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전쟁’이란 없다
  • 한태준 (중앙대국제대학원교수) ()
  • 승인 2003.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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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 비용 얼마나 들까/전후 경제 재건 등 감안하면 1조6천억 달러
이라크 전쟁이 초 읽기에 들어가면서 ‘이라크 전쟁의 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 한국 경제는 물론 세계 주요 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전쟁에 대체 얼마나 큰 비용이 들 것인가라는 질문이 나오고 있다. 이 질문에 대해 경제학자 중 열의 아홉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잇 디펜즈(It depends), 즉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하지만 예상되는 몇 가지 시나리오에 따라 이라크 전쟁의 경제적 비용을 대략이나마 계량화할 수는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몇달 전부터 이라크 전쟁 비용을 추정하고 있다. 워싱턴에 있는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지난해 11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라크 전쟁이 4∼6주에 끝날 경우 약 5백50억 달러가 소요되고, 전쟁이 6개월 이상 지속되는 최악의 경우에는 1천2백억 달러가 들 것이라고 한다. 미국 의회 예산처(CBO)는 5백억∼6백억 달러를 예상했으며, 백악관은 6백억∼9백50억 달러라는 수치를 발표했다.

반면 예일 대학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노드하우스 교수는 이러한 수치가 전쟁 이후에 발생할 경제 재건과 평화 유지 비용을 무시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최악의 경우 1조 6천억 달러가 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점은, 한 사람이 쓰는 비용은 다른 사람에게 이득이 된다는 것이다. 전쟁에서 큰 이득을 보는 가장 대표적인 집단은 군수산업이다. 따지고 보면 앞서 언급한 전쟁 비용의 상당 부분은 고스란히 미국 군수산업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다. 미국의 방위업체들로서는 이번 전쟁과 같은 ‘호재’가 없다. 이라크 전쟁의 원인 제공에 군수산업이 상당히 ‘기여’하지 않았을까라는 의혹이 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번 전쟁에서 이득을 얻는 또 하나의 주요 집단은 미국의 석유산업이다. 이라크는 사우디아라비아 다음가는 산유국이다. 물론 이라크 유전 대부분이 미개발된 상태이기 때문에 상당한 투자가 필요하므로 당장 이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이라크가 정치·경제적으로 안정될 경우 미국은 세계 석유 시장을 완전히 석권할 수 있는 실로 엄청난 쾌거를 이룰 것이다.

아무튼 앞서 제시한 전쟁 비용 수치들은 적어도 한국의 처지에서는 매우 큰 액수이다. 예컨대 가장 낮은 추정치인 5백50억 달러는 한국의 연간 국방비의 5배에 이른다. 그러나 미국에는 국내총생산의 0.5%에 불과한 액수이다. 따라서 백악관의 어느 한 경제자문관은 최악의 경우에도 이라크 전쟁 비용은 미국 국내총생산의 1~2%에 그칠 것이어서 부담이 크지 않으리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또한 군비 증강에 따른 재정 팽창에 힘입어 경기가 촉진될 수도 있다고 덧붙인다. 노드하우스 교수는 이러한 수치와 경기 촉진 효과에 대해 앞서 언급한 연구보고서를 통해 반박한 바 있다.

여기서 우리는 처음에 제시된 두 가지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장기적으로는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다. 한 국가의 경제 성장력은 그 나라의 기술 및 교육 수준, 무역 정책 같은 이른바 경제의 기초 체력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물론 전쟁의 단기 영향도 중요하다. 그러나 세계 경제는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심한 몸살을 앓으며 전쟁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전쟁의 불확실성은 유가 불안정 등 경기 전반에 대한 심리적 불안감을 불러일으켜 이미 경기가 위축되고 있는 실정이다. 오늘날의 경제는 심리가 크게 좌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쟁이 끝날 시기가 되면 경기 여파는 한풀 꺾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두 번째 질문, 즉 전쟁 비용이 얼마나 들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그치지 않는다. 앞서 제시한 수치들은 특히 논란의 대상이다. 한편에서는 그다지 많지 않다, 다른 한편에서는 치명적이라고 할 만큼 많다고 주장하면서 대립하고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처럼 수치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에는 큰 허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일 모든 경제학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훌륭한 계산법이 개발되어 전쟁 비용이 제로 또는 플러스로 나왔다고 가정하자. 이러한 수치가 나온다고 해서 전쟁을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인가?

민간인 살상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손실

우리 모두는 진정한 전쟁 비용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너무 쉽게 잊을 때가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무고한 생명의 피해이다. 중요한 것은 ‘무고한’이라는 부분이다. 무고한 생명의 값어치는 거의 무한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다른 나라도 아닌 미국에서 가장 철저하고 엄격하게 따지는, ‘죄가 있다고 입증되기 전까지는 결백하다’는 법 원칙의 전제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유죄를 입증하는 데 드는 모든 부담은 국가가 지는 것이 미국 법제도의 기본 원칙이며, 많은 나라가 이를 모범으로 삼는다. 이러한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미국은 천문학적인 법정 비용을 지불한다. 이렇게 비싼 제도를 고집하는 이유는 무고한 생명의 가치가 그런 비용보다 훨씬 크다는 기본적인 믿음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모든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항상 무고한 민간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사상자의 65%가 민간인이었다. 한국전쟁의 경우 군인 수만명이 희생되었으나 민간인의 희생은 수백만명에 이르렀다. 코소보와 체첸 전쟁의 경우 희생자의 90% 이상이 민간인이었다. 미국은 최첨단 무기를 사용한 ‘외과적’ 공습을 통해 민간인 희생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자부해 왔다. 하지만, 지난 페르시아 만 전쟁에서도 민간인이 2천5백~3천명이나 희생되었으며, 9·11 이후 알 카에다 및 탈레반을 축출하기 위한 아프가니스탄 폭격 때에도 민간인 희생자가 수천여명 발생했다. 이번 전쟁도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경제적’인 전쟁이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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