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봉급 인상의 빛과 그림자
  • 장영희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1999.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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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자금 들어 재정에 큰 압박 …명분·합리성 둘러싼 논란 예상
선출직 공무원인 김대중 대통령은 6월 말 중견 공무원들과 대화하면서 이들에게 공무원 봉급을 ‘5년내 중견 기업 수준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은 아무런 구속 없이 지켜질 수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공무원을 부리는 주체(사용자)가 정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공무원 봉급의 원천이 국민이 낸 세금이므로 사용자인 국민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물론 국민 개개인에게 동의를 구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공무원 월급을 올려줄 만한 충분한 명분과 합리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명분과 합리성은 우선 공무원 봉급이 민간 기업 수준보다 낮다는 점이 확인되어야 한다. 행정자치부는 공무원 봉급 수준을 90년 이래 국영 기업체와 비교해 오다가 지난해 비교 잣대를 민간 기업으로 바꾸어 조사했다. 선진 외국이 그렇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조사 대상은 대기업 1백70개(상시 근로자 5백명 이상, 매출액 5백대 기업 중에서 선정)와 중소기업 2백개(중소기업기본법 대상 가운데 종업원 백명 이상 기업 선정)였다. 이 조사에 따르면, 공무원(행정직) 봉급 수준은 민간 기업 노동자(사무직)의 87.2%(접근율)에 그쳤다(57쪽 표 참조). 민간 기업에서도 봉급 수준이 높은 대기업 1백70개와 비교했을 때는 접근율이 70.4%로 더 떨어졌다. 그러나 중소기업과는 모든 직급에서 대등했다. 정부는 중소기업과 비교한 수치는 따로 제시하지 않았는데, 이것이 처우 개선 전략상 유리하다고 보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공무원 봉급 수준을 민간의 어느 수준에 맞출 것인지가 거센 논란을 부를 수밖에 없다. 민간 기업은 그야말로 봉급 수준이 천차 만별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은 비교 잣대를 ‘중견 기업’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중견 기업에 대한 정의는 모호하기 짝이 없다. 한 중앙 부처 공무원은 “대통령이 중견 기업이라고 말한 것은, 공무원들이 보기에 ‘섭섭하지 않은 수준’을 의미했던 것 같다. 수준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에 연동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그렇다고 재벌 그룹 수준에 맞추겠다고 하기도 어렵지 않았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어림잡아도 매년 1조원 이상 소요

공무원 급여 정책을 맡고 있는 중앙인사위원회(인사위)는 7월 초부터 ‘보수 현실화 5개년 계획’ 마련에 착수했다. 인사위 김성렬 급여정책과장은 “더 고민해야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민간 기업 전체 평균치가 적절한 비교 잣대로 판단된다”라고 밝혔다. 공무원이나 민간 기업이나 임금 구조가 매우 복잡한 상황에서 직급 별로 준거 집단이 될 모델을 만들어야 하므로 5개년 계획을 짜는 일은 한마디로 고등 수학을 푸는 일일 것이다.

8월 말께 5개년 계획이 성안되면 분명해지겠지만 정부는 우선 2000년 초부터 월급을 일정 부분 올리고 당해 연도 민간 기업의 봉급 인상률 추이를 보아서 하반기에 그 부족분(+α)을 보전해 갈 계획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재정이 필요할까. 98년 공무원과 민간 기업의 임금 접근율은 87.2%. 그렇다면 5년 후 공무원과 민간의 월급 수준을 같게 하려면 단순히 현재 시점의 격차를 메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5년 동안 인상될 민간 기업의 임금을 감안해야 한다.

내년 이후 민간의 월급 인상률을 알 수 없지만, 이것을 가령 5%라고 가정하고 매년 균등하게 올리는 방법을 택한다면 다음과 같은 추정이 가능하다. 5년 동안 매년 5%에 3%를 더한 8% 정도를 올리면 민간과 비슷한 수준이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만약 민간 기업 평균치가 아닌 대기업 수준에 연동한다면 어떻게 될까. 임금 인상률 5%에 매년 8%를 더한 13%가 되어야 한다.

