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LG’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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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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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들, 지주회사 설립에 난색…출자 비율 등 걸림돌도 많아
LG그룹의 통합 지주 회사인 (주)LG가 주행을 시작했다. 시동을 건 것은 지난 3월1일이지만, 조직을 갖추고 가속 페달을 밟은 때는 4월1일부터. 국내 대규모 기업집단 가운데 첫 번째 사례가 될 LG의 지주 회사 전환은 언론으로부터 새로운 실험이니 아름다운 분리니 하는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메릴린치증권도 LG의 시도는 기업 지배 구조 체제 변화의 중요한 이정표라고 치켜세웠다.

자회사의 주식을 소유해 사업 활동을 지배하는 회사인 지주 회사가 재벌 체제가 갖는 폐해를 개선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우선 소유 및 지배 구조가 단순해져 지주 회사 설립을 전후해 LG의 지배 구조가 드라마틱하게 달라졌다. 지주 회사 출범 전의 LG는 계열사간 지분이 거미줄같이 얽히고 설켜 있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LG건설과 LG상사 등 15개 계열사가 지주 회사 밖에 있기는 하지만, 전환 후 LG의 모습은 한결 단순해졌다. 34개 계열사들이 (주)LG 우산 속에 들어와 있으며 (주)LG는 이들 자회사의 지분을 적어도 30% 이상 갖고 있다.

순환 출자라는 가공 자본이 사라지면서 LG는 지배 주주가 지분만큼 지배하고, 권한을 행사하는 만큼 책임지는 체제로 내딛고 있다. 지주 회사를 설립하면 한 기업의 부실이 그룹 전체로 번지는 이른바 선단식 경영의 폐해를 없앨 수 있으며, 구조 조정을 손쉽게 추진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LG가 5년여를 끌고오던 구조조정본부(구조본)를 최근 폐지한 것은 구조본의 기능이 사실상 지주 회사로 대체되었기 때문에 구조본을 유지할 이유가 없어져서이다.

그런데 최근 참여연대가 (주)LG의 조직 체계와 활동 방식에 시비를 걸고 나섰다. 대주주가 2백여 명이나 되는 LG로서는 생존 차원에서 지주 회사를 만들 수밖에 없었지만, LG의 지배 구조는 분명 진일보했다. 그런데도 지배 구조 개선을 촉구해온 참여연대가 (LG의 표현을 빌리자면) 발목을 잡고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가장 문제 삼는 것은 ‘정도 경영 태스크포스팀’. 참여연대는 이 조직의 역할을 볼 때 지주 회사 대주주와 자회사 소액 주주 간에 이해 상충의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크다고 비판한다. 여기서 이해 상충이란, 가령 물품을 구매할 때 (주)LG의 대주주는 지주 회사 전체 관점에서 물품을 조달할 방법을 찾지만, LG전자 소액 주주 처지에서는 그것이 LG전자에 꼭 이익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태스크포스팀은 자회사 감사위원회에 경영 정보를 제공하며 자회사의 마케팅과 구매 활동, 연구 개발 투자 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참여연대는 이런 조정 과정에서 소액 주주의 이익을 침해할 소지가 크며 감사위의 독립성을 훼손할 여지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해 상충에 대한 문제 제기는 참여연대에 그치지 않는다. 일부 증권사 애널리스트들도 동조하고 있다. 동원투신운용 이채원 투자자문 본부장은 “상장사의 경우 30% 지분을 가진 (주)LG 대주주가 70%에 달하는 자회사 소액 주주들의 이익과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라고 지적한다.
경영 태스크포스 같은 산하 조직이 자회사의 전략적 의사 결정을 조정하고 자회사에 대한 통제 업무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참여연대도 인정한다. 문제는 출자 비율이다. 만약 (주)LG가 자회사를 100% 지배하고 있다면 이해 상충 문제는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자회사에 소액 주주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LG는 1999년 4월에 생긴 공정거래법 상의 법정 최소 요건을 따랐다. 지주 회사는 상장 자회사의 경우 적어도 30%, 비상장사는 50%를 소유해야 한다. 선진국의 경우 대체로 자회사 출자 비율이 80%를 넘는다. 다른 나라의 지주 회사들이 출자 비율을 100% 가까이 높인 것은 연결납세제에 따른 세금 혜택을 노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해 상충에 따른 소액 주주들의 손해 배상소송을 원천 차단하려는 의도에서다. 출자 비율만이 문제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지주 회사만 상장되는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LG는 지주 회사도 자회사도 상장되어 있다. 그래서 소액 주주가 70%나 되는 상장사의 이해 상충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이런 우려가 지주 회사 설립 요건을 강화할 필요성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참여연대는 주장하지만, 재계는 요즘 오히려 낮추어야 한다는 상반된 주장을 펴고 있다. 과연 요건을 완화한다면 전경련의 주장대로 많은 재벌이 지주 회사로 체제를 전환하려고 할까. 이미 강화 방침을 밝힌 공정위가 전경련의 요구를 들어줄 리도 만무하지만, 농심·풀무원 같은 대기업을 빼면 제2의 LG가 출현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이 재계의 중론이다. 한 재벌 그룹 관계자는 “요건 완화 목소리는 실제 하겠다는 것보다 다분히 노무현 정부와 LG를 의식한 것이다. 우선 LG가 기선을 제압한 것이 부담스러운 데다 지주 회사를 재벌 체제의 대안으로 여기는 현정부와 이른바 코드를 맞출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현실론을 제기하는 것이다”라고 귀띔한다. 또 이 관계자는 출자 비율이 10∼20%로 떨어진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꼬집는다. 그 정도라면 무늬만 지주 회사이기 때문이다.

상장사의 경우 출자 비율 30%도 높다고 주장하는 재벌 그룹 가운데 제2의 LG가 나오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지나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을지 모른다. 지주 회사로 전환을 검토하다가 접었다고 말하는 한 재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총수의 지분율이 낮은 상태에서 총수가 아무 것도 버리지 않고 계열사를 모두 끌고가려는 것은 지주 회사로 가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그러면서 현행 제도에서는 천문학적 자금이 들어가 현실 가능성이 없다느니 하는 말을 흘리는 것이다.”

장영희 기자 mtview@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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