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100대 요직 인사’ 대해부
권력 있는 곳에 PK 출신 있다
  • 이숙이·고제규·차형석 기자 ()
  • 승인 2005.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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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은 노무현 정부의 ‘권력 지도’가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변했는지 면밀하게 분석했다. 그 결과 안정감은 향상되었으나 지역 편향성이 엿보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3년차 징크스가 도지는 것일까. 인사에 관한 한 산뜻하게 출발했고, 그 사이 큰 탈이 없었던 참여정부에서 하나 둘 인사 잡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교육 부총리 인선 과정에서 치명적인 허점을 드러냈는가 하면, 요즘 들어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 인맥 챙기기가 도를 넘어섰다는 뒷말도 무성하다.

전문가들은 정권이 망가지는 지름길로 인사 잡음과 권력형 비리를 꼽는다. 인사를 놓고 시시비비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국민 불신이 깊어지고, 그러다가 권력형 비리라도 터져 나오면 지지층마저 등을 돌리게 된다는 것이다. 역대 정권을 되돌아보면 그런 실수가 시작되는 시기가 대개 집권 3년차라는 것이 중론이다.

<시사저널>은 참여정부 출범 2주년을 맞아 지난 2년 동안 청와대와 정부 인사가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졌고, 결과적으로 권력 지도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점검해 보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정부 100대 요직을 선정하고, 2003년 참여정부 출범 당시와 2005년 2월 현재 어떤 인물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비교해 분석했다. 100대 요직은 여타 언론 매체의 범례와 <시사저널> 기자들의 판단을 종합해 선별했다(12~13쪽 표 참조).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출범할 당시 100대 요직을 차지한 인사들의 평균 나이는 54.1세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왼팔이라고 불리던 이광재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38세로 가장 어렸고, 조세형 주일대사가 74세로 최연장자였다. 이들 30대와 70대 1명씩을 빼면 40대가 20명, 50대가 64명, 60대가 14명으로 50대의 비중이 압도적이었다.

50대 중심론은 최근 들어 더욱 강화되었다. 2005년 100대 요직 가운데 50대가 68명으로 4명 더 늘어난 것이다. 40대가 20명에서 11명으로 준 반면, 60대가 14명에서 18명으로, 전체 평균 연령이 54.1세에서 55.4세로 한 살 늘어난 점 등을 종합하면 출범 때보다 노무현 정부가 한층 원숙해졌음을 알 수 있다. 2005년 2월 현재 100대 요직 가운데 최연소자는 김종민 청와대 대변인(41세)이고, 최연장자는 조창현 중앙인사위원장(70세)이다.

2년 사이에 가장 크게 변한 대목은 100대 요직에 오른 인물들의 출신 지역이다. 초기에는 영남 출신(대구·경북, 부산, 울산, 경남·북) 28명, 호남 출신(광주, 전남·북) 24명, 수도권 출신(서울, 경기, 인천) 22명, 충청 출신(대전, 충남·북) 12명, 강원, 제주 출신 13명이어서 지역 별로 얼추 균형을 이루었다. 덕분에 김대중 정부 때 고질적 병폐라고 불렸던 호남 편중 인사 시비도 말끔하게 털어냈다. 강원·제주 출신은 절반 넘게 줄어

하지만 최근 들어 영남 약진이 두드러지면서, 오히려 ‘영남 편중 시비’가 일 조짐이다. 출범 초에 비하면 영남 출신이 28명에서 35명으로 늘어난 데 반해, 강원·제주 출신은 13명에서 6명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수도권과 충청·호남 출신은 크게 보면 변화가 적은 듯이 보이지만, 호남권에서는 전북 퇴조(9명→6명), 전남 약진(13명→16명)으로, 충청권에서는 대전·충북 퇴조(7명→2명), 충남 약진(5명→11명)으로 희비가 엇갈렸다.

영남 출신, 특히 부산·울산·경남 출신 인사들은 단순히 숫자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예컨대 검찰 경찰 법무부 국정원 국세청 금감위 금감원 공정거래위원회 부패방지위원회 등 권력 중추 기관의 요직 31개 중 11개(35.5%)를 부산·울산·경남 출신이 장악할 정도로 비중이 높아졌다.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 송광수 검찰총장, 이종백 서울지검장, 임채진 법무부 검찰국장, 이상업 국정원 2차장, 김성호 부패방지위원회 사무처장, 오대식 서울국세청 조사1국장이 모두 이 지역 출신이다.

사정기관이나 ‘경제 검찰’이라고 불리는 국세청·금감위 등을 특정 지역 출신이 장악할 경우 일반 국민이 느끼는 인사 편중 체감도는 더욱 가파르다. 대통령 모교인 부산상고 출신이 100대 요직에는 드문데도 불구하고 마치 참여정부를 쥐락펴락하는 것처럼 비치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이들이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금감원 부원장보 같은 사정 관련 업무에 속속 배치되고 있어서라는 것이 중론이다(15쪽 상자 기사 참조).

부산·울산·경남 다음으로 권력 요직 31개에 가장 많이 진출한 지역은 뜻밖에도 충남(5명)이다. 충남은 전체로도 경남(16명) 전남(16명) 서울(15명)에 이어 11명을 100대 요직에 배출함으로써 참여정부 2기에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행정부에서는 이해찬 국무총리(충남 청양), 청와대에서는 김우식 비서실장(충남 공주)을 투톱으로 하고,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충남 금산), 오영교 행자부장관(충남 보령),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충남 공주), 이정수 대검 차장(충남 서산), 이기묵 서울경찰청장(충남 보령), 전형수 서울국세청장(충남 보령), 김종민 대변인(충남 논산)이 그 뒤를 받치고 있다.