올해 예산에 잡힌 공무원 인건비 규모는 지난해보다 5.7% 줄어든 13조6천백65억원. 따라서 공무원 월급을 2000년부터 5년 동안 매년 8∼13%를 올린다면 대충 계산해도 해마다 1조원 이상이 필요하다(물론 민간의 임금 인상률이 5%보다 적게 나타난다면 증액분이 훨씬 적어지겠지만, 경기가 회복하는 추세로 보아서는 그럴 공산이 크지 않다).

이것이 가능할 일일까. 국가 정책을 숫자로 표현한 예산에서 우선 순위는 선택의 문제다. 정부가 국가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공무원 봉급을 올리는 문제라고 보고 밀어붙인다면 예산 편성이 어려울 것은 없다. 우선 순위가 낮다고 보는 다른 예산을 잘라내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재정 전문가들은 “공무원 보수 현실화가 우선 순위가 높다는 점에 동의하기 어렵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2000년부터 해마다 1조원을 증액하는 일은 재정에 엄청난 압박을 줄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한다.

이미 예산 당국인 기획예산처는 내년 재정 사정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경기 회복에도 불구하고 내년도 재정 여건이 어려운 것은, 공기업 주식 매각 등을 통한 세외 수입이 올해보다 크게 줄어드는 반면 정부가 금융 구조 조정을 위해 발행한 채권(64조원)에 대한 이자가 내년 1월부터 발생하는 등 세입·세출 불균형이 심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들어올 돈보다 나갈 돈이 더 많은 상태에서 공무원 보수 현실화에 필요한 뭉텅이 돈을 마련해야 하는 처지이다. “실업자도 많은데…” 반감도 만만치 않아

재정이 감당하기 어렵다면 중·하위직 공무원의 봉급만이라도 올리자는 주장이 나온다.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불만을 집중적으로 터뜨린 집단이 중·하위직이므로 이들을 다독거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정부와 여당은 올 하반기에 가계 지원(안정)비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부활된 체력 단련비를 절반(본봉의 125%)은 주기로 확정했지만, 고위직 공무원들이 받는 것은 부활 취지에 어긋난다는 공직 사회 안팎의 여론이 들끓어 자율 결의를 통해 반납시킨 예가 있다.

그러나 이런 무리수를 둔다고 해도 절약할 수 있는 돈은 얼마 안되므로 실익이 없다. 4급 이하 공무원이 전체 공무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0%를 넘기 때문이다. 여론이 그토록 장·차관의 팔을 비틀었지만, 가계 지원비 반납으로 인한 절약분은 21억원밖에 안된다.

더구나 고위직이라고 해서 제외하는 것은 형평성을 깨는 일이다. 가뜩이나 3급 이상 고위 공무원들은 98년과 99년에 삭감된 월급이 대부분 복원되지 않은 상태다. 특히 장·차관들의 기말 수당(상여금) 복원율은 절반밖에 안된다. 원래 고정급인 장관(급)의 연봉은 4천9백67만원이지만, 현재 5.5%가 깎여 4천7백만원이 못된다(가족 수당·직급 보조비 등 연봉외 급여 제외). 웬만한 대기업 사장의 연봉이 1억원이 넘는 것과 좋은 비교가 된다.

흥미로운 것은 외국 장관과 비교할 때도 한참 처진다는 사실이다. 싱가포르의 장관 보수는 한국 장관의 무려 59배나 되며 영국도 12.6배이다. 일본과 미국 장관도 7배 수준. 봉급만 보면 장관 자리의 매력은 없다. 반면 4급 이하 공무원들은 98년에 깎인 기말 수당(상여금)을 올해 다시 받기 시작했고 올 하반기에 절반의 가계 지원비를 받을 것이기 때문에 99년 말 월급 수준은 98년과 비교할 때 거의 복원된 것이나 마찬가지다(5% 삭감).

