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속의 조난 구조대 '텔레매틱스'가 뜬다
  • 채영석 ()
  • 승인 2003.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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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선 네트워크 텔레매틱스 시장 ‘확대일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한 운전자가 철길 건널목을 건너다 추돌 사고를 내 자동차가 멈추었다. 두 자동차의 운전자는 의식을 잃었다. 기차가 사고 차를 향해 접근하고 있었지만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이들을 구한 것은 텔레매틱스 시스템이었다. 차안에 장착된 제너럴모터스(GM)의 텔레매틱스 시스템인 온스타(On-Star)가 비상 구조 신호를 보낸 것이다.

사고가 발생하면서 차체가 받은 충격으로 에어백이 폭발하자 온스타가 자동으로 사고 상황을 운영본부에 알렸고, 운영본부는 즉시 철도회사에 연락해 기차를 멈추게 하고 응급구조반을 사고 현장에 보냈다. 이 사건은 텔레매틱스 시스템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해 가을 미국 콜로라도 주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차가 뒤집혀 운전자가 크게 다친 채 의식을 잃었다. 사고 차 안에는 휴대 전화가 있었지만 신호가 떨어지지 않아, 운전자가 의식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경찰이나 구조반에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마침 사고 현장을 지나가는 차에 온스타가 탑재되어 있어 응급 구조를 요청할 수 있었다. 온스타의 신호 시스템이 휴대전화보다 더 강력하다는 것을 입증해 보인 사건이었다.

텔레매틱스라는 말은 텔레커뮤니케이션(telecommunication)과 인포매틱스(informatics)의 합성어다. 기본적으로 자동차 안에서 e메일을 주고받고, 인터넷을 통해 각종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오토(auto) PC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오토모티브 텔레매틱스’라고도 부른다. 오토모티브 텔레매틱스에는 자동차 메이커, 단말기 제조업체, PC 제조업체, AV업체, 이동통신업체, 통신장비 제조업체, 콘텐츠 제공 업체 등이 함께 참여한다. 정보 기술(IT) 산업과 굴뚝 산업의 합작품인 것이다.

운전자가 무선 네트워크를 통해 차량의 상태를 원격 진단하고, 무선 모뎀을 장착한 오토 PC로 교통 정보와 생활 정보, 긴급 구난 등 각종 정보를 이용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누구에게나 전화 메시지와 음성 e메일을 주고받고 오디오북을 내려받을 수도 있다.
또 뉴스, 주식 투자, 전자 상거래, 금융 거래, 호텔 예약, 팩시밀리 송수신, 게임, 차량 사고와 도난 신고 서비스가 가능하다. 특히 교통 사고가 났을 경우 인공위성을 이용한 위치 확인 시스템(GPS)으로 사고 차량의 위치를 자동 추적해, 가장 근접한 119구조대에 전달해 줌으로써 구난 작업이 한결 쉽다.
미국에서는 GM과 모토롤라의 합작 회사인 온스타가 오토모티브 텔레매틱스 분야의 선두주자이다. 온스타는 현재 2백만명이 넘는 가입자를 보유한 미국 최대 자동차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다. 온스타는 GM의 자회사이지만 GM 차량뿐만 아니라 랙서스·아쿠라·아우디·사브·스바루·이스즈·폴크스바겐 모델에도 서비스하고 있다.

온스타 이용료는 연간 1백99 달러에서 4백99달러로 서비스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온스타는 매달 에어백 폭발 통보 5백 회와 노상 지원 요청 1만4천 회를 기록했다.

이용자가 늘어나자 온스타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자세한 정보를 제공해 사후 대처를 더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업그레이드된 자동 통보 시스템을 지난해 출시했다. 이 시스템은 에어백 폭발을 감지할 뿐 아니라 사고 차의 탑승자가 어느 쪽에서 충격을 받았는지, 그리고 전복되었는지 여부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렇게 되면 응급 구조를 훨씬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된다.

GM은 이 새로운 시스템으로 인해 서비스 요청이 해마다 두세배 정도씩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 새로운 시스템은 올 초부터 캐나다와 미국에서 판매되는 자동차 약 40만대에 적용되고 있으며 2007년에는 GM의 모든 차종에 적용된다. 이 시스템을 통해 앞으로 탑승자 수와 그들이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있는지까지 알 수 있게 된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온스타의 효과에 대한 인식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 아우디·폴크스바겐·렉서스·아쿠라도 온스타와 제휴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미국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60개 이상의 자동차 모델이 온스타를 채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드는 이동통신 전문 업체인 퀄컴과 공동으로 전화는 물론 오락, 인터넷 접속, 안전 서비스 등을 제공하기 위한 텔레매틱스 전문 업체 ‘윙캐스트’를 설립했다. 볼보도 에릭슨·텔리아와 공동으로 ‘와이어리스카’를 설립했다. 다임러크라이슬러 그룹은 지난해 가을부터 음성 명령에 의해 작동되는 휴대전화 ‘욱커넥트’를 제공하고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 재규어 등은 텍사스에 본사가 있는 ATX 텔레매틱스 서비스를 이용한다.

온스타와 ATX의 서비스가 안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휴대전화를 통해 원격으로 시동을 걸 수 있고, 자동차의 전기적인 소프트웨어에 이상이 있을 경우 원격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국내에서 텔레매틱스는 아직까지 낯설기만 하다. 지난 9월 르노삼성자동차가 SM525에 텔레매틱스를 채용함으로써 그 시작을 알린 정도다. 하지만 11월 출시되는 현대 에쿠스가 텔레매틱스를 채용할 예정이고, 현대모비스가 사후 관리(A/S)용 텔레매틱스 제품을 출시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시장 확대가 기대된다.

르노삼성의 텔레매틱스 시스템은 네이트 드라이브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고, 현대·기아자동차도 이미 차량정보센터를 가동 중이다. 대우자동차는 한국통신프리텔과 손잡고 이동통신과 위치 추적 기술을 접목한 ‘드림넷 서비스’를 위한 제휴 협정을 체결했다.

국내 텔레매틱스는 교통 정보와 생활 정보, 지도 검색 등 기본적인 것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시장이 확대되면 미국 온스타처럼 사고 처리 서비스까지 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출 것으로 보여 그 활용 폭이 기대된다.

다만 이용자 증가와 달리 미국의 온스타는 수익성 면에서는 아직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국내 업체들도 텔레매틱스 자체로 수익을 내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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