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 요술방망이 휘둘렀다
  • 장영희 (mtivew@sisapress.com)
  • 승인 2003.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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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구매전용카드 실적 적극 활용…연체율 크게 낮춰 수천억 순익
지난해 삼성과 LG는 신용카드 업계의 양강답게 각각 5천억원대와 3천억원대의 순익을 기록했다. 이에 대해 LG카드의 한 관계자는 “LG와 삼성은 2002년 이전에 이미 대손충당금을 많이 쌓아서 순익을 낼 수 있었다”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전국사무금융연맹과 전국금융산업노조는 두 카드사의 흑자 비결이 기업구매전용카드에 있다며, 이 카드로 인해 연체율과 순이익이 왜곡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기업구매카드는 재경부가 1997년 중소기업에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하던 어음 할인 제도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2000년까지만 해도 카드사로부터 찬밥 대접을 면치 못했다.

그러던 것이 삼성과 LG의 기업구매카드 결제 실적이 지난해 크게 늘어났다. 지난해 총 결제 금액 91조1천억원 가운데 두 회사의 비중이 60%가 넘었다. 수익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데도 삼성과 LG가 기업구매카드 영업에 갑자기 몰두한 까닭이 무엇일까. 사무금융연맹 장화식 부위원장은 우선 정부의 현금 대출 비율(부대업무비율) 50% 이내 규정을 맞추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국내 1·2위 재벌 계열사로서 삼성과 LG는 결제 서비스에 포함되는 기업구매카드 실적을 크게 늘림으로써 현금대출액(현금서비스+카드론)을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늘리면서도 비중은 낮출 수 있는 요술을 부렸다는 것이다. 재벌의 신용카드업 지배 분쇄 및 관치금융청산 특위는 지난해 4/4분기에 삼성과 LG가 기업구매카드로 인해 현금 대출 비율을 각각 6.1%, 5.8% 떨어뜨릴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기업구매카드 실적이 늘어나면 현금 대출 비율을 떨어뜨리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현금 대출액과 함께 분모를 구성하는 결제 서비스 부문에 기업구매카드가 포함되어 분모가 커지기 때문이다(분자는 현금 대출액). 삼성과 LG의 기업구매카드 실적이 결제 서비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51%, 44%에 달했다. 연체율과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연체금을 대출로 전환하는 대환대출을 늘릴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과 LG는 이른바 은행계 카드사로부터 지난해 대환대출을 늘려 연체율을 떨어뜨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연체율을 떨어뜨리면 순익을 늘리는 데도 보탬이 된다. 연체금에 따라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하므로 그만큼 순익 규모를 갉아먹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민·외환 카드가 각각 3조2천억원, 1조4천억원 영업 이익을 내고도 당기순익이 하반기에 적자로 돌아선 것은 연체율이 높았기 때문이다. 카드사 처지에서 연체율 낮추기에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는 것은 이것이 적기 시정 조처와 직결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1개월 이상 연체율이 10% 이상이고 직전 당기순익이 적자이면 금감위의 시정 권고 조처를 받게 되고, 그러면 살인적인 강도의 자구 노력을 강요받는다.

최근 삼성카드 유석렬 사장은 기업구매카드를 취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배경에 대해 한 은행계 카드사 관계자는 “정부가 3·17 대책에서 현금 대출 비율 50% 시한을 1년 연장해줘 시간을 번 데다가 기업구매카드가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재벌계와 은행계 카드사 사이의 갈등의 골은 깊다. 카드사의 한 관계자는 “LG와 삼성은 업계 질서를 문란케 한 실마리를 제공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엄청난 물량 공세를 퍼부었다”라고 성토했다

장영희 기자 mtivew@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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