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마음 ‘땀’으로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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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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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전담팀 따로 두고 사회봉사 활동 ‘경쟁’
지난해 태풍 루사에 휩쓸린 강릉 수해 현장을 방문한 LG 구본무 회장은 깜짝 놀랐다. 수마가 할퀴고 간 흔적 때문만은 아니었다. 파란 조끼를 입고 수해 현장 곳곳을 누비는 삼성맨들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LG그룹도 LG전자의 가전제품 수리팀을 비롯해 적지 않은 인력을 수해 지역에 파견했지만, 조직적인 체계를 갖추지 못해 효과적인 구호 활동과는 거리가 있었다. 봉사 활동을 홍보하는 데는 더더욱 삼성과 격차가 벌어졌다. LG그룹은 오는 6월 중순 사회봉사단을 발족한다. 공익 재단을 중심으로 펼쳐온 사회 공헌 활동을 전사원이 참여하는 체계적인 봉사 활동으로 확대하겠다는 복안이다. LG는 국가가 위기 상황에 닥쳤을 때 성금만 내는 것이 아니라 그룹 전체가 참여하는 새로운 역량을 보여주겠다고 벼르고 있다. 한 담당 직원은 “우리는 수해만 기다리고 있습니다”라는 말로 각오를 대신했다.

그동안 기업의 사회 공헌은 참사나 수해 등 국가 재난 상황에서 ‘○○그룹 ○○○회장과 임직원 일동 ○○○원’ 하는 식의 기부 문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요즘은 기업들이 사회 공헌 전담 부서를 두고 현장에 자사 인력을 투입하는 인적 봉사 활동으로까지 번져 가고 있다. 5월29일 포스코는 포항 본사에서 포스코 봉사단을 창단했다. 그동안 포스코가 사회 봉사 활동에 관심을 덜 기울인 것은 아니었다. 지난 한 해 봉사 활동에 참여한 포스코 직원은 15만여 명, 직원 한 사람당 8회 이상 봉사 활동에 참가한 셈이다. 현재 포스코에서 봉사 활동을 펼치는 그룹은 4백여 개나 된다.

포스코는 봉사단 창단을 계기로 봉사 활동을 기업 문화의 한 축으로 삼아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 이미지를 구축할 계획이다. 포스코 사회공헌팀 박우열 과장은 “회사가 기금을 조성해 단체에 기부하는 활동보다는 소외되고 어려운 분들에게 진정한 도움이 되는 자원 봉사 활동에 초점을 두겠다”라고 말했다.
KT도 사회 공헌 활동에 적극적이다. KT는 지난해 사회공헌팀을 신설하고, 세전 수익의 3.8%인 9백90억원을 사회 공헌 활동에 투입했다. KT 사회공헌팀 김태식 과장은 “봉사 활동에 참여하면서 직원들의 만족감도 커졌고 회사의 이미지도 좋아져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라고 말했다. 임직원 자원 봉사 조직인 ‘KT 사랑의 봉사단’은 총인원 2천여 명으로 지난해 6백회 이상 자원 봉사 활동을 했다. 6월에는 KT 내셔널트러스트 봉사단을 발족해 지역 문화 유적 보전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삼성은 1994년 삼성사회봉사단을 창설하고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사회 봉사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올해도 3천5백억원 가량을 사회 공헌 활동에 쓰기로 했으며, 조만간 사회 봉사 활동을 강화한 프로그램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한화그룹은 서울 지역 전직원이 사회 봉사 활동에 적극 참여하기로 했다. 회사측은 봉사 활동 시간을 업무 시간으로 인정해, 직원들이 원하는 시간과 시기에 맞추어 봉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임직원 개인당 평균 9시간 안팎의 사회 봉사 활동을 펼칠 것이다”라고 말했다. 장학사업을 통해 사회 공헌에 주력해 온 SK는 IT 관련 장학재단을 설립해 천억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할 예정이다. 이랜드는 지난해 말 ‘매년 순이익의 10%를 자선 활동에 기부하겠다’는 파격적인 선언을 하기도 했다.

각 기업이 사회 공헌 활동에 앞다투어 나서고 있는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1980년대 들어 대기업들은 사회 공헌 활동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다지고 경쟁적으로 재단을 설립했다. 하지만 기부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기업이나 재벌에 대한 사회적 비난 여론을 완화하기 위한 목적이 대부분이었다.

국내에서 기업들의 사회 공헌 활동이 본격화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일이다. 단순한 기부에서 인적 봉사로 진일보한 것이다. 외국계 기업들이 정착 초기부터 사회 공헌 프로그램을 적극 가동하자, 국내 기업들의 인식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 공헌 활동은 기업 홍보나 기업 오너의 단순한 ‘생색 내기’ 차원을 벗어나 기업 이미지를 향상시켜 고객을 유인하는 적극적인 마케팅 기법의 하나로 활용되고 있다.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사회 공헌 활동을 담당할 전담 부서와 인력을 배치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그 이면에는 그동안 사회 공헌 활동에 투자한 만큼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자기 반성이 함축되어 있다.

포스코의 한 임원은 “봉사단을 발족한 데에는 사회 공헌 활동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고도 뿌린 만큼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에 따라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취지도 있다”라고 말했다. 한 대기업의 사회공헌팀장도 “현정부 들어 기업들이 앞다투어 전담 팀을 꾸리는 이유는 홍보 효과 극대화는 물론 분배를 중시하는 참여 정부와 코드를 맞춘다는 의미도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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