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딜 릴레이’ 다음 차례는 누구?
  • 朴在權 기자 ()
  • 승인 1999.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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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 ‘자의 반 타의 반’ 1순위… 이동통신·석유화학은 소리만 요란
어떤 사람은 ‘위대한 결단’이라고 갈채를 보냈고, 어떤 사람은 ‘자유 시장 경제 체제의 죽음’이라며 눈물을 뿌렸다. 반도체 사업 빅딜의 대미를 장식한 김대중 대통령과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청와대 회동은, 이를 지켜본 국민에게 놀라움과 착잡함을 동시에 안겨 준 일대 사건이었다.

또다시 이런 장면을 보기는 힘들겠지만, 재계·정부·채권은행단이 벌이는 구조 조정 드라마는 올해에도 계속될 것이다. 지난해 주제가 금융·자동차·반도체였다면, 올해 주제는 철강·이동통신·석유화학이다. 금융감독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1차 구조 조정 작업이 마무리된 뒤에나 2차 구조 조정 작업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한보철강 매각 작업이 끝나면 철강 산업 구조 조정이 자연스럽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동통신과 석유화학산업도 구조 조정을 추진하기로 되어 있다.

우선 철강산업. 철강은 기계·자동차·건설·가전 산업을 떠받쳐 주는 ‘배후 산업’이다. 따라서 ‘전방 산업’이 어려우면 덩달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장치 산업이기 때문에 수요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도 없다. 불황이 닥친 후 유난히 부도가 많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철근을 생산하는 업체를 예로 들면, 96년 12월 이후 20개사 가운데 12개가 부도를 내거나 워크 아웃을 신청했다. 간신히 살아 남은 업체도 수익이 크게 줄거나 적자로 돌아섰다.

이 때문에 구조 조정 필요성을 업계가 먼저 제기한다. 당장 시급한 것은 부도 회사를 처리하는 일이다. 97년 1월에 부도 난 한보철강은 현재 매각 작업이 진행 중이다. 채권은행단이 인수 희망 업체와 협상을 벌이고 있는데, 동국제강으로 낙착될 공산이 크다. 나머지 부도 업체에 대해서는 전기로 4사(인천제철·동국제강·한국철강·강원산업)가 가교 회사(bridge company)를 설립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철강 구조 조정 3월 이후 본격 추진

하지만 정부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본다. 생산량이 많은 선발 업체들도 설비를 감축해야 생산 과잉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품 별로 보면 철근·H형강·냉연강·특수강이 가장 심각하다. 철근과 H형강은 주로 건설업에 쓰이고, 냉연강은 자동차에 쓰인다. 국제 경기 침체로 인해 건설 수주와 자동차 생산이 30% 이상 줄어들자 이들 제품에 대한 수요도 급감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98년에 철근 내수는 32.3%가 줄었고, 형강은 57.7%, 냉연 강판은 64.8%가 줄었다.

그런데도 기존 업체들은 지난해 설비를 증설했다. 인천제철과 동국제강이 형강 설비를 각각 70만t과 72만t 늘려서 올해 생산 능력은 3백92만t이 되었다. 오는 2월 동국제강 포항 공장이 완공되면 철근 생산량도 40만t이 늘어난다. 냉연 강판도 올해 2월 현대강관이 연산 1백80만t 규모 공장을 완공하고, 포항제철이 생산 규모를 20만t 늘리면서 생산량이 크게 증가할 전망이다. 수요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없는데, 생산 규모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특수강 업체의 구조 조정도 관심거리다. 최근 포철이 창원특수강을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창원특수강은 삼미특수강의 일부를 인수했던 것. 그 밖에 삼미특수강과 기아특수강은 법정 관리를 받고 있는 상태이다. 따라서 올해에는 이들 셋을 하나로 묶어 제3자에게 매각하는 방안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철강산업의 중·장기 수급 전망에 관한 용역 보고서가 나오는 3월 이후 철강산업 구조 조정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철강산업 구조 조정이 물밑에서 소리 없이 진행되는 것과 달리, 이동통신 업계의 구조 조정은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속담을 연상시킨다. 셀룰러 휴대 전화 사업자인 SK텔레콤(011)과 신세기 통신(017), 개인 휴대 전화(PCS) 사업자인 한국통신 프리텔(016)·LG텔레콤(019)·한솔 PCS(018)를 놓고 다양한 짝짓기 시나리오가 무성하다.

