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체감 온도 높았다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2.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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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동행 취재/“현장 열기 뜨거워 신바람 절로”
4번 타자 권영길, 홈런 타자 권영길!” 12월7일 오전 11시 수원 영동시장, 대학생 자원봉사자 장은정씨(21)는 네 손가락을 펴고 외쳤다. 장씨는 1차 텔레비전 토론회(12월3일) 이전에는 ‘권영길’만을 외쳤다. 그러나 지금은 기호 4번을 더 강조한다.





민주노동당(민노당)이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텔레비전 토론 때문이다. 권후보가 텔레비전 토론에서 선전하면서 인지도가 높아졌다. 반면 일부 유권자들이 권영길 후보를 기호 3번으로 착각한다. 그래서 민노당은 기호 4번을 강조한 ‘차표 한장’ 로고송을 급히 만들었다. 권영길보다 기호 4번을 알리는 것이 급선무다.


텔레비전 토론으로 민노당은 한껏 고무되었다. 고무된 분위기는 현장에서도 확인된다. 12월7일 권후보는 수원 영동시장을 시작으로 주말 수도권 공략에 나섰다. “속 시원하게 말 잘했다. 텔레비전 토론을 보고, 어디서 저런 후보가 나왔나 했다.” 상인 박종화씨(45)는 권영길 후보와 손잡고 이렇게 말했다. 여기 저기서 “텔레비전에서 봤다. 말씀 잘하더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한 상인은 드링크제를 건네며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두 번째 대권 도전에 나선 권후보로서는, 1997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그때는 악수를 해도 멀뚱멀뚱 쳐다보기 일쑤였다. 이번에는 운동원들이나 권후보도 신바람이 날 만큼 달라졌다.


11시30분, 권후보가 영동시장 입구에 마련된 유세 차량에 올랐다. 연단에 오른 권영길 후보는 여중생 압사 사건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이회창·노무현 후보는 두 여중생 사건에 침묵으로 일관했었다며 권후보는 목소리를 높였다.


“첫 출마 때와는 격세지감”


두 여중생 사건으로 일고 있는 반미 바람도 권후보에게는 순풍이다. 그는 여중생 사건 초기부터 유가족과 함께 투쟁했고, 범국민대책위원회 고문이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토론에서 제일 똑똑하고, 바른말도 잘 한다고 하더라, 게다가 인물도 제일 낫다고 하더라”며 연설을 끝맺었다. 권후보 자신도 ‘투쟁합시다’ ‘좋겠습니다’는 식의 투쟁가적 말투 대신 유머를 섞어 유권자들에게 다가서려고 노력했다. 수원 유세를 마친 권후보는 부평으로 이동했다.


권후보의 유세단은 단촐하다. 비서진 7명과 경찰에서 파견된 경호팀, 이수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허영구 전 민주노총 위원장 권한대행과 대학생 자원봉사자들로 꾸려진 유세단 20명은 몸집이 작은 대신 기동력이 뛰어나다. 오후 1시, 권후보는 부평 산곡성당에 도착했다. 산곡성당은 공무원 노조 집행부가 농성하는 곳이다. 민노당의 지지 기반인 노동조합 방문은 권후보가 빼놓지 않는 중요한 일정이다. 이 날 권후보는 농성장 텐트에서 공무원 노조 오명남 사무처장·노명우 수석부위원장과 함께 스티로폼을 깔고 점심을 먹었다. 권후보가 점심을 먹는 동안, 경호팀 4명은 산곡성당 밖에서 대기했다. 수배자가 많은 산곡성당으로 ‘알아서’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점심을 먹은 뒤 권후보의 강행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권후보는 산재 전문 병원인 인천중앙병원을 거쳐, 부천역으로 이동했다. 부천역 유세가 끝나자, 장애인 채경선씨(44)가 권후보에게 꽃다발을 전했다. 백발이 성성한 길시균씨(89)는 권후보에게 후원금이 담긴 두툼한 봉투를 건넸다. 준비된 이벤트가 아니었다.


부천부터 권후보는 지하철 유세에 들어갔다. 영등포역·신촌역에서 유세를 하고, 광화문까지 지하철로 이동했다. 젊음의 거리인 신촌역 일대에서는 대학생들이 권후보에게 다가가 악수와 사인 공세를 벌였다. 20, 30대 젊은 유권자층은 민노당이 공을 들이는 세대다. 최근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 권후보를 공개 지지했다.


“두 자릿수 득표율 문제 없다” 덕담도


권후보의 강행군에 비서진은 긴장했다. 권후보는 젊은이들보다 더 진보적이지만, 61세이다. 비서진은 지방 유세 때 항상 사우나가 있는 숙소를 잡는다. 매일 아침 하는 사우나가 권후보의 둘도 없는 건강 비결이다. 지금은 하루 세 번 보약도 빼지 않고 먹는다. 목이 잠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저녁 7시30분 권후보는 광화문 촛불 시위에 참석했다. 밤 10시 권후보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농성하는 광화문 시민공원을 찾았다. ‘거리의 신부’ 문정현 신부와 포옹했다. 이 날 오후 3시 같은 장소를 찾았던 이회창 후보와 대조적으로 권후보는 환영을 받았다. 이후보는 신부들로부터 면전에서 떠나라는 면박을 당했다. 하지만 권후보는 ‘집권이라도 한 것 같다.


두 자리 득표율은 문제없을 것 같다’는 덕담을 들었다.


이번 대선에서 민노당은 5% 득표가 목표다. 그런데 텔레비전 토론 이후 목표를 상향 조정했다고 김배곤 부대변인은 말했다. 10%대 득표율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지율 상승이 득표율로 이어질지는 두고볼 일이다. 마지막에 유권자 마음에 깃들기 마련인 사표 방지 심리는 권후보가 넘어야 할 가장 큰 고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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