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을 행복하게 채울 마인드부터 가져라”
  • 오윤현 (noma@sisapress.com)
  • 승인 2003.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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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일 근무 활용하는 ‘투잡스족’ 크게 늘어…“두 배로 버니 열 배 즐겁다”
서울에 사는 이상훈씨(33)는 1년 전부터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른바 투잡스족(two jobs족:두 가지 이상의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된 덕이다. 그는 낮에는 소프트웨어 개발·공급 업체 과장이지만, 밤에는 게임방 사장으로 변신한다. 투잡스족 중에는 이씨처럼 ‘낮에는 사원, 밤에는 사장’으로 이중 생활을 즐기는 사람이 적지 않다. 또 평범한 직장인보다 윤택한 생활을 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는 법. 그들은 ‘일 중독자’라는 비난에 시달리기도 한다.

주5일 근무제가 입법화한 이후, 그런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투잡스족이 되겠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지난 9월7일 오후 3시, 서울 지하철 교대역 부근 한 좁은 카페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인터넷 다음 카페 투잡스(cafe.daum. net/2jobs2jobs)가 주최한 ‘애견·사진·프랜차이즈 사업 설명회’에 학생·직장인·자영업자 들이 찾아온 것이다. 모임을 연 주정훈씨(투잡스 운영자)는 신청자가 예상보다 많아, 오지 못하게 막느라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주5일 근무제가 입법화한 이후 회원이 눈에 띄게 늘었다. 8월 초까지만 해도 회원이 2만여 명이었는데, 8월 말에 약 5천명이 늘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20∼30대 직장인이 관심이 많다며 “미래의 경제 전망이 불투명해지자 미리미리 대책을 세워두려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신혼 주부 정유선씨(농수산물유통공사 근무)는 “주5일 근무가 시행된다고 매주 놀러다닐 수는 없지 않은가. 1주일에 한두 차례 들러 매출을 확인하고 수익을 챙길 수 있는 사업을 알아보려고 참석했다”라고 말했다.

투잡스에 대한 높은 관심은 이 날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여느 직장인들의 관심도 가히 폭발적이다. 잡스코리아(www.jobskorea.co.kr)가 직장인 4천35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94.7%가 기회가 되면 부업을 갖고 싶어했다. 또 이미 부업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아서 10% 정도(4백32명)가 ‘부업을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대기업 종사자 17.3%, 벤처 기업 종사자 12.3%, 공공기관 종사자 8.8%, 자영업자 2.9%).

부업의 종류는 다양했다. 인터넷 관련 업종(소호몰)이 41.8%로 가장 많았으며, 번역·과외 같은 전문 업종(27%)과 보험·네트워크 마케팅 같은 세일즈 업종(19.9%)이 그 뒤를 이었다(2002년 12월 조사). 잡스코리아 김화수 대표는 “1998년 이후 사람들은 한 직업에 인생을 거는 게 위험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여가 시간이 늘고 경기가 어려워지면 어려질수록 투잡스족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김영문 교수(계명대)가 소장으로 있는 뉴비즈니스연구소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직장인 3백82명을 대상으로 투잡스에 대해 조사한 결과 74.9%가 ‘두 가지 직업을 갖고 싶다’고 응답했고, 11.3%가 ‘이미 투잡스족이다’라고 응답했다(2003년 6월 조사). 그들이 희망한 부업은 인터넷 관련업·외식업·무점포 재택업·프랜차이즈업 순서였다. 김교수는 “최근 손쉽게 할 수 있는 부업거리가 늘어나, 누구나 쉽게 투잡스족이 될 수 있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주5일 근무제에 걸맞는 부업으로는 인터넷 쇼핑몰 사업·겸임 교수·펜션업·도서 방문 대여업·자판기업·시터(아이나 노인을 돌보는 사람) 파견업 등이 있다(70쪽 상자 기사 참조).

그렇다면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하는 직장인도 투잡스족 대열에 낄 수 있을까. 물론이다. 이상훈씨도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하는 전형적인 직장인이다. 그는 불투명한 미래에서 탈출하고 싶어 지난해 7월 투잡스족이 되었다. 지난해 봄 그는 정보 통신 업체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 4명을 만났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동업을 하기로 의기 투합했다. “직장 생활을 5, 6년 해보니 미래가 뻔했다. 그 불안에서 벗어나려면 돈이 필요했는데,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가 친구들과 눈이 맞았다”라고 그는 돌이켰다. 몇 달 뒤 이씨와 그의 동료들은 각각 5천만원씩 투자해 막 떠오르던 플레이스테이션(게임기) 전용 게임방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했다. 우선, 그들은 서울 홍익대 앞에 플라넷플라마라는 게임방을 열어 거점을 확보했다. 그리고 주말마다 들러 사업 확장을 꾀했다.

