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총독 관사 터가 권력 1번지로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2.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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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대통령 관저가 된 시작은 좋지 않았다. 청와대는 대원군이 경복궁을 지을 때 경무대(景武臺)로 불렸던 곳이다. 이곳에서 무인들이 무예를 연마하고 과거도 치렀다. 이 터는 1939년 미나미 지로 일본 총독이 관사를 지으면서 권력자의 거처로 거듭났다. 광복 직후 아베 총독이 건물 내부를 불태웠으나 미 군정 때 하지 중장이 수리해 관사로 사용했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이승만 대통령이 그 시설에 그대로 입주해 이곳은 한국의 권력 1번지가 되었다. 이곳이 청와대로 불린 것은 4·19 이후다. 이에 대해 풍수지리학자들은 “총독 관사로 출발한 청와대 터는 민족 정기를 끊으려는 일본의 저의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곳이다”라고 입을 모은다.



보안상으로 보더라도 청와대는 좋은 위치가 아니라고 한다. 인왕산·북악산·남산은 물론 도심의 고층 건물에 올라가 보면 청와대가 빤히 들어온다. 그래서 몇 년 전까지 고층 건물의 북쪽 창을 폐쇄한 일도 있었다. 시청 앞의 서울프라자호텔이 대표적인 경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과도한 경비 업무가 따를 수밖에 없다. 인왕산 일대와 북악산 일대는 요새화했고 삼엄한 경비로 인해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었다. 경복궁 북쪽 전각들도 일반에 공개되지 못하고 있다. 시민들의 휴식 공간인 귀중한 녹지 공간이 제한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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