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마인드가 영양가 만점이네
  • 차형석 기자 (cha@sisapress.com)
  • 승인 2005.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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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대제 장관의 ‘정통부 혁신’ 비결
“새해 첫 번째로 여는 호프 앤드 호프 데이(Hof & Hope Day) 행사입니다. 내가 왜 우정사업본부를 가장 먼저 찾았는지 압니까?” 지난 1월26일 오후 6시30분, 서울 광화문에 있는 우정사업본부 10층 대회의실. 진대제 정보통신부장관이 호프데이 행사에 참석해 우정사업본부 직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호프 앤드 호프 데이 행사는 장관과 직원이 생맥주를 마시며 대화하는 시간인데, 진장관이 취임하면서 도입했다).

‘우정사업본부에 애착이 많아서’ ‘정통부 사무실과 거리가 제일 가까워서’ 등등 직원들의 대답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진장관의 말이 이어졌다. “우정사업본부는 7년간 연속 흑자를 냈고, 공공행정 서비스 부문에서 6년 연속 고객 만족도 1위를 달성했다. 흑자도 중요하지만 고객 만족이 더 의미 있다. 고객 만족 정신을 가장 강력하게 실천하는 곳이어서 제일 먼저 왔다.” 정통부에 ‘기업 마인드’를 불어넣겠다는 진장관의 의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진장관은 지난 1월4일 개각에서 언론의 눈길을 모았다. 신임 장관들만큼이나 관심을 모았다. 참여정부 1기 내각에서 유일하게 살아 남은 ‘장수 장관’이기 때문이다. 호프 데이 행사에서도 ‘파워 있는 장관’에 대한 직원들의 기대가 쏟아졌다. 대통령이 신임하는 장관이 있을 때 우정사업본부를 우정청으로 격상해 달라는 민원성 질문이 세 번이나 나왔다.

정보통신부는 지난해 정부 업무 평가에서 건교부·노동부·산자부와 더불어 우수기관으로 선정되었다. 그중에서도 정통부가 가장 높은 업무 평가 점수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6월 노무현 대통령은 “정통부가 잘한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이 정도로 잘하는 줄 몰랐다”라며 진장관을 공개적으로 칭찬하기도 했다. 업무 평가에서 1위를 하고, 장수 장관으로 유임까지 했으니 관가에서 시샘과 부러움을 동시에 받을 만했다.

서병조 정통부 혁신담당관은 성과지향적 조직으로 바뀐 것을 가장 큰 변화로 꼽았다. 대표적인 것이 목표관리제와 CEO미션제다. 직원들이 각자 개인 업무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관리해 간다. 여기에 실·국 별로 담당 간부와 장관이 함께 미션을 정하고, 추진 상황을 지표로 계량화해 추진해 가는 방식이다. 장관이 사무관급 이상 간부 2백여 명이 참가하는 월례 전략회의를 주재하면서 추진 실적을 직접 점검한다.성과 우선시하고 업무 평가 엄격

이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계량화 지표이다. 예를 들어 정보화기획실장에게는 스팸메일 수신량을 50% 감축하라는 CEO 미션이 주어졌다. 1인당 스팸 수신량을 평가 지표로 삼는다. 공보관의 경우 브리핑을 활성화해 언론 브리핑 순위를 정부 부처 가운데 5위 이내로 달성하자는 목표가 정해졌는데, 장·차관, 실·국장 브리핑 실적으로 이를 평가하게 했다. 지난해 정부 업무 평가에 참가했던 한 인사는 “성과를 평가할 수 있는 지표화가 세밀해 인상적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생산성을 지표화하기 어려운 부서도 많은데, 이들 부서까지 세밀하게 업무를 계량화하고 수치화했다”라고 높게 평가했다.

성과를 중시하면서 공무원들의 업무 스타일도 바뀌었다. 보고서 양식을 워드프로세서에서 파워포인트 프로그램으로 교체했다. 2004년부터 전자 결재와 e메일 보고가 활성화했다. 보고 방식에도 변화가 왔다. 진장관은 대통령에게 ‘거두절미형 보고’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존경하는 대통령님’으로 시작하는 서론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진장관은 직원들에게도 브리핑 3·3·3 원칙을 강조한다. 3초 사이에 관심을 끌면 3분 동안 설명할 기회가 생기고, 3분 동안 설명을 잘 하면 30분 동안 상대방을 설득할 시간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장관이 간략한 브리핑 방식을 선호하면서 보고서에서 거품이 빠졌다. 정부 업무 평가에 참가한 한 인사는 “공무원들의 서류에는 ‘공무원 말투’가 있다. 적극 대응한다느니 지속적으로 추구한다느니 추상적인 단어가 많은데, 정통부 자료에는 내용이 수치로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에는 팀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했다. 정보통신정책국에 시범 삼아 팀제를 도입하고 국장에게 조직운영권과 소속 직원에 대한 전보권을 부여했다. 이전에는 실·국 인력 배치에 대해서는 차관이 결재했으나, 실·국장이 조직을 탄력적이고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권한을 강화한 것이다.

성과를 우선시하는 기업 마인드가 결합하면서 동시에 업무 평가가 상당히 엄격해졌다. 수치화한 성과 지표로 업무 평가를 해 책임을 강력하게 묻는 것이다. 한 과장은 “지난해 과장급 이상 간부 가운데 15%가 산하 기관으로 이동했다. 성과 측정 결과가 기준이 되었는데, 이 정도 인사 이동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 상당히 충격적이었다”라고 말했다.

“진장관은 지나치게 과대 포장되었다”

진대제 장관이 정부 조직에 기업 마인드를 불어넣으려 했다면, 장관 본인도 정부 조직에서 일하면서 공공 정책에 대한 마인드를 얻었다. 진장관은 간부들에게 “기업체에 있을 때는 70%가 된다고 하면 일을 추진했다. 그런데 정부에 와보니 99%가 찬성한다고 해도 1%가 반대하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이해 당사자들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진장관의 행보가 노무현 대통령이 도입한 ‘분권 행정’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진장관은 올해는 노준형 차관에게 안살림을 맡기고, 자신은 갈등 조정자와 해외 세일즈 마케팅에 주력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노대통령과 이해찬 총리의 역할 분담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진장관과 관련해 호평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정보통신업계 관계자는 “진장관이 지나치게 과대 포장된 측면이 있다”라고 평가했다. 역대 정통부 장관 9명 중 5명이 민간 출신으로 내부 조직 변화를 어느 정도 이루었고, IT 산업이 신성장 동력으로 인정받는 상황에서 진장관이 운 좋게 열매를 따먹는 격이라는 것이다.

삼성 출신이어서인지 대기업들과 지나치게 유착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전국언론노조는 최근 한 정통부 서기관을 SK텔레콤에 파견 근무하게 한 것에 대해 ‘진대제 장관은 SK텔레콤의 마케팅 실장인가?’라는 성명서를 내며 비판했다. 박현삼 정책국장은 “민·관 교류라지만 각종 인·허가권을 가진 관료가 개별 업체에서 돈을 받고 일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라고 말했다.

진대제 정통부장관은 장관 직을 맡으면서 ‘장관 일을 3년은 하고 싶다. 그래야 결실을 볼 수 있다’는 말을 자주한 것으로 전해진다. 2005년은 3년차 장관이 되는 해이다. 갈등 조정자가 되고 해외 세일즈 마케팅에 나서겠다는 진장관이 참여정부 장수 장관으로서 임기를 얼마나 연장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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