확실한 것은 정부가 이동통신 사업을 구조 조정한다는 의지를 분명히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전문가들 사이에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고, 업계에서도 이것을 알고 있다. PCS 업체들이 지난해 외자 유치에 목숨을 걸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외자 유치를 보호막으로 삼으려는 것이었다. LG텔레콤은 영국의 브리티시 텔레콤(BT)으로부터 4억 달러, 한솔PCS는 캐나다의 벨 캐나다 사로부터 2억6천만 달러를 들여왔다. 그리고 최근 한국통신 프리텔은 미국 캘러한 사와 3억8천만 달러 투자 의향서를 체결했다.
이동통신, ‘LG 보상 빅딜론’이 잠복 변수

가입자 수 늘리기 경쟁도 치열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가입자를 가장 많이 늘린 업체는 한국통신 프리텔(2백만3천명)이고, LG텔레콤(1백74만9천명)·SK텔레콤(1백39만6천명)·신세기통신(1백1만5천명)·한솔PCS(99만6천명)가 그 뒤를 이었다. 최근 신세기통신은 이동통신 사업에 뛰어든 지 3년 만에 흑자를 거두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런 상황에서 돌출한 것이 LG그룹 ‘보상 빅딜론’이다. LG가 주력 사업인 반도체 사업을 포기한 만큼, 보상 차원에서 정부가 데이콤 지분 소유 한도(5%) 규제를 풀어 줄지 모른다는 것이다. 현재 LG가 갖고 있는 데이콤 지분은 4.05%. 여기에 우호적인 지분까지 합치면 30%를 넘는다. 한도만 풀리면 바로 데이콤의 최대 주주가 되는 것이다.

현재 데이콤은 제2 시내 전화 사업자인 하나로통신의 최대 주주(10.82%)이다. LG가 데이콤의 최대 주주가 되면 제2 시내 전화 사업까지 차지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다 제3 국제 전화 및 시외 전화 사업자인 온세통신 최대 주주(우호 지분 포함 36%)인 현대그룹과 보상 빅딜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LG그룹은 한국통신과 함께 유·무선 전화 통신 사업자로 우뚝 서게 되고, 통신 분야 구조 조정은 한국통신·LG그룹·SK텔레콤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정부 관계자는 데이콤 지분 한도는 여전히 유효하다면서 보상 빅딜론을 부인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 가능성이 쉽게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LG그룹이 반도체 사업을 포기한 뒤에도 정보통신·화학을 주력 업종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힌 점을 주목하는 것이다.

이동통신 분야와 마찬가지로, 석유화학산업의 구조 조정도 말만 무성할 뿐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없는 상태다. 정부 계획은 석유화학 업체들을 단지 별로 통합하는 것이다. 충남 대산에 있는 삼성종합화학과 현대석유화학 통합도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여천 단지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현재 이곳에는 대림산업·LG석유화학·호남석유화학·한화종합화학 등이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대기업의 주력 계열사인 데다 재무 구조가 건실한 흑자 기업이다. 후발 업체로서 빚이 많았던 삼성종합화학·현대석유화학과는 전혀 다르다. 따라서 해당 업체는 물론이고, 이 분야 전문가들도 정부가 추진하는 방식의 구조 조정에 의문을 제기한다. 강제로 통합해서 얻을 이득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4개 업체를 하나로 묶는 구조 조정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대안으로 모색되고 있는 것은 업체 간의 전략적 제휴이다. 이미 대림산업과 호남석유화학 간에는 협력 체제가 구축되어 있다. 대림산업은 올해 6월부터 호남석유화학에 에틸렌과 프로필렌을 연간 15만t, 10만t씩 공급하기로 했다. 대신 호남석유화학은 나프타 분해 시설 증설을 연기했다. 또 대림산업·호남석유화학·한화종합화학은 90년대 초에 이미 공동 출자 형태로 ‘YTT 여천 탱크 터미널’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부두를 공동 관리하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호남석유화학과 대림산업이 나프타 분해 시설을 공동 운영하는 방안, LG의 폴리프로필렌(PP) 사업과 한화의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 사업을 맞교환하는 방안 등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쉽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철강산업의 구조 조정이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되는 반면, 이동통신·석유화학 분야의 구조 조정은 처음부터 난항을 겪을 공산이 크다. 대기업들이 강력하게 저항할 경우, 자칫 제2의 ‘청와대 회동’ 장면을 연출해야 할지도 모른다. 과연 정부가 그런 모험을 다시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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