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 군단, 한나라 접수하나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3.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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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 지역 의원들, 대선 표심 업고 독자 세력화·당권 장악 별러



1월2일 오후에 열린 한나라당 대구시지부 신년교례회는 무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강재섭 지부장과 조해녕 대구시장 등 참석자 2백여 명은 서로 덕담을 나누었지만,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강지부장은 “우리 당은 속죄하는 마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라고 강조했고, 조시장은 “오늘까지만 울고 이제 눈물을 닦자”라며 참석자들을 위로했다.


이 날 행사는 보수 세력의 뿌리라고 자부하는 대구·경북(TK) 지역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대선 이후 앓고 있는 후유증의 깊이를 보여준 자리였다. 이 지역은 이번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었다. 이후보는 대구에서 77.75%(100만 표), 경북에서 73.47%(1백5만 표)를 득표했다. 지역적으로 볼 때 가장 높은 득표율이었다. 이 때문에 대선 패배 이후 한나라당 안에서는 이제 TK당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말도 나왔다.


대선 이후 열린 연찬회나 의원총회에서 이 지역 의원들이 목소리를 높인 것은 이런 맥락에서 보면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박종근 의원은 “최고 득표를 올린 것에 상응하는 당의 배려가 있어야 한다”라고 했고, 김만제 의원은 “당권을 장악해야 정권 교체를 기약할 수 있다”라며 ‘TK 세력화론’을 주장했다.


그러나 지금 이 지역 의원들은 이거다 싶은 탈출구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독자적으로 당권을 장악하기에는 힘이 부치고, 당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TK 세력의 전면 등장을 반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압도적으로 지지해 준 유권자의 표심을 외면할 수도 없다.


당내 반발 만만치 않아 마찰 예상


일단 TK 의원 대부분은 당이 단일지도체제로 간다면 차세대 주자로 꼽혀 온 강재섭 의원을 내세워 당권을 잡는 것을 최상의 시나리오로 보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잘 보여준 것은 대선 패배 직후인 2002년 12월20일 대구시지부에서 열린 대구 지역 의원 모임이었다. 이 자리에서 백승홍 의원은 당권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대구·경북 지역에서 전당대회에 주자를 한 명만 내세워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해봉 의원은 TK가 하나로 뭉쳐 당의 주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른바 ‘강재섭 주자론’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23일 최고위원 직을 사퇴한 강의원은 전당대회 출마 여부를 아직 밝히지 않고 있다. 다른 최고위원들이 대선 패배 책임을 지고 불출마하기로 한 상태여서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50대인 강의원은 내심 이번 기회에 승부수를 던졌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이 보이나, 다른 최고위원들이 모두 출마하지 않을 경우 혼자 나서기에는 부담이 큰 것이다. 만약 출사표를 던진다면 충청권의 강창희 의원, 부산·경남에 기반을 두고 있는 강삼재 의원과 연대를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당 지도체제가 현재의 집단지도체제를 유지한다면 사정이 복잡해진다. 지난해 5월 전당대회에서 2표 차이로 최고위원에 낙선한 김일윤 의원, 미래연대 대표를 맡고 있는 소장파 권오을 의원, 안택수·박승국 의원이 출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강재섭 의원이 출마한다면 이 가운데 안·박 의원은 출마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의원은 “주위에서 한번 해보라는 얘기가 있지만 강의원이 출마한다면 도울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부에서도 워낙 사람을 키우지 않았다는 자성이 높다 보니 홍준표·김문수·이재오·김부겸 의원 등 이 지역 출신이면서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이른바 ‘장외 TK’들의 움직임도 눈길을 끌고 있다. 다음 대선에서 TK가 어떤 경우든 후보를 낼 것으로 보는 이들은 자기들의 상품 가치를 높이기 위해 이미 최고위원 출마를 검토하는 등 다양한 행보를 시작했다.


지난 12월3일 활동을 시작한 ‘당과 정치 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개혁특위)를 보는 TK 의원들의 눈길도 곱지 않다. 박종근 의원은 “개혁특위의 안을 의원총회나 당무회의도 거치지 않고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은 독재적인 발상이다”라고 정면으로 반발했다. 앞으로 이들 의원은 수적 우세를 바탕으로 개혁특위의 안을 변질시키려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TK 세력이 한나라당의 중심이 되려는 데 대한 내부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김영춘 의원은 “영남 세력이 당권을 장악한다면 한나라당은 시대를 거슬러 퇴행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홍신 의원은 한나라당이 시대 변화를 외면하면 내년 총선에서 참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 노무현 당선자가 인수위 간사에 김병준·김대환·이종오·권기홍·이정우 교수 등 대구·경북 출신 인사를 5명이나 포진시켜 이 지역 한나라당 의원들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 박승국 의원은 ‘노당선자가 (TK를) 흔들려고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TK 세력은 앞으로 한나라당 당권 장악, 독자 세력화를 큰 줄기로 하여 어떻게든 권력을 분점하려는 시도를 노골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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