다음과 같은 ‘삼단 논법’도 가능하다. 3급 이상 고위직일수록 민간 기업과 격차가 크다. 대기업과 비교할 때는 절반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반면 하위직일수록 격차가 좁아진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공무원 봉급 인상의 가장 중요한 이유가 민간과 격차를 줄이는 것이라면 상위직 봉급을 더 많이 올려야 한다는, 합리적이지만 국민 정서로는 용납하기 어려운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공무원들은 98년과 99년 두 해 동안 거푸 봉급이 깎여 고통을 겪었다. 이제 경기가 회복되어 민간 기업 노동자의 봉급이 오르고 있으니 공무원도 올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공무원 봉급 인상에 대해서는 반감이 만만치 않다. 우선 나오는 것이 시기 상조론. 한 중소기업 경영자는 “올해 민간 기업의 월급이 IMF 체제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는 노동부 통계가 있지만, 이것은 평균 수준이 그렇다는 것이고 여전히 업종·기업 규모 별로 명암이 뚜렷하다”라고 주장했다. 생계가 어려운 박봉 노동자와 실업자가 많은 상태에서 공무원 봉급부터 올리는 것은 국민 통합을 해친다는 지적이다.

과연 공무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처우 수준이 낮은가 하는 원초적 의문도 꼬리를 문다. 한 국책 연구기관의 연구위원은 “정말 봉급이 적어 생계에 위협을 받는다면 퇴직하는 공무원이 속출해야 말이 된다. 그런데 공무원 한 사람만 퇴직해도 언론에 오르내리는 판 아니냐. 공무원 시험 경쟁도 치열하다. 이런 현상은 공무원이 괜찮은 직업이라는 얘기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철밥통 신화가 깨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민간과 비교할 수도 없이 고용 안정성이 높으며, 상대적으로 노동 강도가 덜하다는 것도 이점으로 꼽았다. 설사 금전적(월급) 혜택이 덜하더라도 이런 비금전적 혜택이 불이익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것이다.

물론 공무원 봉급 인상을 전향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한 경제학자는 “우수한 공무원은 국가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다. 국민들이 질 높은 공공 서비스를 받고 싶고 부패에 연루시키지 않으려면 이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하는 것이 옳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경제학자는 성과·공헌도·능력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제도적 장치를 봉급 인상과 동시에 시행하지 않으면 설득력이 없다는 엄격한 조건을 달았다. 눈이 핑핑 돌 정도로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과 빈둥빈둥하는 공무원을 같이 대접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정권은 대통령 아닌 국민 손에

그런데 정부는 당초 올 연말부터 공무원의 근무 성적을 점수화해 등급에 따라 상여금을 차등 지급하기로 했던 성과 상여금 제도를 내년에 도입하겠다고 미루었다. 시기를 늦출 뿐 아니라 성과 상여금의 차등 폭을 줄이고 대상도 조정할 작정이다. 한마디로 공직 사회에 경쟁 바람을 불어넣겠다는 개혁 의지가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봉급 인상은 좋지만, 연금 제도 개혁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비슷한 맥락이다. OB(퇴직) 때 받게 되는 지나친 혜택의 일부를 YB(현직) 때로 돌리는 것이 공무원이나 국민이나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대안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래저래 올 정기 국회가 열릴 9월 무렵, 공무원 보수 현실화 5개년 계획이 발표되면 논란이 분분할 것이다. 내년 4월 총선 때 공무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 아니냐는 정치적 의도를 문제 삼지 않더라도 적지 않은 문제를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김영삼 정부는 교육과 과학기술 예산 등을 재정 사정이야 어떠하든 몇년에 몇%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식의 무리수를 두었다. 이에 따른 폐해는 자못 심각했다. 공무원 봉급 수준을 5년 내에 민간과 맞추겠다는 것도 똑같은 문제를 낳을 수 있다. 5년 동안 손댈 수 없는 ‘성역 예산’이 되는 것이다. 현재는 가뜩이나 구조 조정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있는 터라 김영삼 정부 때보다 재정 사정이 훨씬 좋지 않다.

분명한 것은 공무원 봉급을 인상할 결정권이 대통령이 아닌 국민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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