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빠진 정몽준, 완주할까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2.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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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율 하락, 단일 후보 될 가능성 적어…정·재계 “기업 위해 이회창 밀 수도”
정몽준 후보가 사면초가에 빠졌다. 지지율은 하루가 다르게 내리막길을 달리고, 민주당을 탈당한 후단협 인사들도 정후보와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노무현 후보나 민주당 탈당파는 후보 단일화를 위한 경선을 요구하면서 경선 방식을 거부한 정후보를 압박하고 있다. 정후보 처지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탈출구를 찾아야 하는 셈이다.





한참 잘 나가던 정후보가 이렇게 궁지에 몰린 원인은 딱 한 가지, 지지율 때문이다. 11월3일 공개된 세 가지 여론조사 결과는 정후보의 위기를 확실히 보여준다. MBC와 코리아 리서치가 주관한 여론조사에서 정후보는 20.7%를 얻어 10월20일 조사에서보다 5% 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일보>와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22.6%로 지난 10월21일 조사 때보다 4.4% 포인트 떨어졌고, <한겨레> 조사에서도 22.3%를 얻어 지난 10월17일 발표된 조사결과에 비해 4.5% 포인트 하락했다. 대체로 보름 사이에 4~5% 포인트 가량이 빠진 것이다.


문제는 이런 하락세가 추석 이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9월20일을 앞뒤로 정후보 지지도는 30%대 중반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지금은 20%대 초반을 맴돌고 있다(오른쪽 도표 참조).


한달 보름여 만에 정후보 지지도가 10% 포인트 넘게 빠진 데 대해 선거 전문가들은 세 가지 이유를 꼽는다. 하나는 노무현 후보의 전철을 밟았다는 점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폴앤폴 조용휴 대표는 “민주당 후단협과 연대를 하느니 마느니, 4자 연대를 하느니 마느니 하는 과정에서 정후보의 개혁 이미지가 완전히 망가졌다. 마치 노후보가 김영삼 전 대통령을 찾아갔다가 노풍이 꺾인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라고 분석했다.


둘째는, 세 확산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민주당 이강래 의원은 “정후보 지지도가 한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밖에 4자 연대라는 잠재적 우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합류할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거품이 빠지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이미지를 좀 버리더라도 세 확보에 성공했다면 지지율이 이렇게 급속도로 빠지지는 않았을 텐데, 이미지도 버리고 세 확산에도 실패한 것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얘기다.


세 번째는, 끝내 검증의 칼날을 비켜 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이 제기한 ‘현대전자 주가 조작 관련설’이 결정타 구실을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정후보가 검증을 자초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북한 핵 문제가 터진 후 정후보가 “금강산 관광사업에 정부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라고 주장한 것이 금강산 관광사업에 목을 매고 있는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의장에게는 공개 위협으로 받아들여졌고, 그에 대한 반격으로 정의장의 오른팔 격인 이익치씨가 움직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 중진 의원은 “그동안 정후보는 실수를 극도로 조심해 왔다. 하지만 현대그룹과 단절을 강조하기 위해 한 발언이 치명적인 실수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정후보는 상황 나빠져도 무조건 go 한다”


정후보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대목은 좀체 지지율이 반등할 기미가 안 보인다는 점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더 떨어질 일만 남았다는 비관론이 우세하다. 1997년 대선 때 30%대에 이르던 이인제 후보 지지율이 11월4일 국민신당 창당 직후부터 급락하기 시작했던 것처럼, 정몽준 신당의 실체가 드러나는 11월5일 이후 정후보 지지도가 더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후보 캠프에서조차 ‘독자 승리’ 방안을 모색하기보다 ‘후보 단일화’에 더 몰두하는 모양새가 이런 비관론을 뒷받침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후보가 과연 끝까지 갈 수 있겠느냐’는 때이른 사퇴론까지 나온다. 민주당 정대철 선대위원장은 최근 “정후보가 결국 등록을 못할 것 같다”라는 희망 섞인 예언을 내놓았고, 한때 정후보를 지원했던 한 정치권 중진도 “11월15∼25일에 정후보가 사퇴하지 않겠느냐”라는 얘기를 사석에서 한 것으로 알려진다. 막 창당을 한 정후보에게는 상당히 가혹하지만, 정후보의 향후 거취가 대선 정국의 핵심 화두로 등장할 조짐이다.


