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모범생 ‘메디슨’, 위기냐 도약이냐
  • 朴在權 기자 ()
  • 승인 1999.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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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회사 급증·영업 환경 놓고 ‘위기론·발전론’ 대립 가열
대동여관 203호. 메디슨 사람들은 서울 홍릉에 있는 이 여관방을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85년 7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원 7명이 초음파 진단기를 만들겠다고 의기 투합한 메디슨의 산실이 바로 이 어둠침침한 여관방이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14년이 흐른 지금 메디슨은 벤처 기업의 모델로 우뚝 섰다. 이들이 개발한 초음파 진단기는 가격·품질 면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했다. 창사 이래 해마다 50%씩 성장해 왔고, 한국 경제가 최악의 위기를 맞은 지난해에도 매출액은 55.15%, 당기 순이익은 20%나 늘었다. 올해에도 메디슨은 매출액은 34%, 당기 순이익은 83% 늘 것으로 본다.

당기 순이익 83% 늘었는데도 주가 요지 부동

그런데도 메디슨에 대한 증시의 반응은 차갑다. 지난해 9월 종합주가지수가 306이었을 때 메디슨 주가는 1만2천7백원이었다. 그런데 최근 종합주가지수가 600을 넘어섰는데도, 메디슨 주가는 여전히 1만3천원대에서 게걸음을 하고 있다. 외국인 지분율도 68%에서 60% 이하로 떨어졌다. 게다가 최근 SG증권은 ‘메디슨 주식을 팔라’는 이례적인 보고서를 내놓아 파장이 일파 만파로 확산되고 있다(<시사저널> 제480호 참조). 외국인들이 연일 매도세로 돌아서 주가 약세로 골치를 앓는 메디슨으로서는 이만저만한 충격이 아니었다. 1월14일 오후 갑자기 서울 63빌딩에서 ‘메디슨 투자 설명회’를 연 것도 이같은 이상 기류를 잠재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날 투자 설명회장에서는 좀체로 보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기업의 경영 실적을 홍보하는 잔치 분위기로 치러지기는커녕 외국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긴장된 분위기가 감돌았다. 1시간30분에 걸친 설명회가 끝나고 난 뒤, 참석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애널리스트들의 질문이 지나쳤다는 견해가 있었는가 하면, 이민화 회장의 답변이 핵심을 비켜갔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국내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이회장이 솔직한 답변을 피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메디슨의 자회사가 몇 개냐는 단순한 질문에 즉답을 하지 않은 것은 총수답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분위기는 이튿날 주식 시장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외국인 투자가들은 워버그·쟈딘플레밍·CSFB·메릴린치 등을 통해 매도 공세에 나섰다. 국내 투자가들이 매수함으로써 주가는 4백원 하락하고 마감되었지만, 시장 분위기를 바꾸어 보려던 메디슨측 의도는 일단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주가가 기업의 경영 상태를 알려 주는 정확한 척도는 아니다. 게다가 메디슨 주식은 10분의 1로 액면 분할된 상태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13만원대에 이르는 비싼 주식이다. 국내 증시에서 몇 번째 손가락에 꼽히는 우량 주식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 회사가 해마다 놀라운 경영 실적을 보이는 것을 감안하면 저평가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메디슨 주가가 1만4천원을 놓고 턱걸이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증시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꼽는 것은 영업 환경 악화이다. 환율이 절상됨으로 인해 수출이 어려워지리라고 보는 것이다. 메디슨의 지난해 매출액에서 수출이 차지한 비중은 70.8%였다. 올해는 그 비중이 더 늘어날 것이다. 메디슨의 주력 상품인 초음파 진단기의 경우, 내수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에 있다. 따라서 메디슨은 수출에서 활로를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환율이 1천2백원 아래로 떨어진 상태이다. 수출 업체들은 너나없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메디슨도 예외일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메디슨 이승우 사장은 “크게 걱정할 것이 없다”라고 잘라 말한다. 메디슨은 올해 매출 목표를 정할 때 이미 환율을 1천 1백원∼1천1백50원으로 가정했다는 것이다.