투잡스족으로 사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어떤 게임이 뜨고 지는지 재빨리 파악해야 했고, 괜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 회사에는 모든 사실을 비밀로 해야 했다. 게다가 사업을 문의하는 예비 사장님들을 설득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다행히 사업은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전진했다. 부산·안양 등 네 곳에 잇달아 가맹점을 낸 것이다.

‘수입이 생기면 6개월에 한 번씩 배당한다’는 약속에 따라 올 1월과 7월에 배당도 했다. 다섯 사람이 손에 쥔 돈은 각각 1천5백만원. 5천만원을 투자해 1년 만에 30% 수익을 올렸으니 꽤 성공한 셈이었다. 이씨는 처음에는 두 가지 일을 다 해낼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사업 아이템을 잘 잡아 성공한 것 같다며 “다른 사람은 돈을 내고 경영을 배우는데, 우리는 돈까지 벌면서 경영을 배워 기쁨이 더 크다”라고 말했다.
유신건설 김영무 상무(41)도 주5일 근무 덕에 ‘이중 생활’의 기쁨을 톡톡히 맛보고 있다. 김상무가 투잡스족이 된 것은 지난해 6월. 오래 고민한 끝에 2001년 강원도 양양군 법수치리에 땅을 사고, 그곳에 60평짜리 펜션 ‘연어의 꿈’을 지었다. 서울 직장 때문에 펜션 운영과 관리를 처남에게 맡겼지만, 그는 금요일 밤이면 어김없이 그곳에 내려갔다. 그리고 손님들의 상차림을 거들거나, 주변 경관을 손보았다.

비교적 단순한 일이었지만, 그는 ‘거액’을 투자한 덕에 지난 1년 동안 펜션에서 약 6천만원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그는 돈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전원 생활은 젊어서부터 꿈이었다. 15년 만에 그 꿈을 이룬 것과, 직장을 그만두더라도 누울 자리가 생겼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머지 않아 주업이 될 부업을 챙기느라 요즘도 금요일 밤이면 어김없이 영동고속도로를 달린다.

이상훈씨와 김영무씨가 준비 기간을 거쳐 투잡스족이 되었다면, 대구에서 학원 강사로 일하는 김민우씨(28)는 얼떨결에 이 대열에 합류했다. 지난해 3월 말, 그는 우연히 인터넷 쇼핑몰이 돈이 된다는 정보를 들었다. 돈을 벌고 싶었던 그는 이것저것 따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본업을 끝내고 나서 한밤에 일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었다. 그는 일단 ‘가게 문’부터 열었다.
간판 없는 그의 가게에서 ‘얼굴 없는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상품은 피부관리실용 팩과 마사지용품 50여 가지. 그는 인터넷이나 전화로 주문이 들어오면 그 상품들을 약속한 날짜에 어김없이 배송했다. 시간을 잘 지킨 덕일까. 손님이 날마다 늘었고, 적지 않은 돈이 입금되었다. 요즘도 많은 소비자가 그의 가게에 와서 1인당 약 3만원씩 돈을 쓰고 간다. 그 가운데 그가 챙기는 금액은 5천∼6천 원. 그렇게 해서 그가 한 달에 벌어들이는 수익은 강사료까지 포함해 2백50만원이 조금 넘는다.

물론 어려움이 없을 리 없다. 학원에서 하루 8시간 학생들을 가르치고 와서 오전 두세 시까지 일하다 보면 졸음이 참깨처럼 쏟아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오전에 수업이 없는 날에는 하루 종일 강행군이 이어진다. 늘 잠이 부족해 파김치가 되지만, 그는 고된 줄 모르고 산다고 말했다. 오히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생애 최고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행복하다.”
인류학자들에 따르면, 아주 먼 옛날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1주일에 고작 15시간 일했다. 그만큼 당시에는 돌도끼 하나 쥐고 나가 먹거리를 구할 수 있었다. 더구나 집을 넒히기 위해,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돈을 모을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해도 너무 변했다. 김민우씨의 말마따나 벌 수 있을 때 벌지 않으면 미래의 행복을 보장받을 수 없다.

취재하면서 만난 투잡스족 대부분은 ‘두 배로 벌면 열 배 즐겁다’고 말했다. 투잡스 전문가 허시명씨는 현대 사회에서 “큰 걱정 없이 살려면 팔방미인이 되어야 한다”라고 충고했다. 주5일 근무제는 돈을 더 많이 벌기를 희망하는 노동자들에게는 또 다른 기회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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