앞으로 정후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크게 네 갈래로 나뉜다. 우선 지지율에 상관없이 완주하는 경우다. TN 소프레스 이헌태 이사는 정후보 지지율이 아무리 빠져도 15% 아래로는 안 내려가리라고 전망했다. 월드컵 붐이 일어나기 전에도 정후보 지지율이 12~15%는 유지했다는 이유에서다. 오픈 소사이어티 김 행 대표도 15% 안팎을 바닥권으로 지목했다. 반창 비노 무당파(反昌 非盧 無黨派)가 그 정도는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후보가 노후보처럼 15% 선에서 바닥을 찍고 상승세를 타면서 막판 역전을 노릴 가능성도 있다. 정후보의 한 지인은 “정후보는 자기에게 불리한 여론조사는 잘 안 믿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이홍구 후원회장말고는 주위 사람 얘기도 경청하는 편이 아니어서 상황이 상당히 나빠져도 무조건 ‘고(go)’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현대가 기업의 화두 ‘정몽준 주저앉히기’


하지만 이 경우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전철을 밟을 우려가 크다는 것이 중론이다. 대선에 패하고 정후보와 직·간접으로 관련된 기업들이 정치 보복에 휩싸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를 의식한 듯 이미 현대 계열사 내부에서는 ‘정몽준 주저앉히기’가 주요 화두로 등장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기업 관계자는 “정후보 지지율이 높았을 때는 내심 ‘이러다 진짜 대통령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들 기업에 불똥이 떨어질까 봐 걱정하는 분위기다”라고 내부 정서를 전했다. 정후보가 완주를 꿈꿀 경우 현대가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두 번째는 후보 단일화에 응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다시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생긴다. 하나는 정후보로 단일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노후보로 단일화하는 것이다. 전자는 정후보에게 최상의 카드다. 현재로서는 단일 후보 정몽준과 이회창 후보가 대결할 경우 승산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정후보가 “노후보로 단일화됐을 때보다 나로 단일화됐을 때 지지율이 더 높다. 후보간 합의를 통해 나로 단일화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단일 후보 정몽준의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는 데다 노후보가 국민경선 방식이 아니면 정후보에게 후보 자리를 내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정후보로 단일화하기는 난망하다.





노무현 후보 손 들어주지 않을 듯


반대로 노후보로 단일화하는 것 역시 성사가 불투명하다. 정치인으로서의 명분은 확보할 수 있지만 정후보 처지에서 보면 노후보에게 자신의 미래를 걸어야 하는 것은 도박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특히 노후보 편을 들었다가 패할 경우 완주했을 때보다 더 가혹한 시련을 당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정후보는 100% 승리가 담보되지 않는 한 노후보로 단일화하는 것에 응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가장 설득력을 얻는 것이 정후보가 후보 등록 직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손을 들어주리라는 관측이다. 특히 정치권과 재계에서는 이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본다. 정치적 명분은 잃지만 기업의 미래를 염려해야 하는 오너 처지에서 보면 당선 가능성이 높은 쪽으로 기우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는 것이다. 정후보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후보와 연대할 가능성을 묻자 불쾌감을 나타냈다(36~40쪽 인터뷰 참조).

그러나 내부에서는 한나라당과 연대할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하는 분위기다. 한 예로 10월27일 정후보측은 한 여론조사 기관에 내부 조사를 의뢰했다. 여기에는 ‘정후보가 단일화를 할 경우 노후보와 하는 게 좋은지, 아니면 이후보와 하는 게 좋은지’ ‘정후보가 정치를 계속할 경우 노후보, 후단협, 민주당 개혁파, 한나라당 중에서 어떤 세력과 함께 하는 게 바람직한지’ 등을 묻는 항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다. 한나라당과의 연대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노무현 후보가 11월3일 후보 단일화를 전격 수용하고 나선 데에는 정후보가 이후보 쪽으로 가는 것을 미리 차단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정동영 국민참여운동본부 본부장은 “정후보가 이후보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최악이다. 하지만 노후보가 단일화를 수용했기 때문에 정후보가 한나라당으로 갈 명분이 없어졌고, 만약 가더라도 오히려 역풍만 불러올 것이다”라고 못박았다.


한편, 정후보가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조용히 물러나는 경우도 마지막 카드로 상정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정후보가 정치적으로나 기업인으로서나 가장 상처를 적게 받는 카드라고 본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지지도 믿고 설친 ‘싱거운 사람’ 소리 듣는 것은 불가피하다.
통상 11월에는 대선 정국의 요동이 극에 달한다. 정후보의 거취는 요동 정국에서 화룡점정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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