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폰에서 부적까지 … 천태만상 ‘공짜 마케팅’
  • 蘇成玟 기자 ()
  • 승인 1999.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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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현금·부적 등 ‘미끼’ 다양…‘대박’터뜨려 IMF 위기 넘은 기업 많아…‘제 살 깎기 경쟁’ 자아 비판 나와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담이 있다. 그 유래는 19세기 구한말로 거슬러올라간다. 조선 땅을 장악할 야심을 키우던 일본 상인들은 조선인들에게 다양한 생활 필수품을 외상으로 뿌렸다. 그 가운데에는 빨랫비누도 포함되어 있었다.

잿물을 이용한 재래식 세탁법밖에 모르던 조선인들은 세탁력이 뛰어난 양식 비누에 매료되었고, 이를 ‘양잿물’이라 부르며 너도나도 받아 썼다. 그같은 현실을 한탄한 선각자들이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고 자조한 것이다. 양잿물은 마시면 죽는 독극물이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는가. 공짜를 표방하는 요즘의 판촉 광고도 잘 살펴보면 하나같이 ‘∼하면’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 예외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속담처럼, 같은 조건이라면 생기는 것이 더 많은 쪽으로 눈길이 가는 것이 사람 심리이다.

현대판 공짜는 무척 다양하다. 경품·쿠폰·샘플·끼워 팔기·보상 판매·프리퀀시(여러 번 이용하면 한 번은 무료) 등 ‘공짜의 탈을 쓴’ 판촉 방식도 가지가지이다.
공짜 경쟁, 이동통신 업계가 가장 치열

요즘 공짜 경쟁이 가장 치열한 분야는 무어니 무어니 해도 이동 통신 업계. 엄청난 광고 물량을 쏟아내는 만큼, 이동 통신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공짜’‘무료’일 정도이다. 이동 통신 회사들은 비싼 돈 주고 사들인 휴대폰을 통신 가입자에게 싼 값에 공급하다 정부로부터 제재를 당하자, 4월부터는 방향을 공짜 경쟁으로 선회했다.

먼저 치고 나온 곳은 신세기통신(017). 신세기통신은 지난 4월1일부터 함께 가입한 4명 범위 내에서, 하루에 무려 9시간 6분이나 전화를 공짜로 쓸 수 있다고 선전했다. 이는 동시 가입자 2명에 한하여 무료 통화를 보장하던 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특혜’였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현재 다른 업체들도 엇비슷한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지난해 말부터 화제를 몰고다니는 증권업계도 공짜 마케팅이 치열한 곳. 증시가 활황세를 보이면서 사이버 거래 고객을 유치하려는 경쟁이 불꽃을 튀기고 있다. 증권사로서도 직원 인건비가 절감되는 데다 거래 회전율도 높아 사이버 거래를 적극 장려하는 형편이다.

세종증권은 주식 예탁 계좌에 천만원 이상을 맡긴 고객들에게 이동 중에도 거래할 수 있는 통신 단말기 ‘에어 포스트’를 무료로 제공한다. 한양증권은 거래 고객에게 월 사용료 4만5천원만 내면 최신형 PC를 무료로 빌려주고, 인터넷 서비스 가입비까지 대신 내준다. 동양증권은 5천만원 이상 예탁한 고객들에게 미리 PC나 노트북을 내어 주고, 석달 동안 그 제품 가격에 해당하는 매매 수수료 실적을 올릴 경우 제품값을 받지 않는다.

소비자만 공짜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공짜 마케팅을 시행하는 업체들도 비용을 절감하려고 공짜를 ‘밝힌다’. 이들은 서로 연합해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노린다.

외식 업체들이 벌이고 있는 아이디어 경쟁에서 ‘이오코퍼레이션’(이오)의 공짜 마케팅은 더욱 도드라진다. 이오가 운영하는 식당 체인점 ‘토니 로마스’는 월요일마다 김영사가 발간한 책을 들고 오는 고객들에게 5천4백원짜리 디저트 ‘머드 파이’를 무료로 제공한다. 토니로마스는 김영사가 무료로 공급하는 책들을 식당 서가에 비치할 뿐만 아니라, 각종 인쇄물도 공짜로 제공받는다.

이오가 운영하는 또 다른 외식 브랜드 업체인 ‘스파게띠아’ 대학로점도 5월26일부터 인근 동숭아트센터에서 영화를 조조 관람한 손님들에게 9천원짜리 점심 쿠폰을 무료로 주고 있다. 영화 입장표보다 더 값비싼 공짜 점심을 즐기는 손님들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서비스를 받는 셈이다.인터넷에도 ‘공짜’ 지천

토니로마스는 매출이 떨어지는 월요일에 공짜 디저트를 미끼로 손님을 끌어들일 수 있고, 스파게띠아는 테이블당 1장짜리 쿠폰을 주는 것이어서 여러 사람이 함께 쿠폰을 들고 올 경우 추가 매출을 올릴 수 있다. 공짜 음식을 즐기는 손님에게만 좋은 일이 아닌 것이다.

