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선정 ''한국 최고'' 최고 경영자 인터뷰 (2)
  • 이철현 (leon@sisapress.com)
  • 승인 2003.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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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전에 적자는 없다.
<시사저널>은 제727호 커버 스토리(10월2일자)에서 ‘한국 최고 CEO 10인’을 선정했다. 국내 언론 사상 처음으로 계량적 지표를 잣대로 삼아 상장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을 평가한 결과, 재임 기간 최고의 경영 실적을 낸 CEO들의 면면을 파악할 수 있었다.
평가 대상은 동원증권 리서치본부가 거래소 상장 기업 6백88개 가운데 계량적 지표로 선정한 1백40개 우량 기업의 CEO였다. 2차 평가에 사용된 평가툴은 서울대학교 최도성 교수가 마련했다. 재임 기간 시가총액 상승률에서 주가지수 상승률을 뺀 실질시가총액 상승률, 경상이익 상승률, 경제적 부가가치(EVA) 등 세 가지 지표를 기준으로 했다. 이 세 지표를 다시 CEO의 재임 연수로 나누어 연평균 수치를 산정한 후 지표마다 가중치를 매겨 최종 순위를 결정했다.
선정된 최고 CEO 10인을 상대로 서면과 대면 방식으로 두 차례 인터뷰를 실시했다. 서면 인터뷰는 최고경영자가 시간의 여유를 갖고 신중하게 대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대면 인터뷰에서는 최고경영자로서 지닌 인간적인 풍모와 개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해외 출장 등의 이유로 직접 만나지 못한 CEO를 727호에 다룰 수가 없었다. 이번호에 나머지 CEO 5인과 역시 계량적인 방법으로 선정한 코스닥 등록 기업의 최고 CEO를 소개한다.
이번에 소개되는 최고 경영자 5인은 727호에 소개된 최고경영자들과 비슷한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대다수 CEO가 나서기를 싫어하고 자기 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참모의 의견을 경청했다. 이우희 에스원 사장을 제외하고는 카리스마적 권위를 발견할 수 없었다. 조직 운영 면에서는 보편 타당한 원칙을 중시했고 첨단 기술 개발에 주력했다. 세계 시장 공략의 교두보로 중국을 중시해 현지 공장을 설립하거나 영업 조직을 구축하고 있었다. 정몽진 금강고려화학 회장
업계 부동의 1위 굳히다


정몽진 금강고려화학 회장은 이 회사 지분(16.2%)을 가장 많이 소유한 정상영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정회장도 13.9% 지분을 가지고 있다. 회사의 전문경영인은 고주석 사장이다. 하지만 정회장은 공동 대표이사로 등재되어 있고 회사 경영을 주도하는 실질적인 CEO다. 정회장을 한국 최고의 CEO 평가 대상에 포함한 것은 이 때문이다.

정회장은 아버지 정명예회장의 후광을 업고 38세에 최고경영자가 되었다. 최고경영자로서 그가 거둔 경영 성과는 대단했다. 1998년 취임 이후 시가총액 증가액은 1조원에 가까웠고 경상이익 누적액은 5천억원에 이르렀다. 이 덕분에 금강고려화학은 건축 산업용 자재 업계에서 확고 부동한 선두를 차지하고 있다.

정회장이 회사 경영에서 제일 중점을 두는 부문은 해외 시장 개척과 기술 개발이다. 그는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1994년부터 KCC 싱가포르 사장을 맡은 경험을 살려 해외 시장 진출을 진두 지휘하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자체 기술을 갖추어야 한다. 금강고려화학이 기술 개발 투자를 확대해 미국·호주·싱가포르·중국에서 잇달아 기술 특허를 출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회장은 재무구조를 건전하게 유지하고 무리한 차입 경영을 거부한다. 한두 거래처에 매출이 집중되어 있으면 회사의 리스크가 커진다는 단점을 없애기 위해 해외 거래선을 다변화했고 현지 직접 투자 비중도 높였다. 특히 현대그룹 계열사에 대한 매출 집중도를 현재 27% 선에서 장기적으로는 10% 선까지 낮출 계획이다. 김동진 현대자동차 부회장
사상 최고 실적 올린 ‘철인’


김동진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2010년 세계 톱5 자동차 제조업체를 꿈꾸는 현대자동차의 엔진이다. 그는 매일 아침 5시30분에 출근해 6시에 아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이 4시간. 그래서 ‘철인’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불도저 같은 추진력을 가지고 있지만 임직원들은 김부회장을 신중한 경영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자기 주장을 앞세우기보다 임직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회사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김부회장은 또 현장을 중시한다. 최근 내수 침체가 심해지자 울산 지점을 방문해 1일 지점장을 맡아 영업 현장의 어려움을 직접 겪으면서 타개책을 구상하기도 했다.

