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이라 호황이요”
  • 차형석 (papapipi@sisapress.com)
  • 승인 2003.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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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품 판매 사이트, 최저가·고품질로 ‘인기’…할인율 과장·다양성 부족 ‘문제’
서울 강남구에 사는 회사원 이수홍씨는 선풍기를 사려고 가격 비교 사이트를 뒤지다 반품 전문 쇼핑몰을 발견했다. 가격이 다른 사이트에 비해 두드러지게 쌌다. 반품이어서 물건에 흠이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했던 이씨는 쇼핑몰로 전화를 걸어 재반품이 가능한지 확인한 뒤 제품을 주문했다. 도착한 상품은 거의 새 제품에 가까웠다. 상자를 뜯은 흔적이 있었을 뿐, 내용물(선풍기)은 작동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첫 경험’ 이후 그는 ‘반품 마니아’가 되었다. 올해 그가 반품을 사들인 횟수는 여덟 번. 유·무선 전화기, 진공청소기, 컴퓨터 복합기 등 소형 가전제품을 주로 구입했다. 지금은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반품 전문 몰에 구입 예약을 해둔다. 이씨는 “물건이 항상 있는 것이 아니어서 물건이 들어올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하는 것이 단점이지만, 좀더 싸게 제품을 살 수 있어 만족한다”라고 말했다.

경기도 안양에 사는 이석은씨도 ‘반품 예찬론자’이다. 지난 4월, 이씨는 LCD 모니터를 구입했다. ‘불량 화소 1개’ 때문에 반품된 제품이었다. 불량 화소라는 점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사용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무엇보다 대학생인 이씨에게는 30% 가량 할인된 가격이 매력이었다. 그는 “반품인 줄 알고 구입해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제품 상태가 좋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디자인 등 유행을 따지거나 최첨단 상품을 선호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반품 구매를 권할 만하다”라고 말했다.

최근 경기가 침체하자 반품 전문 쇼핑몰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온라인 반품 사이트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월께. 입소문이 퍼지면서 검색 엔진에서 ‘반품’을 검색하는 네티즌이 늘어났다(<시사저널> 제718호 참조). 인터넷 순위 사이트인 랭키닷컴의 종합쇼핑몰 순위(8월15일 현재)를 보면 반품을 취급하는 트레이드포(www.tradepot.com), 반품닷컴(www.vanpum.com)이 각각 18위, 22위에 올랐고, 가전쇼핑몰 분야에서는 컴퓨터 기기 반품을 주로 판매하는 유니즈(www.uniz.co.kr)가 4위로 급상승했다.

온라인 유통업체의 반품 규모는 일반인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온라인 쇼핑몰과 홈쇼핑 등 전자상거래 규모는 약 5조원. 이 가운데 반품률(단순 반품, 맞교환, 주문 취소 포함)은 대략 20% 내외여서 업계에서는 1조원 가량 될 것으로 추산한다. 포장도 뜯지 않은 채 소비자가 마음을 바꾸어 돌려보낸 단순 ‘변심’ 제품이나, 포장을 뜯어본 후 디자인이나 컬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돌려보낸 제품이 대부분이다. 제품을 실제로 볼 수 없는 온라인 판매의 특성상 반품률은 높을 수밖에 없다.

1조원대 반품은 유통업계로서는 처치 곤란한 ‘공공의 적’이었다. 외국처럼 반품 상품을 ‘리퍼브(refurbish) 상품’으로 판매하는 유통 채널이 없었기 때문이다(리퍼브란 반품된 제품을 다시 손질해 판매하는 것을 뜻한다).

소비자가 반품할 경우, 홈쇼핑업체는 왕복 배송비를 부담해야 한다. 그래서 ‘얌체 반품족’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기도 한다. 한 홈쇼핑업체 관계자는 “반품을 줄이기 위해 10회 이상 구매를 하면서 반품률이 80%가 넘는 고객이 주문 하면, 상담원이 제품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신중 구매’를 요청한다”라고 말했다.

홈쇼핑업체보다 더 괴로운 곳은 공급업체(일명 ‘벤더’ ‘총판’)들이다. 홈쇼핑업체는 대개 반품을 공급업체나 제조업체로 돌려보내기 때문이다. 한 공급업체 직원은 “조금이라도 싼값에 물건을 받기 위해서는 판매 실적이 좋아야 하기 때문에 재고 물량을 우리가 떠안는다. 공급업체가 제조회사로 반품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라고 말했다. 반품이 생기면 사판(사원 판매)을 하거나, 새 제품으로 둔갑시켜 음성적으로 판매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반품 상품은 어떻게 태어날까. 반품몰 유니즈의 물류센터에 있는 전자제품은 두 부류이다. 한편에는 홈쇼핑 납품용, 다른 한편에는 반품 제품이 쌓여 있다. 이 업체는 컴퓨터 기기 홈쇼핑 공급 업체와 반품 전문 몰을 겸하고 있다. 홈쇼핑 상표가 붙은 반품은 상자 개봉 제품과 미개봉 제품으로 분류한다. 컴퓨터의 경우 일단 부팅을 하면, 사용자 등록 정보가 남기 때문에 물류센터에서 공장에서 출시된 상태로 초기화 작업을 한다. 부품을 빼고 나서 반품하는 얌체 반품족들이 있기 때문에 내부 확인을 하고 제품을 테스트한다. 이런 재처리 과정을 거치고 나서 반품 상품으로 탄생한다.

유니즈의 박종관 팀장에 따르면, 지난 4월부터 골칫거리 반품이 효자 상품으로 둔갑했다. 그는 “반품을 시험 삼아 온라인으로 판매했는데, 어느 순간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제품 가운데 신상품과 반품의 비율이 역전되었다”라고 말했다. 반품 열기 덕분에 지난 7월에는 접속자가 폭주해 사이트가 다운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회사에서 사용하는 컴퓨터 기기들은 모두 반품이다.

반품을 판매하면, 제조업체나 공급업체는 재처리 비용과 재고 부담을 덜 수 있고, 소비자는 실속 구매를 할 수 있어 일거양득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반품몰을 운영하는 트레이드포 강상훈 대표는 “아직은 초기 시장이다. 업체의 짐을 덜고 유통의 한 흐름인 것은 분명하지만 지나치게 과장된 측면이 있다. 단순히 반품이 되었다고 모든 제품이 30∼40%씩 가격이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과장된 할인율만 따지다가는 소비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제품이 한정되어 있는 것도 반품 시장 활성화를 막는 장벽이다. 모든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반품 종합 쇼핑몰’을 떠올린다면 오산이다. 대부분 한두 업체의 제품을 주로 다루는 공급업체가 반품몰을 운영해 반품몰에서 구비할 수 있는 제품이 다양하지 못하다. 게다가 대기업은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될까 봐 자사 제품이 반품 사이트에서 거래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당연히 물건 공급을 꺼린다.

반품 제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구매하기 전에 몇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반품 사이트를 운영하는 곳이 대부분 소비자 보호에 취약한 중소업체이므로 A/S와 재반품 가능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다른 온라인 사이트에서 같은 제품을 얼마에 판매하는지 가격 비교 사이트를 참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반품 사이트에 올라온 일부 상품은 온라인 최저 가격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조금 더 비싼 경우도 있다. 물건이 달릴 경우, 몇 년째 이월된 상품을 판매하는 경우도 왕왕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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