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경제 '젖줄' 대는 한국 기업들
  • 콜롬보·안은주 기자 (anjoo@e-sisa.co.kr)
  • 승인 2000.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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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생산기지 구축…전자제품 등 최고급 브랜드로 인식
아하, 한국! 내 친구들이 한국인 공장에서 일한다. 다른 공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월급을 많이 준다고 들었다. 또 한국 전자제품은 스리랑카에서 인기 최고이다.”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서 만난 택시 기사 하라(40) 씨는 한국에 대해 깊은 호감을 나타냈다.

인도 남동부, 인도양에 떠 있는 작은 섬나라 스리랑카. 면적이 남한의 3분의 2 가량 되는 이 나라에서는 ‘코리아’라는 꼬리표가 꽤 괜찮은 ‘신용 카드’이다. 스리랑카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고군 분투 끝에 스리랑카 경제를 움직이는 수레바퀴로 자리 잡으면서 따낸 전리품이다.
한국은 현재 스리랑카 제1의 투자국이자 고용국이다. 스리랑카에 진출한 외국 기업은 모두 7백여 개인데, 이 가운데 1백40여 개가 한국 기업이다. 한국 기업은 그동안 현지에 약 2억 달러를 투자했다. 한국 기업이 고용하고 있는 현지인은 6만5천명으로, 외국 기업 고용 인원의 23%에 이른다. 스리랑카 연간 수출액의 12%는 한국 기업이 이룬 것이다.

한국 기업 대부분이 노동집약적인 제조업이지만, 스리랑카 경제와 사회에 기여한 형태는 여러 갈래이다. 우선 산업 구조를 바꿔놓았다. 1960년대 농림수산업이 전체 GDP의 38.5%를 차지하고 있던 것을 1999년 현재 19%대로 감소시킨 주역이 갑을랑카·실론중공업·한진해운 같은 한국 기업이다. 경남기업은 스리랑카 최고의 건설회사로 고속도로를 비롯한 주요 기반 시설을 도맡아 공사한다. 또 한국인 오의석씨가 경영하는 오션뮤직컴퍼니는 스리랑카의 유일한 악기 공장이고, 안한준씨가 설립한 삼양랑카 역시 불모지와 같았던 스리랑카의 도자기 산업을 태동시켰다.

스리랑카 경제에 대한 한국 기업의 기여도가 높아짐에 따라 스리랑카 정부는 한국을 중요한 경제 협력 파트너로 대접한다. 쿠마라퉁가 스리랑카 대통령이 매년 외국 기업인 가운데 한국 기업인만 특별 초청해 칵테일 파티를 열며 격려할 정도이다.

한국 기업들이 스리랑카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반. 한국내 인건비가 상승하자 효율적인 생산 기지를 물색하던 한국 기업들은 중국·인도·베트남·스리랑카 등 제3세계 국가로 눈을 돌렸다.

“이곳에서 공장을 설립하기 전에 시장 조사를 했는데, 중국과 베트남은 외국인 투자 제도가 정비되지 않아 위험 요인이 많았다. 안정적으로 사업하기에는 스리랑카가 제격이라고 판단했다.” 장식용 도자기류를 생산하여 미국과 유럽 등지에 수출하는 삼양랑카 안한준 사장의 말이다.

인건비가 싸고 외국 투자 기업에 7~15년간 세금을 면제해주는 스리랑카야말로 한국 기업이 진출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제조업의 경우 스리랑카에서 드는 생산비용은 한국의 60%, 베트남의 80% 가량. 사회주의 국가였던 스리랑카는 1977년 자본주의 경제 체제로 전환하면서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려고 인센티브를 많이 부여했다. 설비 투자에 대한 완전 면세뿐 아니라 100% 단독 투자 허용, 공단내 부지 장기 임대, 외환 송금 자유 등 동·서남아 국가 가운데 가장 앞선 외국인 투자 제도를 도입했다.

그렇다 해도 한국 기업 처지에서 스리랑카가 처음부터 땅 짚고 헤엄칠 만큼 녹록한 생산기지는 아니었다. 뿌리를 내리기까지 헤쳐야 할 난관이 적지 않았다. 가장 큰 장애물은 문화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 상당하고 숙련된 노동력이 전무하다는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스리랑카는 홍차·고무·코코넛 등 농업이 산업의 근간을 이루어 왔다. 1970년대 후반부터 자유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하고 외국인 투자 유치를 통한 산업 재편을 꾀했지만, 한국 기업이 진출하던 1990년대 초반까지도 제조업 분야에 숙련된 인력이 드물었다.

가방 제조업체인 풍국콜롬보 이정희 상무는 “한국 기술자를 한 사람 초빙하려면 현지인 100명을 고용하는 비용이 든다. 하지만 한국에서 기술자를 데려오지 않고서는 일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초창기에는 한국인 매니저와 현지 노동자 간에 갈등이 적지 않았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한국인과, 조직적인 노동 문화에 서투른 스리랑카인들의 문화적 차이는 노사 분규로 이어졌다. 매일 평균 10명 중 1명꼴로 결근하고, 지각이나 조퇴도 빈번했다.

이를 문제 삼아 한국인 매니저가 현지 노동자를 다그치면 집단으로 스트라이크를 일으키곤 했다. 스리랑카 노동자들은 임금 수준보다는 자존심이 상하거나 동료가 해고되었을 때 집단 행동을 했다. 이 문화적 차이를 인식하지 못했던 한국 기업에서는 노사 분규가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 기업에서 자주 일어나는 스트라이크에 대해 스리랑카 정부가 유감을 표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제이인터내셔널 김진권 사장은 “못사는 나라라고 너무 쉽게 봤다가 큰코다친 한국 기업이 적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초기에 갈등을 겪은 한국 기업은 한국과 스리랑카의 문화 차이를 적절하게 조화시킨 경영 방식을 개발했다. 직물회사 케이비랑카를 경영하는 이시형 사장은 “다른 기업보다 급료나 사원 복지에 좀더 신경 쓰면서 한국식 노동 문화의 장점을 설득하자 이곳 노동자들도 회사 방침에 잘 따라 주었다. 요즘 스리랑카 젊은이들은 한국인 공장에서 일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라고 말했다. 최근 스리랑카의 한국 기업에서는 노사 갈등이 부쩍 줄었고, 생산성도 크게 올랐다.
그러나 최근 한국 기업들은 새로운 갈림길에 서 있다. 스리랑카가 한국 기업의 ‘생산 기지’라는 매력을 점차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스리랑카는 현재 전시 체제와 다름없다.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타밀족 반군이 끊임없이 스리랑카 정부를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불안감을 느낀 외국 바이어들이 속속 이탈하고 있어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이 점차 판로 개척에 애를 먹고 있다.
게다가 스리랑카 정부가 최근 산업의 구조적인 취약성을 탈피하기 위해 하이테크 산업 육성 시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어, 제조업 위주의 한국 기업들이 받는 혜택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서남아 국가 중 가장 앞선 금융 시스템과 인프라 여건을 바탕으로 서남아 지역의 금융·교통·통신·교역 허브 국가를 육성하는 것이 스리랑카 정부의 전략이다.
송영오 스리랑카 주재 한국대사가 말한 대로 한국 기업들은 머지 않아 더 싼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제3의 생산기지를 찾아 스리랑카를 떠날 것인지, 아니면 업종을 전환해서 스리랑카의 장점을 다시 한번 활용할 것인지를 선택할 시점에 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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