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제’ 문재인이 맡아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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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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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세 민정수석, 참여정부 ‘전방위 해결사’ 노릇…청와대 “임무 수행일 뿐, 월권은 없다”
“저는 문수석이지 왕수석이 아닙니다.” 노건평씨 재산 의혹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특별 기자회견이 열린 5월28일, 추가 설명에 나선 문재인 민정수석이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문수석에게 너무 힘이 쏠리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지적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기자들의 표정은 썰렁했다. 문수석이 지난 100일 동안 유일무이하게 던진 이 농담이 너무나도 진지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청와대 비서진과 기자들 사이에서 문수석은 ‘깔끔맨‘ ‘진지 itself(그 자체)’로 통한다. 외모에서 풍기듯, 업무 스타일이나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서 좀체 흐트러짐이 없기 때문이다. 문수석은 공사 구분이 칼 같다는 평을 듣는다. 비서진이나 기자들이나 업무 외에는 따로 만나는 일이 거의 없다. 100일 동안 어느 정도 안면을 텄을 법한데도, 브리핑 때 만나는 기자들에게 ‘친한 척’ ‘아는 척’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비사교적, 비정치적이고 낯가림도 꽤 심한 편이다.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냉정함은 부산 사회에서도 유명하다. 문수석과 단짝인 부산 정치개혁추진위원회 조성래 변호사는 “문수석은 2차 가는 법이 절대 없다. 밤 10시면 정확하게 귀가하고 다음날 동료들이 다 망가진 모습으로 나타나도 문수석은 혼자 말끔하게 나타나곤 했다”라고 말했다.

주변 관리가 철저하다 보니 문수석에 관해서는 회자되는 뒷얘기가 드물다. 최근에 그가 이를 6개나 뺐다는 가십도 <청와대 브리핑>이 KBS 토론회에 문수석이 불참한 배경을 설명하면서 외부에 알려진 것이다. 하지만 문수석에게도 낭만적인 측면은 있다. 그는 ‘만능 스포츠맨’이다. 원래 운동을 좋아하는 데다 특전사 출신이어서 못하는 운동이 없다고 한다(단, 골프는 배우지 않았다). 특히 스킨스쿠버 실력이 프로급으로 알려져 있다. 부산 시절, 낚시를 좋아하는 이호철 민정1 비서관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으면, 문수석은 물밑에 들어가 “여기가 고기가 많네, 저기가 많네” 하며 훈수를 두곤 했다. 얼마 전 문수석이 직접 보길도를 찾은 것도 스킨스쿠버에 대한 추억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한 참모는 “현장에는 비서관이 다녀와도 충분했다. 그런데도 굳이 수석이 나서기에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보길도에 스킨스쿠버 하러 많이 다녀 그 지역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고 하더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문수석의 또 다른 취미가 ‘들꽃 찾아 여행하기’라는 소리도 들린다. 문수석도 실은 자유인 기질이 강한 사람이라는 얘기다.

그런 문수석이 요즘 ‘참여정부의 시스템을 고장 낸 주범’으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일만 터졌다 하면 왜 문재인 수석이 나서는가” “청와대에는 민정수석만 있나” “책임 총리를 자임한 고 건 총리는 뭣하고 있는가” 하는 비판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00일 동안 대통령말고 가장 많이 언론에 등장한 인물이 바로 문수석이다. 각종 인사 문제와 노건평씨 의혹 같은 친인척 문제에 관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고속철도 노선 문제, 보길도 댐 건설 문제, 화물연대 파업과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문제, 그리고 최근의 조흥은행 매각 문제에 이르기까지 각종 사회적 갈등 현장에 빠짐 없이 문수석이 등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민정수석이 아니라 노동수석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가 하면, 한나라당은 ‘대통령과 코드가 잘 맞는다는 실세 수석 중심의 독단적인 국정 운영으로 시스템이 마비되고 있다’고 공격하고 있다. 문수석을 두고 ‘왕수석’이라느니 ‘청와대 2인자’라느니 하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문수석은 최근 정치부 기자 100명이 뽑은 노무현 정권의 실세 1위에 이광재 국정상황실장과 공동으로 올랐는가 하면 (<월간 중앙> 6월호), 노무현 정권 100일을 맞아 가장 많은 언론으로부터 인터뷰나 토론 참가 요청을 받은 참모이기도 하다.

청와대측은 이에 대해 민정수석실은 노동 문제를, 정무수석실은 사회 갈등 현안을 맡게 되어 있다면서, 문수석의 중재 역할은 맡겨진 임무를 수행한 것이지 절대 ‘월권’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문수석 역시 “최근 노동 관련 일들이 많아 내 일이 많은 것 같지만, 일시적 현상이다”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민정수석실 내부에서조차 문수석이 이렇게 전면에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민정수석은 내부 단속과 감시 기능에 충실해야지, 일일이 정책 사안에 나서는 것은 옳지 않다는 논리다. 한 관계자는 화물연대 파업 때부터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회의에서 대통령이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질문을 던졌는데, 정확하게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일찌감치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문수석이 대답을 했고, 대통령이 ‘그럼 문수석이 나서 보시오’ 하게 된 것이다.” 이후 전교조나 조흥은행 문제에 개입하게 된 것도 결국은 문수석이 내용을 가장 잘 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문수석은 일 욕심 많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우리 소관이 아니더라도 정확하게 알고는 있어야 한다. 그래야 크로스 체크라도 되는 것 아니냐” 하면서 부하 직원들을 몰아붙이는 스타일이다. 본인의 퇴근 시간도 청와대 수석 가운데 가장 늦어 밤 11시를 넘기기 일쑤다. 이 때문에 민정수석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수석이 집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얘기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오기도 한다. 수석보다 먼저 퇴근하기 껄끄러운 아래 사람들 처지에서는 절박한 현안인 셈이다.

‘문재인 쏠림 현상’이 심각해지면서 일각에서는 문수석이 빠지면 청와대가 큰일 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그런데 내년 총선을 준비하고 있는 부산 개혁파 안에서도 문수석이 출마하기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문재인 대 정형근’ 정도의 상징적인 대결이 벌어져야만, ‘동남풍’이 세게 불 수 있다는 것이다. 부산 정개추의 한 간부는 “문수석이 정치에 뜻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지인들은 말을 아끼고 있다. 하지만 상황 전개에 따라 문수석에게 내려오라고 강력하게 요청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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