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초 전쟁’이 5년을 가른다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2.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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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TV 광고전 개막…유명인 앞세우고 눈물 흘리며 ‘표심 울리기’ 불꽃 대결



11월27일 저녁 <9시 뉴스> 직전에 방송된 한나라당의 정치 광고.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궁예 역을 했던 탤런트 김영철씨가 나와 “대한민국이라는 자동차, 누가 몰아야 안전할까요. 어떤 선택이 안전한 선택인지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라고 말한다.


한나라당 광고 바로 전에 방송된 민주당 정치 광고에서는 존 레논이 부른 노래 <이매진>이 배경에 흐른다. 노무현 후보가 노사 협력을 이루어낸 장면,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 등이 이어지다가 ‘노무현의 눈물 한 방울이 대한민국을 바꿉니다’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노후보의 뺨에 한 줄기 눈물이 흐른다.


유권자들의 눈을 붙들어매기 위해 대선 후보들이 벌이고 있는 60초 광고 전쟁의 현장이다. 특히 2강(强)인 이회창 후보와 노무현 후보는 부동층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이미지를 부각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보고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1라운드는 노무현 판정승” 평가 많아


후보 등록 첫날인 11월27일 벌어진 1라운드 싸움에서는 민주당이 이겼다는 것이 정가의 대체적인 평가다. 한나라당이 이 날 내보낸 ‘위험 대 안전’ 편은 난폭한 운전기사가 몰던 버스가 사고를 낸 반면 안전 운행을 하는 기사가 모는 버스를 탄 사람들은 무사히 목적지로 간다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노후보는 불안한 반면 이후보는 안정감이 있다는 메시지를 부각하려는 광고였다. 이에 비해 노후보는 감성에 호소했다. 제목도 ‘눈물’이었다.


첫 장면부터 볼에 ‘2’자를 새긴 어린아이를 등장시켜 눈길을 사로잡은 뒤 노후보와 관련한 화면을 마치 한편의 영화처럼 구성했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광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갖가지 자료를 뒤지다가 지난 10월 노후보가 한 모임에서 눈물을 흘리는 화면을 발견하고 무릎을 쳤다고 한다. ‘두 번 생각하면 노무현입니다’라는 광고 카피도 특색이 있다는 평이 많았다.


다음날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혼쭐이 났다. 내부에서 ‘메시지 전달이 불분명했다’ ‘민주당 광고에 비해 호소력이 없었다’는 비판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박원홍 홍보본부장은 “유권자는 똑똑하다. 감각적인 것보다는 정권 담당 능력이나 안정감을 강조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라고 설명했지만 곤혹스러워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기본 기조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전략이다. 심준형 특보는 “갑작스럽게 이미지에 변화를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공감과 신뢰감을 주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후보의 국제 감각과 국정 수행 능력을 보여주는 ‘국가 경영’ 등 예비물이 많은 만큼 시기에 맞는 것을 골라 내보낸다는 계획이다. 민주당은 노후보가 기타를 치며 노래 <상록수>를 부르는 ‘기타 치는 대통령’에 이어 박재동 화백이 만든 애니메이션 ‘겨울’ 등 감성에 호소하는 광고를 잇달아 내보낼 계획이다. 김경재 홍보위원장은 인간 노무현의 매력을 알리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한다. 노무현답다는 것은 친구 같은 모습, 촌스럽고 편안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텔레비전 광고와 관련해 한나라당에서는 방송 진행자로 널리 알려진 언론인 출신 박원홍 의원과 대우그룹 김우중 전 회장의 이미지 메이킹을 담당했던 심준형 홍보특보, 김삼현 홍보국장이 삼각 축을 이루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1997년 대선 때 홍보위원장을 맡았던 김경재 의원과 기획본부 윤훈렬 PI기획국장, 홍보본부 김용일 특수홍보국장이 이에 맞서고 있다.


한나라당 텔레비전 광고는 애초에 여섯 회사가 제안서를 제출했는데 나라기획 등 세 회사가 모두 열두 편을 만들었다. 반면 민주당은 주 프로덕션 등 다섯 회사가 여섯 편을 만들었다. 한나라당이 물량으로 압도했다면 민주당은 내용에 주력한 셈이다. 한나라당 광고에는 탤런트 김영철, 가수 이현우 씨와 현역 의원 등 유명인들이 등장하지만, 민주당 광고에서는 노후보말고 유명인은 볼 수 없다. 제일기획이나 LG애드 등 대기업 계열사들은 정치적인 오해를 살까 봐 두 정당에 아예 제안서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광고업계에서는 민주당은 6억원 정도, 한나라당은 그보다 훨씬 많은 돈을 광고 제작에 썼을 것으로 본다.


황금 시간대 잡기 총력…군소 후보는 엄두도 못내


광고 전쟁은 제작 과정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시간대에 광고를 내보내느냐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좋은 시간대를 잡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MBC는 고민 끝에 11월25일 정당 관계자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광고가 가능한 시간대를 제시하며 신청을 받았다. 희망 시간이 겹치면 협의해서 정하든가 이마저 안되면 추첨을 통해 방송 시간을 정했다. KBS의 경우 인기가 높았던 <9시 뉴스> 직전은 한번은 민주당, 다음에는 한나라당이 먼저 광고를 하는 식으로 방송 순서를 정했다. SBS는 시청률이 40%를 넘는 드라마 <야인시대>를 잡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특히 투표일 직전인 12월16일과 17일에 광고를 내보내려는 싸움이 붙어 추첨을 통해 방송 시간을 정했는데,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이 행운을 잡았다.


텔레비전 광고는 선거법에 따라 후보 별로 30회까지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30회를 꽉 채울 계획이다. 방송 광고는 ‘SA시급, A시급, B시급, C시급’ 네 분야로 나뉘는데,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정치 광고는 이 가운데 광고 단가가 제일 높은 ‘SA시급’에 집중되어 있다. ‘SA시급’ 때 1분 동안 광고를 내보내면 2천2백50만6천원이 든다. 30회를 다 한다면 방송광고비로만 6억원 이상이 드는 셈이다. 반면 돈이 없는 민주노동당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정치의 주체로 서야 한다는, ‘일하는 사람들의 대통령’이라는 광고 한 편밖에 만들지 못했고, 방송도 15회 정도 내보낼 생각이다. 다른 군소 후보들은 꿈만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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