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건설업, ‘월북’이 살길
  • 이문재 기자 (moon@sisapress.com)
  • 승인 2000.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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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들 공사 물량 부족 등 3중고에 시달려…북한 특수로 활로 모색
지난 4월 남북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발표가 나온 뒤부터 ‘북한 특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북한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대규모 농업 생산 시설 구축과 함께 철도·도로·발전소 등 사회간접자본(SOC)을 갖추는 일이라는 분석에 따라, 건설업이 북한 특수의 가장 큰 수혜자로 지목되었다.

한국 건설업체 처지에서 북한은 단지 ‘기회의 땅’만이 아니라 ‘위기의 돌파구’이기도 하다. 국내 건설업 종사자들의 말에 따르면, 건설 경기는 IMF 시절과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여전히 공사 물량 부족·낮은 이익률·유동성 부족이라는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먼저 공사 물량을 보자. 1999년 건설업계의 총수주액은 51조 1천억원인데, 이는 1997년의 70%이다. 해외 공사의 경우도 다를 바 없다. 올해 상반기 수주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57.5%에 그친 것으로 집계되었다. 그동안 한국 건설업계의 텃밭이던 중동 지역에서 수주량이 줄어든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다.

게다가 공사를 수주한다고 해서 거기에서 이익을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올해 들어 정부는 조달청이 발주하는 100억원 규모 이상의 공사 낙찰률을 지난해의 82~83% 수준에서 올해 73%로 낮추었다. 낙찰률이 낮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공사 이익률이 낮아짐을 의미한다(낙찰률 73%인 공사를 수주할 경우 이익을 10% 이상 남기기는 불가능하다). 게다가 한정된 물량을 놓고 많은 업체가 몰리는 바람에, 손해를 보면서까지 수주하려고 덤핑 경쟁이 벌어지기 일쑤다. 대다수 건설업체 주가, 액면가 이하로 추락

공사 물량이 줄고 공사에서 이익을 내기도 어려워지자 건설업체들은 주택 사업에서 활로를 개척하려고 했다. 그러나 정부가 준농림지제도를 실질적으로 폐지하는 바람에 수도권에서 아파트 부지를 찾기 어려워졌다. 수도권 이외 지역은 주택 보급률이 거의 100%에 육박해 아파트를 새로 짓는다고 하더라도 팔기가 쉽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5월 말 현대건설이 현금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보도되자, 건설업계 전반에 유동성 위기가 몰아닥쳤다. 금융권에서는 신규 대출을 꺼리고, 대출할 경우에도 높은 금리를 요구했다. 전통적으로 건설업종은 차입금 비중이 높다. 이렇듯 높은 금융 비융은 건설업계에 큰 부담을 지우고 있다.

건설업계의 이런 어려운 상황은 주식 시장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다른 업종의 주가가 전부 오르는데도 건설주 주가는 내려가는 현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급기야는 현대건설 같은 업계 대표주가 액면가 이하로 추락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동안 한국 경제의 견인차 구실을 했던 건설 업계로서는 수모가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처한 건설업계에 북한 특수는 단비가 되어주는 듯 싶었다. 북한 특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짐에 따라 건설업체의 주가도 따라서 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남북 두 정상의 역사적인 회동이 이루어지자 건설업체에 몰렸던 기대는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정상회담이 열리기 하루 전인 6월12일까지 강한 상승세를 타던 건설업체 주가는 정상회담 직후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해, 결국 북한 특수 기대가 일기 전의 상태로 되돌아가고 말았다(68쪽 표 참조).

증권 전문가들은 건설주가 다시 액면가 수준으로 곤두박질 친 원인으로 북한 개발 자금 문제를 꼽는다. 북한 특수를 떠받칠 재원을 어디서 마련할지가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지난 4월 이기호 경제수석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이 북한에 투자할 수 있는 금액은 모두 8천9백억원 가량. 70조원 규모에 달하는 북한의 사회간접자본 건설 비용을 감당하기에는 ‘새발의 피’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막대한 재원을 어디에서 조달할 것인가. 현재 가장 많이 거론되고 있는 것은 북·일 관계를 정상화하는 단계에서 일본이 북한에 지불할 전쟁 배상금이다. 그러나 약 50억 달러로 예상되는 전쟁 배상금을 일본 정부가 조건을 달지 않고 내놓을 리 없다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일본 기업이 북한 개발에 참여하는 것을 전제로 배상금을 지불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관측한다. 자금 조달 방법이 관건

물론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 등 국제 금융기관을 통해 조달하는 방법도 거론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방법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북한이 국제통화기금이나 세계은행에서 자금을 빌리기 위해서는, 먼저 북·미 간에 수교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 관계를 정상화한 뒤 국제통화기금에 가입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에 가입하려면 자국의 경제 통계를 투명하게 드러내야 하는데, 북한이 과연 그렇게 하겠느냐는 것이 전문가들의 회의론이다.

사회간접자본 사업에서 종종 사용되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 기법을 동원해 투자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도 제기되고 있다. 전경련 손병두 부회장은 지난 4월12일 기자회견에서 북한 사회간접자본 사업은 프로젝트 파이낸싱 방법으로 투자자금 조달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프로젝트 파이낸싱의 핵심은 얼마나 수익을 낼 수 있느냐이다. 현재 북한 사회간접자본 사업에서 수익성이 가장 확실한 것은 경의선 복원 사업이다.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이미 거론된 경의선(서울~신의주) 복원은, 남북 경제 협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가장 먼저 실시될 사업으로 꼽히고 있다. 경의선이 복원되어 남북을 잇는 물류 통로 구실을 톡톡히 해낸다면, 경의선 이용료 수입은 상당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현재 건설업체들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사업이다. 대한건설협회는 경의선 복원에 2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한다.

금강산 개발과 서해안 공단 조성에 뛰어든 현대건설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설업체들은 현재까지는 북한 사회간접자본 사업에 대해 기대하면서도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직까지는 북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면서 어떤 형태로 북한 사회간접자본 사업에 뛰어드는 것이 유리할지 살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국내 건설업체들이 북한 사회간접자본 사업에 뛰어들 수 있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 먼저 업체들이 연합해 컨소시엄을 이루는 것이다. 현대가 추진하고 있는 서해안 공단의 경우, 삼성·LG 등 대형 건설업체들과 함께 진출한다는 소문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해당 업체는 이 소문을 부인하고 있다).

또 다른 방식으로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경수로 사업 형태가 있다. 미국이나 일본이 자본을 대며 북한 사회간접자본 사업을 주도할 경우 이 방식을 택할 것이 유력하다고 보는 전문가도 있다. 특히 일본이 북한에 전쟁 배상금을 지불하면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식으로 사업을 꾸려갈 가능성이 높다. 전쟁 배상금을 기금화해 일본이 사업 주체가 되고 한국 건설업체는 단순 시공업체가 되는 것이다. 이럴 경우, 한국 건설업체에 돌아올 ‘과실’은 한국 건설업의 위기를 타개하기에 부족하다는 전망이다.

결국 북한 진출이 한국 건설업계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느냐 없느냐 여부는 북한 사회간접자본 사업이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느냐에 달려 있다. 대북 사업을 위해 외국 자본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사업을 누가 주도하느냐에 따라 사업 형태는 충분히 바뀔 수 있다. 여기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 건설업계는 정부가 먼저 나서서 자금 조달의 실마리를 풀고, 북한에 진출하는 기업에 투자세액 공제 혜택 등을 주어 제도적으로 지원해 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북한에 진출하려는 민간 기업의 의욕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결합한다면, 위기에 처한 한국 건설업계에 북한이 ‘희망봉’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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