발명가가 되고 싶었다는 김부회장은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을 지내다 1979년 현대중공업에 스카우트되어 K1A1탱크를 개발했다. 이후 현대정공(현대모비스 전신)이 탱크 개발을 주도하면서 정몽구 당시 현대정공 대표와 인연을 맺었다. 현대정공 기술연구소장을 9년 동안 지낸 후 현대우주항공 사장으로 자리를 바꾸었다가 2001년 9월 현대자동차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그가 사장에 취임한 뒤로 경영 실적이 크게 좋아지기 시작해 지난해까지 사상 최고의 경영 실적 행진을 이어오고 있다. 이 덕분에 김부회장은 정회장으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다. 국내외 주요 투자는 정회장의 사전 재가를 받지만 일상적인 업무를 전결로 처리한다 한수길 롯데제과 사장
현금 흐름 ‘한국 최강’ 달성


한수길 롯데제과 사장은 1998년 2월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래 단 한번도 적자를 내지 않고 꾸준히 성장했다. 롯데제과는 부채 비율이 45.5%(2002년 말 기준)에 불과하고 현금 흐름이 우수해 자타가 공인하는 우량 기업이다. 지난해에는 식품업계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돌파했고 당기순이익도 천억원을 넘어섰다.
한사장은 지극히 내성적인 성격이다. 대표이사 취임 이후 한 차례도 언론에 얼굴을 내민 적이 없다. 거듭되는 인터뷰 요청에도 ‘쑥스럽다’는 답변만 들었을 뿐이다. 최고경영자는 경영 실적으로만 말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사장의 경영 철학은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로 요약할 수 있다. 경영 환경을 안정되게 조성하고 제조업체의 수익성을 결정하는 원가 구조를 개선하는 데 회사 역량을 집중한다. 제조업체의 성패를 가름하는 요소로는 품질을 든다. 식품 업계에서 품질 우위는 기술 경쟁력에서 나온다. 한사장은 기초 과학과 기술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 결과 롯데제과는 국내외에 80여 건의 특허를 등록했고 50건을 출원했다. 서경배 태평양 사장
중국·프랑스 공략해 ‘대박’


서경배 태평양 사장은 태평양 창업자인 서성환 회장의 장남이다. 1997년 36세에 대표이사로 취임해 태평양을 국내 최대 화장품 업체로 키웠다. 태평양은 지난해 매출 1조5백75억원을 거두었고 불황기인 올해도 9%대 성장을 장담하고 있다. 서사장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 한국 1위를 넘어 세계적인 화장품 브랜드로 성장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세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교두보는 중국과 프랑스다. 화장품의 본고장인 프랑스에서 자체 브랜드인 롤리타렘피카 향수를 출시해 시장점유율 2.6%로 4위를 기록한 데 힘입어 전세계 70여 나라에 수출하고 있다. 또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선양과 상하이에 공장을 설립해 업계 최초로 현지 생산·판매 체계를 구축했다. 현재 베이징·상하이 등 대도시 백화점 30여 곳에 매장을 내고 ‘라네즈’ 브랜드를 출시했다.

태평양의 해외 진출은 서사장이 기획·주연·연출을 맡은 작품이다. 성공작이라고 평가받는 해외 진출에는 서사장이 코넬 대학 경영학과에 다니면서 키운 국제 비즈니스 감각과 해외 인맥이 크게 기여했다.
서사장은 두 가지 꿈을 가지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 생활용품 1위 업체로 도약하고 화장품 분야에서는 세계 10대 회사로 태평양을 키우겠다는 포부가 그것이다.
이우희 에스원 사장
“튀는 인재부터 선발한다”


이우희 에스원 사장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많이 닮았다. 작지만 다부진 체격, 날카로운 눈매, 확신에 찬 어투가 이회장을 떠오르게 한다. 인터뷰 내내 단정적인 말투에서 보안업계 1위 업체의 CEO라는 자심감이 배어나왔다. 이사장 러더십의 요체는 카리스마적 권위다. 지금까지 만나본 한국 최고의 CEO와는 달랐다. 그는 “경영 목표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임직원들을 주어진 목표에 맞춰 설득하고 추동해 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사장은 기업 경영에서 제일 중요한 업무로 인사를 꼽는다. 그는 1991년 12월 삼성전자 입사 이후 2001년 3월 에스원 대표이사로 취임하기 전까지 줄곧 인사 업무만 보았다. “회사를 움직여 가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인재를 어떻게 선발하고 육성하느냐가 기업 성공의 관건이다.” 그러다 보니 그는 인재 선발에 가장 신경을 쓴다. 오랜 인사 업무에서 터득한 ‘인재선발론’을 자랑한다. “면접 전형에 참여한 지원자 가운데 가장 튀는 인재를 우선 선발한다. 그리고 나서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을 걸러낸다. 나머지는 정원에 맞추어 선발한다.”

