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현, 대북 특사 될 뻔했다
  •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4.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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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미대사 깜짝 기용’ 내막 추적/북한과 삼성 관계 등 고려
‘대북 특사에서 주미대사로.’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주미대사로 내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 정부 사정에 밝은 소식통이 밝힌 내용이다. 그는 홍회장이 참여정부가 비장해온 특급 소방수라고 말했다. 홍회장의 애초 용도는 대북 특사였다. 그러나 미국 대선 직후 정부가 그동안 구상해온 대북 특사-남북 정상회담 해법을 접고 한·미관계 강화를 통한 ‘적극적·주도적 북핵 역할론’으로 전환하면서 홍회장의 발길은 평양이 아닌 워싱턴으로 향하게 되었다. 참여정부 출범 직후부터 정부 일각에서 전개되어온 ‘홍석현 역할론’을 추적했다.

대북 특사 카드 왜 나왔나:정부 일각에서 ‘홍석현 대북특사론’을 깊이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대북 송금 특검 직후부터였다. 송금 특검으로 남북 관계 단절을 우려한 정부 고위층 일각에서 홍회장을 주목한 것이다. 중앙일보 회장으로서 그가 일련의 대북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는 사실, 여기에 삼성이라는 든든한 배경, 그리고 그에 대한 북한과 미국의 호감 등이 고려되었다.

참여정부가 제일 취약하게 여겼던 보수 언론 및 야당과의 관계에서도 홍회장 카드는 안성맞춤이었다. ‘홍회장을 주미대사에 임명함으로써 한나라당이나 조선·동아가 앞으로 현정부의 대미 정책을 비판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최근 분석과 같은 맥락이다.

홍회장의 독자적인 대북 프로젝트:평양감사도 당사자가 싫으면 못하는 법. 정부가 홍회장을 대북 특사로 고려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이 바로 홍회장 자신의 대북 프로젝트이다. 1998년 중앙일보사의 대북 사업 일환으로 평양을 방문했던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대북 프로젝트는 중앙일보와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김정일 위원장 단독 인터뷰가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국내의 북한 소식통은 “홍회장이 김위원장과의 인터뷰를 계기로 그와 항시적 채널을 갖게 되기를 원했다”라고 말했다.

김위원장과의 인터뷰를 성사시키기 위해 그는 다양한 채널을 가동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에는 베이징에서 남북 학자간 학술회의를 주최해온 독일 뮌스터 대학 송두율 교수 채널도 가동되었다는 후문이 있고, 세계신문협회(WAN) 회장 직함을 활용해 해외 창구도 가동했다고 한다. 남북한 동시 방문을 성사시켰던 스웨덴 페르손 총리 역시 홍회장의 대북 창구 중 하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이라는 변수:정부 내의 한 인사에 따르면, 홍회장과 참여정부, 그리고 북한과의 관계에서 삼성이라는 존재를 빼놓을 수 없다. 참여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 시절부터 삼성측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구축했다.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가 인수위에 전달되는 일이 여러 차례 목격되었다. 홍회장과 참여정부 사이에 삼성측 고위 인사가 막후에서 움직였다는 지적도 있다. 삼성의 VIP와 참여정부가 직접 관계할 경우 정경유착이라는 소리가 나올 것을 우려해 홍회장을 내세웠다는 것이다.

홍회장과 북한 그리고 삼성 간에도 이같은 등식이 성립한다고 한다. 김정일 위원장 인터뷰를 축으로 하는 홍회장과 중앙일보의 다양한 대북 프로젝트에 바로 삼성의 대북 진출을 위한 전초전 성격이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대우·현대 등 북한과 접촉했던 많은 기업이 다 무너졌다. 이제 삼성이 움직여야 북한도 활로가 열리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삼성 특유의 치밀한 준비와 실행 능력이라면 대북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고, 삼성에게도 동북아의 마지막 처녀지 북한 시장이 엄청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물론 삼성측은 지나친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대북특사론의 부침 과정:대북 송금 특검 직후 검토되었던 홍회장 특사론은 지난해 4, 5월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 관계에서 비공개 막후 접촉은 없다. 정부 대 정부 차원에서 당당하게 하겠다”라고 말한 직후 수면 아래로 잠복했다. 이처럼 비공개 창구에 대한 노대통령의 정치적 부담감으로 인해 대북특사론은 주춤했지만, 홍회장에 대해서는 오히려 대통령이 호감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지난 2월 홍회장의 대통령 인터뷰는 이같은 과정을 통해 성사되었다. 또한 정부 일각에서는 미국 대선 전후의 국면 타개책으로 당시 정동영 특사론과 함께 홍회장 카드가 여전히 유력한 카드로서 살아 있었다.

리종혁과 비공개 접촉했다:홍회장의 대북 프로젝트와 그에 대한 북측의 호감을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지난 6월, 6·15 4주년 기념식 참석차 서울을 방문한 리종혁 북한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비공개리에 홍회장을 만난 것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당시 접촉은 리종혁측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고, 그 배경에는 북측이 대북 창구를 삼성으로 몰아가려는 의도가 깊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북측은 홍회장을 삼성과 연결되는 가교로 파악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주미대사로 전환한 까닭은:한승주 주미대사가 사임을 요청한 지난 8, 9월께부터 그 후임 인물로 홍회장에 대한 검토가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지난 10월 중순께 대북 특사 문제가 국내 정치의 쟁점으로 불거지면서 홍회장을 주미대사로 발탁하자는 논의가 본격화했다. 이를 계기로 정부는 대북 특사를 통한 남북 정상회담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한다는 계획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 대안이 부시 2기 정부와의 교섭을 바탕으로 한 ‘한국 정부의 적극적·주도적 북핵 역할론’이었다(<시사저널> 12월23일 자. 791호 참조). 정부의 급격한 정책 전환으로 인해 평양으로 맞추어 준비되었던 홍석현 카드의 향방이 워싱턴으로 수정되었다.

주미대사 홍석현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북핵문제와 관련해, ‘노무현 리스크’를 줄이고 해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기회이지만, 이 기회를 아무 소득 없이 소진할 경우 주도권이 고스란히 미국 강경파로 넘어간다는 차원에서 ‘노무현 리스크’라는 말이 워싱턴에 퍼져있는 것이다.

홍석현 주미대사 카드가 바로 이런 미묘한 공간에 던져진 것이다. 그의 성공 여부는 어떤 면에서 이제 미국 정부의 ‘홍석현 활용론’과 함수 관계를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2002년 대선에서 미국은 정몽준이라는 ‘히든 카드’에 많은 기대를 걸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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