이처럼 업체들끼리 제휴하는 ‘타이업(Tie-up)’ 방식은 최근 분야를 가리지 않고 확대되는 추세다. 대표적인 예가 최근 데이콤·현주컴퓨터·인텔·외환카드 네 회사가 연합한 공동 마케팅. 데이콤이 운영하는 PC통신 천리안에 가입한 고객은, 3년 동안 한 달에 4만2천원만 내면 현주컴퓨터가 제공하는 최신형 PC를 제공받아 통신과 인터넷을 무한정 사용할 수 있다. 인텔은 하드웨어의 심장 격인 CPU를 현주컴퓨터에 싸게 공급하고, 외환카드는 할부 결제하는 통신 대금의 수수료를 3% 할인해 준다.

데이콤측에 따르면 지난 5월13일 처음 이 판촉 방식을 도입한 이후 반응이 기대 이상으로 좋아, 현재 주문된 물량을 미처 소화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이다. PC통신 사용료를 한 달에 4만원 이상 내던 이용자라면 최신형 PC 한 대를 공짜로 받는 셈이어서 반응이 좋을 수밖에 없다.

‘정보의 바다’라 불리는 인터넷을 잘 활용하면 짭짤한 공짜를 많이 건질 수 있다. 야후·라이코스·익사이트 등 잘 알려진 검색 엔진에서 키워드로 ‘셰어웨어(shareware)’를 치면 공짜 소프트웨어 사이트 수십여 개가 동시에 떠오른다. 이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사이트는 ‘투카우스(www.tucows.com).’

셰어웨어에서 얻을 수 있는 소프트웨어들은 대부분 개발한 지 얼마 안되어 성능을 시험할 목적으로 올려놓은 제품이거나, 정품에 비해 사용 기능이 제한된 판촉용 제품들이다. 하지만 불법 복제 시비에 휘말릴 소지도 없고, 제품의 장단점을 미리 파악할 수 있어 꽤 쓸 만하다.
가계 소득 준 소비자들 몰려

벤처 기업 골드뱅크는 소비자들이 공짜를 좋아하는 심리를 응용하여 ‘대박’을 터뜨렸다. 자사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실린 광고를 한 번 클릭할 때마다 조회한 회원의 계좌에 현금을 적립해 주는 아이디어가 먹혀든 것. 덕분에 코스닥에 상장된 이 회사의 주가는 수십 배 폭등했다.

근래 들어 다종 다양한 공짜 마케팅이 붐을 이루게 된 이유로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 이후 극도로 위축된 가계 소비 심리를 들 수 있다. 상대적으로 기업들 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공짜 마케팅을 활용해 최악의 상황에서 맞은 IMF 위기를 잘 극복한 회사들이 있다. 우선 97년 부도를 낸 해태유통. 유통 업체가 부도를 낸다는 것은 거의 치명적이다. 일단 어음을 발행하기 힘들어 상품을 원활하게 공급받기 힘들다. 또 부도 회사라는 이미지 때문에 매장을 찾는 손님들의 발걸음도 뜸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해태유통은 98년을 버텨냈고 올해 들어서는 한자릿수이기는 하지만 매출 신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해태유통이 그같은 저력을 과시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우선 해태유통은 툭하면 69개 슈퍼 체인점 문앞에다 ‘공짜’에 관한 공고문을 내걸었다. 그 종류는 크리스마스 케이크·신년 행운 부적·입춘대길(立春大吉) 붓글씨 등 다양했다. 고객을 매장에 끌어들이려고 원가 이하로 내놓는 ‘미끼 상품(로스 리더)’을 선정할 때에도 설문 조사를 통해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골랐다.

공짜 마케팅 다양하면 선진국?

해태유통은 지난달 슈퍼 체인 업계에서는 최초로 현금 5천만원을 내건 경품 응모권을 뿌린 데 이어, 오는 6월11일부터는 ‘즉석 복권’을 배포한다. 소비자들이 긁으면 일단 무엇이든 타갈 수 있는 복권이다. 가벼운 생필품이 나타나면 즉석에서 받을 수 있지만, 소형 승용차나 대형 냉장고·세탁기 등은 ‘퍼즐 맞추기’ 식으로 몇 차례에 걸쳐 어울리는 짝을 찾아야 한다.

스키장·골프장을 운영하는 지산 포레스트 리조트(지산)도 공짜 마케팅을 활용해 위기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한 경우. 지산은 1인 1백50만원, 5인 3백만원 보증금만 내면 스키장에서 5년간 리프트 사용료·스키 장비 대여료·강습비를 모두 거저 이용할 수 있다고 선전했다. 결과는 대성공. 석달 만에 3천 계좌가 접수되어 90억원을 마련했다. 또 평일에 골프장을 이용할 수 있는 회원권을 1천5백만∼2천만 원에 분양해, 한 달 만에 6백 계좌가 접수되어 백억원을 챙겼다. 그 결과 이 회사는 자금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반면 적자에 허덕이면서도 공짜 마케팅을 멈추지 않는 이동통신 업체들에게는 ‘제 살 깎기 경쟁’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해태유통 양성진 과장(판촉홍보팀)의 이야기는 그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짜 행사를 했다가 손해를 봤다면 그런 행사는 하면 안된다. 들어간 비용 이상으로 매출을 늘려야 시행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유재 교수(서울대·경영학)는 공짜 마케팅이 다양해지는 현상을 선진국에 가까워지는 모습이라고 풀이하면서도, 그 자체가 선진적인 마케팅 기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즉 아직 ‘무늬만 선진국’이라는 뜻이다. 다양한 공짜 마케팅이 존재하지만, 광고·영업 등 전반적인 판촉 행위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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