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며느리, 반격의 깃발 들다
  • 장영희 (mtview@sisapress.com)
  • 승인 2003.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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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은 현대엘리베이터 회장, 주식 일반 공모 발표…재계는 LG 회장 출국 금지에
현대엘리베이터 현정은 회장이 반격을 시도했다. 정상영 KCC(금강고려화학) 명예회장이 현대그룹을 사실상 인수하는 이른바‘시숙부의 난’을 일으키자 맞불을 놓은 것이다. 반격 무기는 국민주. 현대엘리베이터는 11월17일 이사회를 열고 1000만주(발행가액 4만2천7백원, 할인율 30%) 규모의 유상 증자를 일반 공모 방식으로 실시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현회장이 ‘국민 기업화’라는 초강경 카드로 배수진을 침에 따라 현대그룹 경영권 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수는 5백61만주인데 1000만주가 더 늘어나면 지분 변동이 생길 수밖에 없다. 증자가 순조롭게 마무리될 경우 정명예회장과 KCC측의 지분은 현재 32.15%에서 19.20%로 줄어들고, 범 현대가를 포함한 지분도 44.39%에서 19.95%로 줄어든다.

특히 우리사주조합에 신주의 20%가 우선 배정됨에 따라 현회장측은 유상 증자를 통해 지분이 기존 28.30%에서 10.17%로 줄어들더라도 우리 사주 지분을 포함해 총 22.98%의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이는 정명예회장의 전체 지분을 넘어서는 것이다. 정명예회장측은 1인당 국민주 취득 한도가 2백주이기 때문에 지분 확대에 크게 제약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양측 ‘실탄’ 동원 능력이 변수

이처럼 현회장측이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전술을 구사하는 것은 명분 싸움에서 우위에 있다는 계산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시숙이 조카며느리가 경영하는 회사를 장악한 것에 대해 세인들이 대체로 비정상적이며 부도덕하다는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현회장은 11월17일 성명서를 통해 고 정몽헌 회장의 죽음으로 슬픔과 애도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자신과 현대그룹 임직원들이 지난 4개월간 큰 혼란과 고통을 겪었다며 국민들이 현대그룹 살리기에 적극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2003년판 현대그룹 경영권 다툼의 제1 라운드는 11월14일 KCC측이 현대그룹 경영권 인수를 공식 선언하며 대주주로서 현대그룹 정상화를 위해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불이 붙었다. 재계 서열 37위인 KCC그룹(자산 2조6천7백억원)이 19위인 현대그룹(10조1천6백억원)을 인수해 서열 18위(공기업 제외할 때 서열 8위)로 껑충 뛰어오를 듯했다.

현회장은 정명예회장의 ‘무혈 쿠데타’를 되돌릴 수 있을까. 이미 KCC측은 공정거래위원회에 지분 관련 자료를 넘겨 계열 분리 작업에 돌입했다. 현회장이 반격하기 전까지만 해도 재계 관계자들은 정명예회장이 현회장에게 현대엘리베이터만을 떼어주고 계열 분리를 강제하리라고 내다보았다. 어차피 정명예회장이 탐내는 것은 현대그룹의 알짜 회사인 현대상선이라는 것이다. 현대엘리베이터가 지분 매집 대상이 된 것은 이 회사가 지주 회사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현대그룹은 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의 지분 15.16%를 갖고 있으며 현대상선이 다시 현대아산(40%)과 현대증권(17%) 현대택배(30%) 등을 지배하는 구조다.

결국 현대그룹의 향방은 국민주 발행을 둘러싸고 양측이 얼마나 많은 실탄을 동원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현회장측으로서는 국민들의 성원이 관건이다. 현대아산이 맡고 있는 대북 사업의 미래도 국민의 호응에 달려 있다. 이미 KCC측은 계열사를 철저하게 수익성 위주로 경영할 방침이라며, 대북 사업을 정부로 넘길 의사를 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폭발력 탓인지 대선 자금 수사도 한 주 내내 사람들의 눈과 귀를 붙잡았다. 특히 구본무 (주)LG 회장이 출국 금지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재계의 긴장도는 극에 달했다. 재계 관계자들은, LG가 수사에 협조하지 않고 있어 자백을 유도하기 위한 단순 압박용이거나 아니면 불법 자금 조성 및 전달 과정에서 구회장이 개입한 흔적을 검찰이 포착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관측하고 있다. LG는 말할 것도 없지만, 구조조정본부장급 인사가 출국 금지를 당한 삼성과 현대자동차도 예민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이 가장 우려하는 상황은 총수들이 검찰 포토라인에 세워지는 것이다.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은 역사 바로세우기 차원에서 비자금을 들춰내었고 이때 대부분의 총수들이 검찰에 줄소환을 당했었다.

대선 자금 수사와 현대그룹 사건은 지난 주 굵직한 경제 뉴스들을 단숨에 집어삼켰다. 오랫동안 고대해온 한국과 미국·일본 등 국내외 경기 회복 관련 소식도, 집값 하락세가 수도권과 지방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의 국회 비준안 통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뉴스도 별로 주목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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