이사장은 실적이 좋은 임직원을 중용한다. “실적은 좋지 않으나 사람은 좋다는 평판을 받는 임직원은 쓸데가 없다.” 실적 위주의 인사 운용은 1981년 창사 이후 눈부신 경영 실적으로 이어졌다. 에스원은 시장점유율 57%로 2위 업체인 캡스(28%)를 압도하고 있다. 이사장은 “줄곧 참모로 활동하다가 최고경영자에 올라 부담이 컸으나 2000년 3월 사상 최대 경영 실적을 거두었을 때 가장 기뻤다”라고 말했다. 이사장은 스마트카드·위치 확인 시스템·통신 시스템 등 첨단 디지털 기술을 보안 업무에 적극 수용하고 있다. “21세기 디지털 보안 환경을 주도하는 선도 기업이 에스원의 미래다.”
코스닥 시장 최우수 CEO 5인/변대규 휴맥스 사장 ‘군계일학’

벤처 기업 주식이 주로 거래되는 코스닥 시장은 CEO들의 성공 신화로 가득하다. 신화를 평가하기 위해 원용한 잣대는 시가총액·경상이익·시장점유율 등 계량 지표이다. 동원증권리서치센터는 코스닥 등록 기업 8백66개를 계량 지표로 평가해 우량 기업 35개를 선정했다. 1차 선정된 기업의 CEO를 상대로 실질 시가총액상승률과 경상이익상승률에 가중치를 매겨 CEO 5인을 선정했다(표 참조).

평가 대상 CEO 가운데 군계일학은 변대규 휴맥스 사장이었다. 서울대 제어계측공학과를 졸업한 변사장은 1989년 건인시스템(휴맥스 전신)을 창업했다. 사업 초기 영상자막 편집보드 비디오 믹스와 가정용 영상 가요반주기를 출시하면서 사업 기반을 마련했다. 1997년 디지털 셋톱박스 시장에 진입하면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셋톱박스는 디지털 위성 방송을 아날로그 신호로 변환해 기존 아날로그 텔레비전에서도 디지털 방송을 수신할 수 있게 하는 장치다. 변사장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가전 사업의 변곡점을 잘 활용했다”라고 말했다. 휴맥스는 지금 90여 나라에 수출하는 세계적인 디지털 셋톱박스 제조 업체로 성장했다. 지난해 매출 3천5백76억원을 올렸는데 이 가운데 수출 비중이 93%나 된다. 변사장은 국내 벤처기업인이 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상을 휩쓸었다. 미국 시사 주간지 <비즈니스 위크>는 2001년 6월 ‘아시아 뉴리더 50인’에 변사장을 포함했다. 또 세계경제포럼(WEF)은 지난해 8월 변사장을 아시아의 미래를 짊어질 차세대 한국인 리더로 선정했다.

변사장에게 충성·헌신하는 직원들

변사장은 외모가 가냘프고 성격이 차분하다. 그는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경영 서적이 아니라 버트런트 러셀의 <행복론>과 빅터 프랭크의 <삶의 의미를 찾아서>를 꼽았다. 존경하는 인물도 잭 웰치나 빌 게이츠 같은 뛰어난 경영자가 아니라 마하트마 간디이다. 사업가라기보다는 학자 이미지에 가깝다. 하지만 그는 온화한 인품과 세심한 배려로 임직원의 자발적인 충성과 헌신을 끌어내는 데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변사장은 또 다른 혁신을 꾀하고 있다. 디지털 컨버전스(융합) 시대에 발맞추어 휴맥스를 디지털 홈 멀티미디어 제품 공급 업체로 탈바꿈시키겠다는 포부다. 주력 제품은 디지털 텔레비전과 홈미디어 서버. 변사장은 “휴맥스를 2006년 매출 1조원을 기록하는 세계적인 디지털 컨버전스 업체로 키우겠다”라고 말했다.

이밖에 통신업체인 알에프텍 차정운 사장과 유일전자 양윤홍 사장이 2, 3위를 차지했다. 차사장은 알에프텍의 경상이익을 연평균 261%씩 성장시켰다. 차사장은 회사의 규모보다는 내실 있는 성장 전략을 추진한 것으로 유명하다. 양사장은 거래 개시 시점인 2001년 8월 시가총액 46억원이던 유일전자를 시가총액 3천억원이 넘는 기업으로 키워냈다. 1991년 취임 이후 회사의 누적 경상이익도 5백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4, 5위에는 전통주 제조업체인 국순당 배중호 사장과 통신업체 디지아이 최관수 사장이 각각 차지했다. 배사장은 전통주를 내세워 맥주와 소주가 양분하던 주류 시장을 삼분했다. 최사장은 디지아이를 연평균 경상이익 증가율 75%, 시가총액 증가율 112.1%를 기록하는 ‘알짜’ 회사로 키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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