100대 요직 분포로만 보면 앞으로는 ‘호남 소외론’이 아니라 ‘전북 소외론’이 더 힘을 얻을 것 같다. 절대적인 숫자에서 전북 출신이 줄어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맡은 역할도 정보·사정 라인 등에서 한참 비켜난 탓이다. 특히 청와대의 경우 요직 21개 가운데 전북 출신은 단 한 명도 없다. 김원기 국회의장, 김덕규 국회부의장, 정세균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김덕룡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모두 전북 출신이라며 ‘국회에 전북시대가 열렸다’고 한 세간의 호들갑과는 대조되는 대목이다.

상승세 탄 연세대 출신들, 청와대 포진

새만금 사업이 난항을 겪으면서 흉흉해진 전북 민심은 최근 이 지역 출신인 이연택 대한체육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 소식으로 악화일로이다. 그동안 언론에서는 차기 대한체육회장 선거를 놓고 연임 의사를 밝힌 이연택 회장과 그에게 도전 의사를 밝힌 부산 출신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장관 사이의 물밑 신경전이 치열하다는 보도가 많았는데, 그 와중에 수사 소식이 터져 나오자 사건 진위와는 관계없이 ‘영남 실세들의 호남 찍어내기 아니냐’는 음모론이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인사에 대한 민심의 반응은 민감하다.

부산·경남 출신의 요직 진출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출신 고등학교 분포에서도 변화가 생겼다. 2003년도에는 경기고(서울) 경북고(대구) 경복고(서울) 광주일고(광주) 대전고(대전)가 5위권에 들었는데, 2005년에는 경복고·광주일고·대전고를 제치고 부산고·경남고·서울고가 새로 진입했다. 특히 부산고는 2명에서 6명으로 급격한 상승세를 탔는데, 2003년에는 성경륭 국가균형발전위원장, 이해성 홍보수석이 청와대 소속이었던 데 비해 지금은 변양균 기획예산처장관, 김성진 중소기업청장, 김만복 국정원 기조실장, 이종백 서울지검장, 임채진 법무부 검찰국장 등 정부 각 부처에 고루 진출해 있다.

출신 대학으로 따지면, 성균관대 퇴조와 연세대 상승세가 눈에 띈다. 참여정부 초기 100대 요직에는 성균관대 출신이 7명이나 되어 ‘성대 돌풍’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서영제 서울지검장, 김두성 병무청장, 이주석 서울지방국세청장, 유창무 중소기업청장, 조명균 통일부 교류협력국장, 정창수 건교부 주택도시국장이 빠지고,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과 새로 진입한 형태근 정통부 정보통신정책국장 2명만 남았다.

대신 고려대와 연세대 출신이 각각 1명, 3명씩 늘었다. 전체 숫자로는 고려대 출신이 11명으로 연세대 출신 8명보다 많지만, 청와대만 따지면 연세대 비율이 압도적이다. 김우식 비서실장을 비롯해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장, 박기영 정보과학기술보좌관, 윤태영 제1부속실장, 천호선 국정상황실장이 연세대를 나왔고, 고려대 출신은 윤성식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이 유일하다. 전반적인 ‘경기고-서울대 우위’ 현상은 여전하다.

각 부처 실무 국장급이 대거 포함된 만큼 100대 요직에는 2년 전이나 지금이나 관료 출신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학자 출신이 18명이나 되어 노무현 정부의 양대 인재풀은 관료와 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수 좋아한다’는 소리를 듣던 김대중 정부 때 100대 요직에 학자 출신이 7명에 그쳤던 데 비하면(<주간조선> 2000년 자료), 가히 ‘학자 중용 시대’인 셈이다. 노대통령은 최근 청와대 홍보수석 인사에서도 대체로 언론인 출신을 기용하던 관례를 깨고 조기숙 교수(이화여대·정치학)를 발탁했다.

관료가 절반 차지…시민단체 출신 ‘전멸’

2005년 100대 요직에 시민단체 출신이 단 한 명도 없는 것도 이례적이다. 참여정부가 출범할 때는 이남주 부패방지위원장, 지은희 여성부장관, 정찬용 인사보좌관 등 시민단체 출신이 여럿 이름을 올렸지만, 지금은 그 자리를 관료와 학자가 대신하고 있다. 참여정부의 또 다른 인재풀로 주목되는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출신도 고영구 국정원장과 문재인 민정수석 둘뿐이다. ‘코드 인사’의 산실처럼 여겨졌던 시민단체와 민변 출신의 득세가 적어도 100대 요직에는 적용되지 않는 셈이다.

집권 3년차 인사 누수를 염려한 청와대는 최근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정무직 인사의 경우 인사추천위원회가 2~3배로 압축한 후보를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단계에서 그 내용을 외부에 알려 ‘공개 검증’을 거치기로 한 것이다. 2월17일 검찰총장과 국세청장 후보를 2명씩 공개한 것이 첫 사례다. 하지만 이 역시 적지 않은 부작용이 우려된다. 결국 인사가 ‘망사’가 되지 않는 최선의 길은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끊임없이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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