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훈, 설화에 설설 길 것인가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3.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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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준 2억5천만원 수수” 발언 입증 못해…소 취하 타협 안돼 기소 임박
설연휴 직전인 1월30일 오전 10시. 민주당 설 훈 의원은 국회 의원회관 532호 한나라당 윤여준 의원 사무실을 찾아가 윤의원을 만났다. 이 날 두 사람은 20여 분 대화를 나누었지만, 만남은 어색하게 끝났다. 설의원은 왜 윤의원을 찾아갔던 것일까.


두 사람은 지난해부터 ‘전쟁’을 벌여왔다. 정국이 김대중 대통령의 세 아들 비리 의혹인 이른바 ‘3홍 게이트’로 떠들썩하던 지난해 4월 19일, 설의원이 민주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윤의원을 정면으로 공격했기 때문이다. “미래도시환경 대표 최규선씨가 용산구 이태원동 윤여준 의원 자택에서 이회창 총재의 방미 활동에 보태 쓰라며 윤의원에게 2억5천만원을 전달했다.”






사실이라면 정국의 물꼬를 일거에 바꿀 만한 메가톤급 폭로였다. 윤의원은 강력히 반발하며 “설의원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지 못할 경우 의원직 사퇴를 포함해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라며 그를 검찰에 고발했고, 의원회관에서 1주일간 항의 농성까지 했다. 최씨 또한 “정치인들이 나를 필요로 하지 내가 왜 정치인을 필요로 하느냐”라며 돈 준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당시 증거가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2,3일 뒤 증인과 테이프를 공개하겠다”라고 자신만만해 했던 설의원은 2백일이 지나고 3백일이 다 된 지금까지도 아무런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내년 4월에 있을 국회의원 총선을 생각해야 하는 설의원으로서는 ‘근거도 없이 폭로를 한 정치인’으로 비치고 있어 이 생각만 하면 가슴이 갑갑해지는 상황에 몰린 것이다.



기대했던 최규선은 엉뚱한 소리만 하고…



대선 전에 최씨를 면회했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설의원은 대선 직후인 지난해 12월24일 검찰에 나가 조사받을 때까지만 해도 “최규선씨가 신뢰할 만한 사람에게 녹음 테이프를 맡겼을 것이다”라며 물증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1월22일 다시 한번 서울구치소로 최씨를 찾아갔던 설의원은 최씨에게 더 기대할 것이 없다는 사실만을 절감하고 돌아와야 했다. 최씨가 먼저 자기를 구치소에서 나가게 해주면 윤의원이 소를 취하하도록 해보겠다는 등 설의원의 기대와는 영 딴판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대선 이후 검찰 수사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데 최씨의 태도에 변화가 없자 다급해진 설의원은 윤의원과 타협을 모색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최씨를 면회하고 돌아온 직후인 1월23일 오전 설의원 보좌관이 윤의원 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좌관은 설의원이 윤의원을 만나고 싶어하니 일정을 잡아 달라고 했으나, 윤의원측이 만날 만한 이유가 없었으므로 두 사람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윤여준 돈 수수 100% 확신”



이후 설의원은 윤의원 사무실로 직접 전화를 걸어 윤의원의 핸드폰 전화번호를 물은 데 이어 1월28일에는 포포인츠호텔(옛 올림피아호텔)에서 열린 평화포럼(이사장 강원룡)의 세미나장으로 윤의원을 찾아갔다. 만나고 싶다는 설의원의 청을 거절하지 못한 윤의원은 1월30일 오전에 만나자고 약속했다.



1월30일 만남에서 설의원이 “사과하는 기자회견을 할 테니 소를 취하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 윤의원측 설명이다. 이에 대해 윤의원은 “최씨가 20만 달러를 내게 주었다는 폭로가 사실이 아니어서 사과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여하튼 미안하게 되었다는 식으로 사과하겠다는 것인지 분명히 해달라”고 요구했다. 설의원은 이 날 이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윤의원은 그렇다면 자신의 입장을 문서로 정리해 보내겠다고 말했고, 2월5일 이를 실행에 옮겼다.



윤의원이 설의원에게 보낸 문서의 핵심 내용은 두 가지였다. 설의원이 폭로한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힐 것과, 그런 잘못된 정보를 설의원에게 제공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 배후를 밝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부분에서 윤의원의 생각과 맞아떨어지는 사과를 하면 상응하는 조처를 취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절대로 소를 취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최후 통첩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설의원은 도저히 그렇게는 할 수 없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설의원의 보좌관은 윤의원이 꼬장꼬장하게 나와 갑갑하기는 하지만 설의원은 아직도 거의 100% 윤의원이 돈을 받았다고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수도 있고, 또 이 사건과 관련해 이회창 전 총재의 이름이 자꾸 거론될 수밖에 없어 재판을 하는 것은 윤의원에게도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설의원은 이런 내용이 보도되는 것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이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얘기하고 싶지 않다”라며 입장을 밝히기를 거부했다.



윤의원은 두 가지를 강조했다. 설의원의 폭로로 인해 실추한 자신의 명예를 반드시 회복해야 한다는 것과, 이런 식의 폭로·공작 정치는 이제 정치권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윤의원은 “반드시 사법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충 타협하고 넘어가는 것보다는 확실하게 매듭을 짓는다면 앞으로 정치권에서 무분별하게 폭로하면 안된다는 좋은 선례를 남기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윤의원측은 설의원이 ‘정치적인 해결’을 거부하고 사법적인 판단을 고집한다면 민사 소송도 불사할 생각이다.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 특수 2부(부장검사 차동민)는 머지 않아 설의원을 불구속 기소하기로 했다. 설 훈-윤여준 전쟁의 결과는 이제 정치권을 넘어 재판정으로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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