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뜨자 여성들 날다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3.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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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소신 갖춘 ‘인수위 3총사’ 맹활약…대선 공신 3인은 입각할 듯



"성전환 수술이라도 해야겠구먼.” 한 남성 의원이 던진 농담에 폭소가 터져 나왔다. 지난 2월3~4일 민주당 개혁특별위원회(위원장 김원기)는 여성 정치 참여 확대 방안을 공식 안건으로 채택했다. 여기서 비례 대표의 50%를 여성으로 채운다는 따위 강도 높은 여성 할당제가 논의되자 일부 남성 의원들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말이 좋아 여성의 정치 참여이지, 이런 주제는 예년 같으면 공식 안건은커녕 곁다리 안건으로 채택되기도 어려웠다. 이런 주제에 남성 의원들이 이틀 연속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는 것 자체가 사건이라면 사건이었다. 이들이 변한 이유는 하나. 노무현 정부에서는 여성들이 어떤 형태로든 ‘한 가락’할 것 같다는 예감 때문이었다.
노무현 당선자는 그간 기회 있을 때마다 여성 인력을 대폭 중용하겠다고 약속해 왔다. 장·차관의 30% 이상, 공무원 5급 이상 관리직의 20% 이상을 여성으로 채우겠다는 공약이 대표적이다. 추미애 의원을 차기 대통령감으로 거론한 것부터가 당선자의 파격적인 여성관을 보여주었다.



명망보다 능력 위주로 발탁



그렇다면 노당선자는 여성 인력을 어떤 방식으로 중용하려는 것일까. 지금까지 확인된 것으로, 당선자측에 여성 인력 풀(pool)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 그러나 노당선자는 지난 1월 말 신설되는 청와대 국민참여 수석에 박주현 변호사(40)를 내정함으로써, 새 정부의 여성 인사가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지 큰 얼개를 제시했다(42쪽 상자 기사 참조). 그것은, 간판(명망)보다는 내실(능력)을 중시하는 ‘노무현식 실사구시 인사’ 원칙에서 여성이라고 결코 예외가 되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같은 인사 원칙은 이미 인수위 위원 인선에서부터 적용되었다. 전체 인수위원 26명 가운데 여성은 3명. 정무분과 이은영 위원(51·한국외대 법학과 교수), 경제 2분과 박기영 위원(45·순천대 생물학과 교수), 사회문화여성분과 정영애 위원(48·충청북도 여성정책관)이 그들이다. 장·차관의 30% 할당을 약속한 정부 치고 인수위 여성 비율(11.5%)이 너무 낮은 데 대해 여성계가 볼멘 소리를 했지만 적어도 인선 자체를 놓고 뒷말이 나오지는 않았다. 여성 위원 3명 모두가 자기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는 베테랑이었기 때문이다.



이 중 노당선자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던 여성은 한 사람도 없다. 후보자 시절, 똑소리 나는 과학 기술 정책 브리핑으로 당선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박기영 위원 정도가 인연이라면 인연을 맺었을 뿐이다. 이보다는 오히려 사회운동에 늘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해 왔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점이다. 이은영 위원은 지난 10년 동안 한국여성민우회·참여연대 등에서 시민단체의 입법 청원 활동을 꾸준히 지원해 왔다. 박기영 위원은 1980년대 중반 YMCA 산하에 청년 과학자 운동 모임인 ‘두리암’(청년과학기술자협의회 전신)을 만들었던 과학기술운동 1세대이며, 정영애 위원은 충북도 여성정책관으로 특채되기 전까지 여성단체에서 고용 평등 문제를 주로 담당했던 ‘국내 여성학박사 1호’이다.






‘할 말은 한다’는 것 또한 이들의 공통점. 당선자 앞에서도 이들은 거리끼는 법이 없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을 모두 가까이서 대면한 경험이 있는 이은영 인수위원은 “엄숙하고, 권위적이고, 사전 각본에 짜인 것 이외의 발언은 허용치 않던 역대 대통령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덕분에 마음 편하게 할 말을 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앞으로 있을 여성 각료 임명에서도 노무현식 인사 스타일은 관철될 것 같다. 장관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이미경·추미애·허운나 의원부터가 대표적인 실사구시형 여성 정치인이다. 대선에서 보여준 활약으로 ‘여성 공신 3인방’이라는 별칭을 얻었다지만, 이의원이나 추의원은 평소 의정 활동에서도 누구나 인정하는 학구파이자 실력파이다. 2000년 뒤늦게 정치에 입문한 허운나 의원 또한 마찬가지. 대선 전까지만 해도 허의원은 사실 무명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직접 기안한 사이버 선거 대책안을 토대로 대선 승리를 이끌어 낸 뒤 정보 통신 전문가로서 그녀의 역량을 의심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 단 실력을 배양할 통로 자체가 아직 제한되어 있는 현실에서 실무 능력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인사 방식은 여성들에게 또 하나의 역차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여성계 일각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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