이사장은 오히려 일본 엔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더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세계 시장에서 팔리는 초음파 진단기가 대부분 일본에서 생산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사장은 그것도 걱정없다는 태도다. 원/엔 환율이 한때 8 대 1까지 갔었는데, 지금은 10 대 1 정도로 회복되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세계 시장에서 메디슨 제품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삼성증권 하정헌 연구위원도 “메디슨의 목표치가 다소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불가능하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거들었다. 메디슨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최근 급증하는 자회사들이다. 메디슨은 이 회사들이 메디슨 제품의 판매법인이거나, 관련 의료기기 생산 업체라는 점을 강조한다.‘관련 다각화’이기 때문에, 오히려 상승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메디슨은 이들과 힘을 합쳐 20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보건·의료 분야 전자 상거래 시장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자회사 설립은 벤처 기업이 살아남는 방법”

메디슨이 이처럼 다각화를 추진하는 까닭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다양한 의료기 업체를 만들어 상승 효과를 극대화하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초음파 진단기에만 매달리다가는 자칫 위험해질 수도 있다고 본다. 김영모 상무는 초음파 진단기만 생산하는 미국의 ATL 사가 필립스에 넘어갔고, ACUSON 사 역시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메디슨은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다각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해결하는 것이 관련 다각화인 셈이다.

이를 놓고 의견이 갈린다. 대우증권 이종승 연구위원은 메디슨을 이해한다는 입장이다. “확실한 기술력을 가진 벤처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하나는 메디슨처럼 독자적인 생산·판매 망을 구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국적 기업의 우산 아래 들어가는 것이다. 메디슨이 다국적 기업의 자회사로 전락하는 것을 거부한다면, 해법은 지금 추진하는 방법이 될 수밖에 없다.”

반면 자회사 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자회사 수가 많아지면 모기업까지 부실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아직까지 메디슨의 자회사 가운데 효자 노릇을 하는 업체는 없다. 자기 공명 영상 진단 장치(MRI)와 X선 촬영기 등을 생산하고 있지만, 이것 역시 메디슨에 흑자를 안겨 주지는 못한다. 적어도 현시점에서는 초음파 진단기가 메디슨과 관계사들을 먹여 살리고 있는 셈이다.

이 점은 메디슨도 인정한다. 그러나 메디슨은 올해를 고비로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동안은 자회사에 뿌리는 돈이 더 많았지만, 올해부터는 수확을 거두어들일 것으로 내다본다. 이렇게 되면 자회사 증가에 따른 불안감도 자연스레 해소될 것이라고 메디슨은 주장한다.
이민화 회장은 왜 신주 인수권 팔아치웠나

메디슨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소는 이민화 회장 자신이다. 지난해 7월 이회장은 사장 직을 이승우 부사장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대외 업무에 치중해 왔다. 벤처기업협회 회장·규제개혁위원회 위원·청와대 경제자문위원·한국의료용구공업협동조합 이사 등으로 활발하게 사회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회장은 “벤처업계를 활성화하고 규제를 혁파하는 것이 메디슨에도 궁극적으로 보탬이 된다”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다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창업자가 대외 업무에 치중하는 기업치고 잘 되는 곳을 못 보았다”라고 말했고, 다른 증권사 관계자도 “2∼3년 전만 해도 이회장은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라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회장이 대외적으로 보폭을 넓히는 것과 메디슨에 대한 지분율을 낮춘 것을 결부해 해석하기도 한다. 지난해 10월 메디슨이 유상 증자를 단행할 때, 이회장은 신주 인수권을 팔아치웠다. 지분율이 5.38%에서 4.69%로 줄어 들었다. “돈이 없는데 어떻게 증자에 참여하느냐”라고 이회장은 반문했지만, 증권가에서는 이에 대해 여전히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고 있다.

현재 메디슨과 증시 전문가들 사이에는 미묘한 시각 차이가 존재한다. 메디슨이 아무리 놀라운 경영 성과를 내놓아도, 시장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안한 눈초리로 메디슨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 과연 메디슨이 GE·지멘스·도시바·알로카 등과 겨루어 산부인과 시장에서 1위 자리를 거머쥘 수 있을까. 또 계속 늘어나는 자회사들을 제대로 관리해서 원하는 만큼 상승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메디슨이 주력 사업에 역량을 결집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확실한 대답을 얻지 못하는 한 메디슨을 둘러싼 논쟁은 쉽게 사그라질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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