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저격수’는 아무도 못말려
  • 차형석 기자 (cha@sisapress.com)
  • 승인 2005.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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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병호 의원, ‘무노조 삼성전자’에 직격탄 날려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이 다시 한번 ‘삼성 공격수’로 나섰다. 지난 1월11일 단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삼성전자가 노조에 가입한 직원(홍두하씨)에게 금품을 제공하면서 노조를 탈퇴하고 사직하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기자회견에 따르면, 1988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홍씨는 지난해 8월 삼성 계열사 노동자 6명과 민주노총 산하 전국금속노동조합에 가입했다. 무노조 정책 때문에 회사 단위로 노조를 설립하는 것은 당분간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일단 금속노조에 개별 가입한 것이다.

금속노조에 가입한 직후인 9월9일 홍씨는 광주공장으로 출장 명령을 받았다. 조짐이 이상했다. 성 아무개 인사 담당 차장이 나타난 것이다. 홍씨에 따르면, 성차장은 노조 가입 사실을 추궁하며 그에게 노조를 탈퇴하라고 강요했다. 버티던 홍씨가 탈퇴서를 작성하고 나서는 삼성의 경영 이념에 배치되는 노조에 가입했던 사람은 더 이상 삼성에 다닐 수 없다며 퇴직을 종용했다. 결국 홍씨는 일정액을 받는 조건으로 퇴직원을 제출했다.

홍씨가 구두 약속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자 성차장은 지급확인서를 써주었다. 기자회견장에서 공개된 지급확인서에는 성씨의 서명과 함께 ‘퇴직원 접수후 TOTAL 2.5억에 대한 지급을 약속함. 단 세금 포함 금액 인사그룹 성○○ 2004.9.9’라고 적혀 있었다. 단병호 의원은 지급액(세금 포함 2억5천만원)이 정상적 퇴직금과 명퇴금을 합한 액수보다 훨씬 많다며, 지급액이 노조 탈퇴 대가가 명확하다고 주장했다(홍씨는 이미 1998년에 퇴직금을 중간 정산한 바 있다). 홍씨는 “회사측은 노조에 가입한 사람들에 대해 이미 다 파악하고 있었다. 다섯 시간 동안 버텼으나, 퇴직금도 없이 쫓겨날 수 있다는 말에 굴복하고 말았다. 동료에게 미안했고, 나 자신에 대한 모멸감으로 괴로웠다”라고 말했다.

논란이 일자 삼성전자는 “홍두하씨의 퇴직은 정상적 퇴직 절차를 거쳤고, 노조를 탈퇴하라는 강압은 없었다. 홍씨뿐만 아니라 다른 퇴직자들에게도 그 정도 수준의 위로금은 지급되었다”라고 밝혔다. 단의원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서는 ‘세세한 부분은 검찰에서 조사할 경우, 그때 가서 해명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건 이전에도 단병호 의원은 17대 국회 들어 삼성그룹과 관련해 ‘1승1패’를 주고받았다. 장애인 의무고용 조항과 관련해서는 단병호 의원이 승리했다. 단의원은 국정감사 때 ‘30대 기업 장애인 의무고용 현황’을 밝히면서 삼성그룹의 장애인 고용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국감에서 삼성그룹(2003년 1백23억원)은 연 4년째 고용부담금을 가장 많이 낸 것으로 드러났다. 3백인 이상 기업체는 노동자 2%를 장애인으로 고용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고용부담금(1인당 월 48만2천원)을 물어야 한다.노조 지도자 시절부터 파상 공격 벌여

국감 증인 채택에 관해서는 삼성이 1승을 거둔 격이다. 단의원은 노조를 만들려는 노동자들의 위치를 불법으로 추적했다는 혐의를 받는 삼성SDI 김순택 사장에 대해 증인 채택을 신청했다. 단의원이 요청한 증인 채택 건은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가장 첨예한 논란이 되었다. 단의원이 강력하게 밀어붙였지만 증인 채택은 무산되었다. 환노위의 여·야 간사(제종길·배일도 의원)가 ‘삼성SDI 문제는 노사 문제가 아니다’라고 합의했기 때문이다. 동료 의원들을 설득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같은 상임위에 있는 노동계 출신 의원들조차 ‘삼성 이슈’에는 미온적이었다. 단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열린우리당 우원식 의원만 증인 채택에 찬성했다.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조차도 증인 채택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상 침묵으로 일관했다”라고 말했다. 단의원은 “증인 신청을 하고 나서 삼성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던 지인들까지 부탁해오는 것을 보면서 나도 놀랐다. 국감 때 삼성 직원들이 국회에 상주하다시피 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원내에 들어오기 전인 노조 지도자 시절에도 단의원은 삼성과 여러 차례 각을 세웠다. 민주노총 위원장 시절인 2000년 10월에는 시민단체와 연대해 ‘이건희 삼성회장이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 사채(BW)를 저가로 발행해 이재용씨에게 넘겨주는 방식으로 편법 상속했다’며 이회장과 삼성에버랜드를 고발하기도 했다. 단의원은 “민주노총 위원장 시절 만난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들도, 고 김말룡 의원을 제외하고는 삼성 문제뿐만 아니라 노동 현장 문제에 개입하기를 꺼렸다”라고 말했다.

단의원이 원내에서 삼성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것에는 ‘원외 전투’를 함께했던 보좌진의 역할이 크다. 민주노총 조직쟁의실장을 지낸 신언직 보좌관은 민주노총 삼성전담팀으로 활동하며 1996년 삼성중공업에서 노조를 추진한 노동자들과 연대 투쟁을 벌였다. 민주노총 법률원에서 활동했던 강문대 보좌관(변호사)은 법적 문제를 검토했다.

이 사건 직후 공교롭게도 ‘삼성그룹 인사’ ‘동작 인식 휴대전화 개발’ 등 삼성 관련 뉴스가 쏟아졌다. ‘삼성 노조’ 뉴스는 단신으로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조용히 마무리되었으면 하는 삼성측의 바람과 달리 이번 사태의 여진은 오래갈 것으로 보인다. 홍씨와 민주노총이 고소·고발할 태세인 데다 기자회견 이후에 단병호 의원 또한 의혹을 해명하라는 공개질의서를 삼성전자에 잇달아 보냈기 때문이다.

단병호 의원은 “삼성이 휴대전화·반도체 등 세계적 수준의 기술을 가진 기업인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기업 투명성이나 노사 정책을 보면 세계적 기업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제 노조에 대해 전향적 시각을 가질 때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단의원은 2007년 복수 노조가 허용되는 시점이 되면 삼성의 무노조 정책이 깨질 것이라고 본다. 단의원은 “삼성그룹의 고 이병철 회장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조가 설립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지만 나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삼성의 무노조 정책을 용납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17대 국회 내내 삼성을 겨냥한 ‘단의 전쟁’은 계속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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