당 대선 후보로 나서는 깜짝쇼를 벌였다. 그는 △지역 감정을 조장하는 정치인 때려 죽이기 △사법고시 폐지해 변호사 수임료 10만원대로 낮추기 △북한에 살고 싶어하는 노인들의 이민 허용 등 파격적 공약을 쏟아냈다. 아울러 부정 선거로 쫓겨난 사람에게 그 중요한 서울시장 공천을 준 한나라당은 걸레당이라며 독설도 서슴지 않았다.


‘서비스 대통령’을 내건 서후보는 자신 만만하다. 전국 웨이터 표만 모아도 1백25만표이고, 자신의 강의를 접한 후 지지자가 된 사람만 60만명이 넘는다는 계산이다. 그는 텔레비전 토론에 나가 20분만 이야기를 하면 당선은 무조건 떼어놓은 당상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서후보는 선거에는 베테랑이다. 1967년 국회의원 선거에 낙선했고, 1988년부터 네 번 연거푸 미국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든 경험이 있다. 서후보의 부인은 ‘나이도 있으니 제발 집은 들어먹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허경영 “불효자 사형, 암행어사 부활”


서상록 후보의 공약보다 더 이색적인 공약을 쏟아내는 후보가 있다. 지난 대선에 출마해 ‘제2의 박정희’라는 슬로건을 내걸어 화제를 모은 민주공화당 허경영 후보(52)다. 허후보는 이번 선거를 정책 위주로 치르겠다며 5년간 가다듬은 10대 혁명 공약을 무기로 다시 국민 앞에 섰다. 공약은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먼저 법을 어긴 자들이 법을 만들고 있다며 당선 즉시 국회의원 전원을 사법 처리하겠다고 한다.

허후보측은 사회 지도층과 정치인의 정치 활동을 금지하기 위해 3천명의 살생부도 만들었다. 징병제도를 모병제도로 바꾸고 복무 기간을 6개월로 단축한다. 국방 공백은 북한에 미군과 유엔군을 주둔시킴으로써 해결한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불효자 사형 △암행어사 제도 부활 △전국을 4개 도로 축소해 지역 감정 해소 △담배 생산 및 판매 금지 △대학 명칭 철폐 △백록담에 물을 채워 양수발전소 건설 등이 있다.


허후보는 자신의 공약에 소요되는 자금은 화폐 변경을 통해 마련한다는 복안까지 세워두고 있다. 24시간 안에 신고하지 않은 음성 자금을 국고에 귀속시켜 8백조원에 이르는 재원을 확보하고, 재벌에 대해 정확하게 상속세를 매겨 서민의 부담을 덜어주고 나아가 1인당 몇 천만원씩 나누어 주겠다고 한다. 허후보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허후보는 박근혜 의원과 연대를 모색했으나 서로 길이 달라 어렵게 되었다고 안타까워했다.





15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허남씨(82)는 복지민주통일당 간판으로 “재벌이 더 큰 재벌이 되어 서민을 잘살게 하는 ‘부익부, 빈익부’ 사회로 만들겠다”라며 대선에 나섰다. 김후보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일하기 좋아하기·정직하기 등 ‘3기 운동’과 생각을 바르게 하자·관찰을 바르게 하자·실천을 바르게 하자 등 ‘3정 운동’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자민련 재정위원장을 지낸 재력가인 김후보는 후보기탁금에 대해 “그까짓 거, 뭐”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투다.


국내 최고(最古) 정당으로 창당 10년을 맞은 통일한국당도 안광양 총재(58)를 후보로 선출하고 전국 1백62개 지구당에 선거대책본부를 꾸렸다. 교사 출신인 안후보는 “백범의 민족주의 정신을 기반으로 링컨의 민주주의 3원칙에 역점을 두어 국정을 수행하겠다”라는 출마의 변을 내놓았다.


사회당은 인하대 행정학과 교수인 김영규씨(58)를 대선 후보로 선출했다. 김후보는 1992년 대선에서 백기완 후보 비서실장을 지낸 인물로 ‘가장 억압받는 자와 가장 먼저 연대한다’는 원칙을 내세우고 소유의 사회적 통제 강화를 통한 복지 실현, 신자유주의 반대 등 정책 방향 분명히했다.
이념 정당을 지향하는 사회당을 제외하고 군소 후보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자기를 대선 가도로 내몰았으며 국가와 민족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뿐이라는 대의 명분이 같다. 장세동 후보는 동서 갈등을 종식시키고 역사와의 화합을 위한다는 거창한 슬로건을 걸고 출마했다.


유력 후보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만을 유일한 적수로 여긴다는 것도 군소 후보들의 공통점이다. 명승희 후보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의 아내라면 보약이라도 먹여서 아들 중 하나는 군대에 보냈어야 했다며 한인옥 여사를 꼬집었다. 허경영 후보도 “이회창씨는 프랑스·지단이고, 나는 한국·히딩크다. 우승 후보는 이회창씨지만 결국은 내가 이기게 되어 있다”라며 기염을 토하고 있다.


김허남 “4천만표 확보 가능”


또 군소 후보들은 텔레비전 토론에 나가기만 하면 지지율이 급반등해 반드시 당선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허경영 후보는 1천6백만표, 서상록 후보는 1천3백만표를 예상하고 있다. 당선 가능성은 거의 100%에 육박한다. 이들의 표 계산법은 간단하다. 김허남 후보의 경우 함경북도 중앙도민회 회장과 7도 도민회장으로서 천만표 확보가 가능하고, 신라 김씨를 포함한 박석 김씨 신라종친회 인원 2천만명을 모두 끌어들일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각종 사회 단체장을 맡으며 인연을 맺은 사람이 천만명에 육박해 김후보는 최대 4천만표를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중 이탈표 3천만표를 제외한 천만표를 획득해도 당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후보는 “당선 확률 100%가 아니라 120%다”라고 큰소리를 쳤다. 후보는 당선을 확신하며 자신감에 차 있지만 캠프 분위기는 무겁고 썰렁한 한 후보의 핵심 참모는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건지 나도 잘 모른다. 식구들에게도 여기에서 선거 운동 한다는 얘기는 안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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